가족과 지원


길고 긴 여행, 쉼을 그리며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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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 18:10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거제로, 양산으로, 전라도로, 부산에서 먼 곳까지 장애 부모님들 대상의 강의를 다녀온 날이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곳곳마다 형편이 얼마나 다른지 무거움과 막막함을 느낀다. 


"맞벌이로 일하는데 다 큰 아들과 무사히 밤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지쳐요."

"다른 부모님들과 만날 시간이 없어요. 우리 지역에 부모회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지금 다니는 주간보호센터밖에는 아는 데가 없어요. 여기서 쫓겨나지 않기만을 바래요." 


이분들에게 장애인 고용지원을 이야기하고, 시민참정권과 탈시설, 자립지원, 성인후견인과 자기결정권을 말하노라면 그게 어느 나라 이야기냐는 되물음을 받는다. 


비장애형제자매들의 고민도 상황과 형편따라 다양하다. 그나마 부모의 이해와 지지가 있으면 아팠던 경험도 과거의 문제로서 풀어낼 수 있는데, 가난이나 부모의 질병까지 겹치면 장애형제를 평생 돌봐야하는 현실마저 떠안아야 한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설움이 아니에요. 결혼도 직장도 포기해야 하는 오늘과 막막한 내일이 두려워요." 


게다가 안정된 환경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발달장애인은 강박이나 집착, 신체적 질환, 성적 위험이나 법적문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이 첩첩이 얽혀있다. 


이걸 누가 다 풀어낼 것인가? 


주말이면 지하철 각 역마다 노선안내도의 누락된 스티커를 확인해야 하는 아들과 나는 오늘도 반나절을 동행했다. 코비드 감염 위험이 있으니 대중교통 이용을 줄이고 싶지만 아들에겐 일주일 내내 참고 기다린 약속이라 어길 수 없어서 마스크를 끼고 말없이 함께 걷는다. 


평일에는 음악치료사로 일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책임의 빚으로 느끼며, 나머지 시간엔 부모활동가로서도 봉사하지만, 이 끝없는 여정에 나도 길을 잃은 듯 혼란을 느낄 때가 있다. 


정작 가장 절실히 외치고 뭉쳐야 할 부모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바라야 할지도 모를만큼 각기 따로 소외되어 있고, 형편과 시간이 나은 부모들도 긴 전쟁에 지친 부상병들처럼 눈 앞의 진통제만 바라며 불안감으로 웅크려 있다. 


아는 것은 힘보다 짐이 되어 안팎으로 수많은 고통의 소리들이 어깨를 짓눌러 주저앉고 싶을 때, 그 때마다 드물게 손 내밀어주는 이가 나타나 걸음을 다시 떼곤 해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부모님들이 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얼마 전 복지기관장의 한마디가 든든한 아군의 손길처럼 힘을 주었다. 


다른 장애와 달리 발달장애인 대부분은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들이 당사자의 필요를 대신해서 외쳐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족들조차 당사자의 인권에 상반되는 결정과 행위를 하기 일쑤다. 복지학 교수님들이 나서 주실까? 복지과 공무원들이 알아서 만들어 주실까? 복지기관 종사자들이 앞장서실까? 모든 변화의 힘은 풀뿌리 민중, 밑바닥 당사자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소리가 크고 강하고 명확할 때에야 관련 직업군들은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눈 앞의 진통제나 내 몫의 사탕에 안주하지 말고, 거대한 바람이 형성될 때까지 꿈꾸는 나비의 날개짓은 계속되어야 한다. 첫 번째 나비가 지쳐 쓰러지면, 그 뒤를 이을 또 다른 나비들, 그렇게 무리지어 무리지어 퍼져나가도록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말보다 행동으로 앞장서 걸어간 선배부모님들, 기꺼이 재능과 물질을 기부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동료들, 길의 의미를 묻고 방향을 수정하며 함께 걷는 종사자들을 생각하며 다시 걷는다. 


우리가 낸 길 위에서 뒤에 오는 누군가는 쉬어갈 수 있기를, 앞선 걸음이든 뒤따르는 걸음이든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여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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