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작업


발달지표에 해당하는 일상생활활동 : 루틴

지석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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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9 20:18

인간의 '발달'을 표현하는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 성숙, 성장, 발달. 성숙(成熟; Maturation)이라는 말은 질적 측면으로 사회적 성숙도 포함하지만, 뱃속에서 자라는 아기의 태내 성숙, 영유아기 키와 몸무게의 성숙, 사춘기의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성숙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대체로 생물학적인 자람을 의미한다. 성장(成長; Growth)은 능력이 증가하는 경우에 좀 더 많이 사용하고, 사회적으로 일이나 관계 등에서 역할과 깊이가 깊어질 때 사용하기도 한다. 해서, 성숙은 좀 더 생물학적인 의미가, 성장은 좀 더 사회적 의미를 포함하는 듯하다. 그리고 발달(発達; Development)은 인간의 생물, 사회적인 성장과 성숙을 통해 나타나는 수행을 반영하여 신장이나 체중의 증가와 같은 양적 변화와 지적 수준이나 언어 수준의 변화와 같은 질적 변화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성장과 성숙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전반적인 진행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인기 이후의 삶과 생활이 지나가는 것도 인간의 경우 발달에 해당한다.


1. 인간의 발달영역으로써 '일상생활활동'

아동발달을 파악하는 지표에는 신체발달, 인지발달, 언어발달, 운동발달, 정서발달, 사회성발달과 더불어 자조 및 자기관리활동 또는 일상생활활동의 발달이 포함된다. 각 영역은 서로 관련되기도 하고 독자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지능력이 매우 높은 아이가 무조건 언어와 운동발달능력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높을 가능성은 있다. 어떤 경우는 운동발달이 약간 더딘 아이가 언어발달을 더 빨리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는, 언어나 인지적 발달능력과 상관없이 일상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자립하는 활동이 많은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인간의 발달에 초점을 두는 전문가들은 여러 발달영역간의 관계를 획일적이지 않고 역동적으로 고려한다.


그 중, 자기관리활동(Self maintenance) 또는 일상생활활동(Activities of Daily Living: 이하 ADL)은먹기, 씻기, 양치나 구강위생, 단장하기, 목욕하기, 대소변 활동, 옷 벗고 입기 등으로 거의 매일 해야 하거나 하고 있는 생활활동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이 일상에서 일정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이를 루틴(routine)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일과라고도 번역하지만, 루틴에는 '특정 시간에 일련의 연속성이 있는 활동을 반복'하는 규칙성을 의미하고, 순서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매일 반복하는 일과 안의 고정된 순서를 포함해서 루틴이라고 쓰기로 하자.


2. 루틴의 의미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산다. 그 일상이 반복되면 루틴의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루틴은 무엇이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어에는 Morning routine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하는 일과활동, 특히 연속된 과제를 의미한다. 일어나서 화장실 가기. 변기 뚜껑 닫고 물내린 뒤 변기 뚜껑 올리는 단계가 일정하면 변기와 물내리기는 작은 루틴이다. 화장실 다녀온 뒤 물을 한 컵 마신다고 하면 화장실과 물마시기라는 두 과제의 연속이 조금 큰 루틴이 된다. 우리에게 루틴을 잘 소개하는 '둥근해'​라는노래가 있다. 둥근해가 떠서 자리에서 일어나, 제일먼저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먹고 (밥먹고 이닦는 게 더 맞는 루틴이라고 보지만), 거울보고 옷을입고 가방매고 인사하고 유치원으로 나설 때까지 일어나는 아침의 규칙적인 루틴을 잘 소개해준다.


루틴은 처음부터 루틴으로 규칙화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처음 숟가락을 사용하여 먹을 때, 아기들은 얼마나 수많은 입벌리기와 오므리기를 하면서 숟가락 크기에 맞춰 입모양을 조절하는지. 그 순간은 새로움을 배우는 시간이며, 이를 노벨티(Novelty)라고 한다. 처음 하게 되는 일상활동은 모두 새로운 시도를 수많이 거치면서 규칙적인 루틴이 된다. 이 때는 혼자 할 수 없고 부모나 양육자의 행동을 따라하고, 반복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학습은 처음부터 창출되지 않고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나타난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학습이 안정화되면 노벨티였던 활동이 루틴이 된다. 새로왔던 도전과 시도가 일과로 자리잡는다는 의미다.


