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날적이


회상3: 장애아동통합지원 프로그램 기록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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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01:18

​  얼마 전에 공개한 통합유치원에서의 일화 기록을 살펴보면 7살 지환이의 '도전행동'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 또는 안할래요 라고 거부함), 대그룹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합니다. 친구가 애써 쌓은 블럭을 망가뜨리거나 친구가 놀고 있는 블럭을 말없이 빼옵니다. 대인관계에서 트러블을 일으키고 자칫 갈등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걸 '도전행동'이라고 해서 사회복지사, 치료사들로 하여금 해결을 위해 뭔가를 시도하게 만드는 과제로 이해됩니다. 15년 전에는 그야말로 '문제행동'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통합유치원 선생님들이 적절하게 개입하고 중재함으로써 도전행동은 다소 누그러진 걸로 보입니다. 또래와의 적절한 상호작용이 늘어나고 대집단활동에 방해되는 행동이 감소하였습니다. 그런데 통합유치원 이외의 다른 상황에서는 어땠을까요?  


  통합유치원 근처에 있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장애아동통합지원 프로그램으로 '신나는 교실'을 운영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약 2시간 동안 음악치료, 특수체육, 그리고 다양한 놀이와 활동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음악치료사가 메인 고정으로 진행하고 1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신나는 교실' 참여자는 대부분 지환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발달장애아동들이었습니다. 보호자도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신나는 교실'에서 지환이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진행 기록서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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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혼자 블록을 가지고 노는 모습 보임. 음악치료시 악기를 다루는데 많은 힘이 들어가 있으며 대부분 치료자의 지시에 따르는 태도를 보였으나 조금 박자가 늦게 마무리 되며 시간이 길어지니 참여하기 힘들어 하며 이탈하는 모습을 보임.


3월 29일: 전체적으로는 활동에 잘 참여하는 편이나 3번 정도 이탈하여 혼자 블록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말을 할 때는 또박또박 말을 한다. 집중력이 강하여 놀이를 할 때 항상 끝까지 하려고 한다. 


4월 12일: 끝까지 활동에 집중 못하지만 다시 타일러서 활동 참여에 유도하면 대체적으로 잘 따르는 편이다. 오늘은 탁자를 들거나 창문을 세게 여닫는 모습을 보였다. 혼자서 놀 때는 굉장한 집중을 보이며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했다. 손을 잡고 가서 같이 하자는 말도 했다. 소형이랑 다미를 밀치는 행동을 했으나 곧장 사과했다.


5월 10일: 음악치료 때에는 전반적으로 잘 참여했으나 후반부부터는 친구들 밀치기, 손에 잡히는 물건 던지기 등의 과격한 행동이 시작되었으며 그 후부터 줄곧 계속되었다.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집중력 없이 주변을 보며 회피하려 하였다. 


5월 17일: 어머지의 조언대로 의사 전달 때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니까 훨씬 효율이 있고 말을 잘 들었다. 음악치료 때는 집중해서 처음엔 잘 참여하였으나 끝까지 집중하지는 못했다. 각종 놀이감이 섞여있는 상자를 종류별로 다른 상자에 잘 분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식을 먹을 때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잘 먹었다. 보조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5월 24일: 눈을 마주치고 의사 전달하니 잘 따라 주었다. 음악치료 할때 잘 따라서 했고 비누방울 부는 것을 좋아했다. 피자빵 만들 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직접 만든 피자빵을 맛있게 먹었고 쥬스도 잘 마셨다. 놀이터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땀나게 잘 뛰어다닌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를 미는 행동을 보였다. 


6월 7일: 오늘은 특히 지환이에게 좋은 경험이었으면 좋겠는데, 누구를 밀치거나 물건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아파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밀치는 행동은 불만의 표출이라고 보여지는데 던지는 행동은 워낙 순간적이고 이유가 분명해 보이지 않아 통제가 잘 안된다. 


6월 21일: 예전에는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그래도 몇 분 동안은 말을 들었는데 오늘은 바로 웃으면서 야단친 내용의 행동을 했다. 그나마 오늘은 다른 날보다 밀치는 것이 덜한 편이었다. 집중력 있게 잘 놀다가 갑자기 밀치고 던지는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상황 전에 예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황 후에 지속적으로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다. 