루틴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루틴은 안정을 의미한다. 루틴이 된 활동을 할 때 사람이 불안해지거나 도전적이 되지 않는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예측가능하고 몸에 숙달되어 있다. 그래서 다음 노벨티, 새로운 시도를 할 기초가 된다.'내안의 CEO 전두엽'이라는 책에서도 인간의 대뇌는 루틴(Routine)을 담당하는 부분과 새로운 것(Novelty)를 담당하는 부분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신경학습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루틴과 노벨티가 반복되며, 이로 인해 발달한다.

기본적인 일상생활활동(ADL)은 루틴으로 잘 자리잡아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준비하게 한다.


3. 도전이 우선인가, 안정이 우선인가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아동기의 발달과정에 있어서는 신체적 성숙을 위해서도 안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루틴확보가 우선이다. 매번 식사하는 시간이 달라지거나, 매일 사용하는 수도꼭지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산다면, 매일 기상하는 시간이 다르다면, 이 아이는 다른 도전활동을 할 준비가 잘 될 수 있을까? 심지어 어른도 매일을 살아가는 시간이 예측 어려운 도전적인 상황이라면, 긴장 속에서 살아서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건강에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물며 아이들은.

아이들의 건강한 생활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루틴으로 잘 자리잡는 데서 시작한다.


4. 루틴을 확보하자!

모닝 루틴, 식사 루틴, 상호작용 루틴, 놀이 루틴, 수면 루틴.

루틴은 반복하는 활동 안에 일정한 순서가 자리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옷을 막 입게 된 아이는 부모가 옷의 머리부분을 끼워주며 '머리 - 목 빼기 - 오른 팔 - 왼 팔 - 옷 앞 내리기 - 뒤 내리기'라는 순서흐름을 일정하게 리듬을 타면, 아이의 옷입기는 예측 가능하고 일정하기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하게 되는 부분을 점점 더 파악하게 되기도 하고, 아이가 예측하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그 리듬을 참여하며 상호작용도 하게 된다. 간단한 것부터 시도하자. 리듬을 붙여 구령을 해도 좋다. 신발을 벗을 때, '왼발 - 찍찍이 - 쫙!' 이런 구호는 아이의 움직임을 순서대로 시도하는 촉진 언어가 된다. 이 때 부모가 '신발 봐~ 뭐하니~ 이제 신 신어야지' 이렇게 너무 많은 언어를 하면 순서가 잡히지 않는다. 처음은 간단한 과제에 간단한 순서, 그리고 간단한 리듬부터 루틴을 만들고 거기에 다른 단계나 약간의 새로움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루틴이 커지면, 아이가 일상에서 스스로 하게 되는 행동과 활동이 늘어나게 되고, 안정적인 시간이 좀 더 늘어난다. 일상생활의 루틴의 확보는 발달이다. 그러므로 루틴을 확보하는 것은 발달을 확보하는 것이다.


5. 규칙적인 수면은 최우선

일상생활의 루틴 중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잠드는 시간과 깨는 시간, 잠드는 방법과 깨는 방법이다. 아이들의 발달에 있어 잠이 깨는 것은 충분한 수면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적인 행동이지만, 잠이 드는 것은 양육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가 잠이 들게 하는 과정은 '루틴'이 필요하다. 매번 잠들기 전에 하는 행동이나 활동이 달라서 이벤트가 되면 잠은 달아난다. 일정한 활동, 일정한 리듬. 그래서 자장가는 루틴 반복이다. 루틴을 통해 잠이 잘 든 아이는 잠을 잘 깬다. 잘 깨면, 그 다음 루틴이 더 잘 이어진다. 루틴이 잘 이뤄지면 새로운 시도와 노벨티에 대한 부담이 적고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 높거나, 불안함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생활활동은 발달해간다.

그런데, 일반적 발달을 하는 아이가 아닐 경우는 아기의 활동과 루틴확보 자체가 어렵고, 그래서 더 많은 어른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와 양육자들은 아이의 발달 제한 때문에 더 다양해야 하지 않은가, 한번 하면 패턴화 되지 않는가를 염려하기도 한다. 새로운 배움은, 잠자고 먹고 씻고 옷입고 나서는 활동을 일정하게 하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일정하게 자리잡은 기본적인 생활활동은 전체 시간 중 3-4시간 정도에 해당한다. 하루 3-4시간의 일정한 루틴을 통해, 아이들은 놀이나 학습이라는 거대한 노벨티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새로운 배움을 위해서 꼭 필요한 루틴. 일상생활활동(ADL)의 안정화는 발달의 단추라고 생각하자. 첫단추.

(지석연. 작업치료사 / SISO감각통합상담연구소)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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