(7.8월 여름에는 프로그램 휴식기)


9월 20일: 음악치료 시간에 공격행동을 보여서 잘못을 지적해 줄 때는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의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다시 아이들과 어울리며 밀치는 행동을 보이고 해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 곁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지시에는 즉각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밀치거나 물건을 던진 횟수 4-5회.


9월 27일: 음악치료 시간에 악기를 크고 거칠게 다루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를 밀치는 행동을 서너번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누워 있으려고 해서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동화시간과 특수체육시간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힘이 넘치고 활기찬 지난주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밀치거나 물건을 던진 횟수 3-4회.


10월 18일: 야외에 나가기(경복궁 소픙) 때문인지 시종 밝은 모습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래서 무리에서 이탈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뛰어다니다가 지나가던 아이를 밀기도 했다(1번).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소리도 지르고 아주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공원의 허수아비를 발로 때리고 뽑으려는 행동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활발한 날이었다. 


11울 1일: 음악치료 시간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 거부의 표시로 바닥에 누우려고 하였다. 그 후 놀이터에서는 큰 퍼즐조작으로 집을 만들었다. 각각의 퍼즐모서리를 잘 맞추질 못해서 봉사자의 도움을 많이 요청하였다. 물감불기는 빨대를 이용하였는데, 빨대를 잘 물지 못해서 바람이 잘 안 나갔다. 결국 마지막 자유놀이 시간에 희정에게 장난감을 던짐. 


11월 8일: 음악치료는 늦어서 못하고 끝나는 인사노래만 하였다. 특수체육은 공놀이를 하였는데, 몸풀기로 뛰는 것은 잘 하였지만, 공으로 놀 때는 참여하지 않고 매트에서만 눕고 뒹굴었다. 공굴리기, 공 던지기 등은 전혀 하지 않고 '안돼'만 연속으로 얘기하며 공을 배 앞에 꼭 껴안고 참여하지 않았다. 또래가 옆에 있을 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밀치는 행동이 늘어남. 관공서 알기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잘 알아 맞추고, 병원놀이 때 의사를 하여 청진기를 끼우고 열심히 하였다. 


11월 15일: 밀거나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강도가 세졌다. 물건을 집어 던질 때 교사의 제지가 잘 통하지 않았다. 거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놀이에 집중하는 때도 있었지만, 바닥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고 선생님의 권유도 듣지 않는 때도 많았다. 또 소리를 지르며 '싫어, 씨' 횟수도 늘었다. 음악시간에 타임아웃(교실 밖으로 나가기)이 3번 정도, 요리시간에는 집중하여 만들고 간식을 먹느라 고집행동이 수그러들었으나, 자유놀이 때는 대체로 5분에 한번씩은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행동을 보임.


11월 22일: 음악치료 시간에 물건을 집어던져 두 번이나 중간에 나와야 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알고는 있으나, 더 고집을 부리면서 계속 던지거나 친구들을 밀쳤다. 특수체육 시간에도 처음에는 잘 따르다가 곧 혼자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집단활동 시간에 점토로 조금 만들다가 어머니께서 오셔서 가야 했다. 미는 행동을 못하게 하면 소리를 지른다. 그 횟수가 많아졌다. 


12월 6일: 오자마자 물건을 집어던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고, 20분 정도 문 밖에서 약속을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두었다. 말을 잘 듣겠다고 약속하고 들어왔지만 종종 친구들을 밀치고 선생님을 때리기도 했다. 혼을 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약속을 하고 다시 방으로 오면 소리를 지르거나 바닥에 눕기도 했다. 근래 몇 주간 소리를 지르고 선생님에게도 반말로 외치는 정도가 늘었다. 


12월 13일: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이 자주 있었다. 선생님에게 던지기도 하고 발로 차고 종종 친구들을 밀기도 해서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하지 않고 단기간 움직이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는 수정방법을 사용하였다. 답답해 해서 친구들을 밀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했다. 케이크 만드는 시간에는 암젼히 있어야 케이크를 준다고 했더니 얌전하게 활동을 했다. 특수체육 시간에는 활동을 하지 않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다. 


조언: 밀치는 행동을 할 경우, 교실 밖으로 대리고 나와서 반성하도록 했는데,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행동으로 직결되지가 못합니다. 얘기를 들어보셨겠지만, 행동수정치료를 한 번 적용해 보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문제행동이 감소하는데는 즉각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치료 과정 중에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부작용까지 마무리 짓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폐아들의 자해 행위나 공격 행위 등을 수정하는데는 효과가 있습니다. 지환이처럼 인지와 행동이 잘 연결되지 않는 아동의 경우, 반복적인 조건학습을 시킨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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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 진행 기록을 다시 읽어보면서 느낀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지환이는 자신의 선호가 분명하고 동기부여가 중요합니다. 사실 지환이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기부여는 중요합니다. 그런데 동기부여가 부족해도 누가 시키면 그냥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환이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먹는 것과 관련된 활동을 할 때는 말도 잘 듣고 참여도 열심히 했지만, 특수체육 수업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고 아예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싫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언어로도 표현하였습니다. 음악치료는 상반기에는 좋아하고 참여도 하였으나 후반부에 가서는 흥미를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환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고 싦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편이었고 저는 그런 지환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었습니다. 사람이 말을 억지로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정작 말이 스스로 물을 먹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활동은 곧잘 참여하는데 특수체육 수업은 싫어했을까요? 그리고 노래부르고 음악활동을 좋아하는 지환이가 왜 '신나는 교실'에서는 그다지 신나하지 않았을까요?  


  둘째, 음악치료사는 지환이가 사람을 밀치는 행동을 불만의 표시라고 해석했는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언어 표현이 잘 안되면 거친 행동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지환이는 수용 언어에 비해 표현 언어 수준이 낮아서 답답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원활하게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거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을 밀치는 행동은 ADHD로 인한 충동성에 기인하는 것인데, 7살 때만 해도 지환이에게 ADHD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진단은 정신지체(요즘엔 지적장애로 바뀜)로 나왔고, 이로 인해 주의집중이 어렵고 주의집중 시간이 짧다고 설명을 들었으니까요. ADHD이기 때문에 인지와 행동이 연결되지 않는, 즉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충동적인 행동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그것을 계속 지적하고 야단치면 오히려 행동이 강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도중에 타임아웃으로 프로그램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적절한 행동수정 방법인지 저는 의문이 듭니다.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해야 행동수정이 될 텐데, 이런 경우처럼 지환이가 별로 안좋아하는 걸 안하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오히려 긍정적인 보상을 주는 것 아닌가요?  


  세째, 저는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음악치료사가 장애아동의 특성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충분히 숙련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장애아동과 상호작용을 할 때 눈을 맞추는 건 기본입니다. 그런데 보호자한테 조언을 듣고 눈맞추면서 얘기하니까 효율적이라고 기록하면 저는 그 사람의 전문성/역량에 의구심이 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언에 행동수정치료를 권유했는데, 지금이야 인지행동치료, ABA 등이 알려져 있지만, 15년 전에는 행동수정치료에 관한 정보가 많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양도 별로 없었고 그 내용도 수상쩍었습니다. 정신질환 등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더우기 자폐아동의 자해나 공격행동에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지환이는 자폐가 아니라 정신지체로 진단받았으니까 더욱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라고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낯선 치료법을 시작하는 것에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결국 행동수정치료를 하지 않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ADHD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네째, 통합유치원에서는 사람을 밀치는 행동이 하반기에 가서 점차 줄어들었는데, '신나는 교실'에서는 왜 오히려 늘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통합유치원에서 참고 있다가 '신나는교실'에서 폭발한 건지, 통합유치원과 '신나는 교실'의 물리적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건지, 통합유치원과 '신나는 교실'의 선생님의 지도방식이 달라서 그런 건지 등등.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아동이 다른 장소/환경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떤 요인이 있을 것 같은데,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에 발.전.포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고 페이스북 등의 SNS가 활발했더라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 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그러면 발달장애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부모로서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어떤 특수교육이나 치료법을 선택해야 할지 등과 관련하여 보다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확인되고 검증되지 않은 각종 치료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불안하고 절박한 심정의 부모들은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부모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유용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고 자녀의 장애로 인한 특성과 개인으로서의 성격을 잘 구분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처지의 부모들끼리 서로 연대해서 앞에 닥친 어려움을 헤쳐나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청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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