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작업


능력과 수행의 차이

지석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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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07:02



사람의 발달을 평가하고 중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이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첫째는 발달에 관련된 인간의 능력을 기반으로 보는 방식이 있고, 둘째는 발달을 하고 있는 인간의 삶의 활동과 행동을 어떤 수준으로하는지수행을 기반으로 보는 방식이 있다. 영어로는 전자를 Capacity(역량, 능력)라고 하고, 후자를 Performance(수행)라고 한다.


역량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절대적인 능력 수준을 알기 위해, 평가하는 방법이 규격화되어 있다. 영어로 따지자면, 평가 문제가 표준화된 토익이나 토플시험이 영어 역량, 또는 영어 능력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수행 평가는 이보다 좀 더 복합적인 방법으로 평가하고, 해석하고 중재한다. 기왕 영어로 예를 들었으니 영어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도록 하자.


만약, 우리가 토익 성적 향상을 바란다면, 현재 토익 점수 현황을 놓고 강약점을 분석해서 약점인 영역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점수를 향상할 전략을 세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토익 성적을 높이 유지한다면 영어의 일정한 능력 수준을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역량에 해당하는 영어로 삶을 수행하는 것이 일치하는가에 대해서는 수행의 측면을 다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술사 수업을 영어로 듣고 그 수업 과제를 영어로 제출하고 시험을 영어로 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토익 성적이 최상이라고 해서 미술사 영어 수업을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미술사 영어 수업을 참여하고 이수하는 학생이 미술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흥미를 갖고 있는지, 영어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자의 교육 전달 수준은 학생의 실력과 적당한지, 수업에 함께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과제하기에 좋은 정도로 친밀하면서도 역할 분담이 되는지, 학교에는 미술사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의 자료들이 풍부한지, 수업을 하는 시간은 참가하기에 적당한지, 강의실은 참가하는 학생이 수업하기에 적절하게 디자인 되어 있는지 등등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정된 영어 능력 검정 문제가 영어로 삶을 살아내는 것, 즉 영어로 삶을 수행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영어 능력 수준은 낮아도, 미술사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한국 학생이, 미술사의 전문가인 영어로만 소통가능한 외국인 교수와 수업을 하면, 미술사 영어수업은 스마트 도구를 활용해서라거나, 통역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의 발달과 생활도 마찬가지다.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기억력이나, 근력, 지능, 청력 등은 또래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역량이 먼저 평가되어야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어떤 아이가, 전국의 지하철 노선표와 버스 지선, 간선 버스의 노선을 모두 외우는 기억 능력을 갖고 있는데, 검사나 평가지에 있는 기억력에 대한 검사내용을 평가자가 전달할 때 그 내용을 듣고 기억해서 대답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그 아이의 '기억력'이 어렵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기억력을 높게 발휘하는 영역이 관심사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흥미나 의미가 없는 과제로는 아이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일상에서 교통수단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관심도가 높은 경우 병렬적인 기억력은 좋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인간의 발달이나 건강한 참여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은 역량지표도 중요하지만 수행지표를 더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다. 수행은 역량을 담지만, 역량을 넘어선다. 어떤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손에 강직이 있어서 부드러운 물건이나 종이컵을 살짝 쥐기가 어려워서 손으로 잡으면 물건의 형태가 이그러진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입을 오므려 빨대를 빨아들이기가 어렵다. 역량을 나열하면, 몸의 장애 증상과 어려움이 먼저 표현된다. '~가 안된다.', '~이 어렵다.', '~을 못한다.', '~ 손상이 있다.' 등등.


이 아이를 위해 부드러운 플라스틱 병에 부드러운 고무 재질의 구부러지는 빨대가 있는 뚜껑을 달고, 그 안에 물을 넣었다. 아이가 플라스틱 병을 눌러 쥐면 병에서 물이 올라가면서 구부러진 빨대를 따라 물이 나오고, 아이는 입을 벌려 입으로 들어가는 물을 마시기도 하고 입 밖으로 흘리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님은 물을 마실 때 턱받이를 채운 뒤에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였다.


어떤 부모님은 아이의 식사하기 수행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뜨는 건 어려워요. 그치만, 떠서 두면 숟가락을 잡고 입에 넣을 수는 있어요. 대신, 입에서 빼면 숟가락을 팽개치네요. 우리는 일단 숟가락을 다시 씻어서 떠두는 걸 도와주고 있어요. 입에서 음식을 먹고 나면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위의 두 아이들은 역량지표로 본다면 '중증도'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다. 중증도의 장애 수준인 사람은 '물마시기'와 '식사하기' 수행을 똑같이 중증도로 한다고 평가할 수 없다. 중증도의 역량인 사람이 환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하거나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삶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행하면, 물마시기를 위해서 물병 들고 짜면서 쥐기, 입에 들어오는 물을 삼키기, 식사하기를 위한 숟가락 들어서 입에 넣기, 입 오므리기, 씹고 삼키기, 숟가락 빼기라는 수행행동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을 보면 그 때 역량에 대한 이해는 관점이 달라진다. 수행에 관련되어 할 수 있을지, 도움이 필요할지를 판단할 때 역량지표는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발달을 볼 때는 '할 수 있는지'를 바라보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지'를 바라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과 행동은 무엇인지. 그 부분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출발점, 첫단추이다. 지금 하고 있는 활동과 행동은 일상에서 일어난다. 일과에서 반복되는 루틴활동일 수도 있고, 이따금 새롭게 변화하는 노벨티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행동일 수 있다.


아이들을 함께 만나는 사람들 중에, 특수교사와 작업치료사, 이 두 직종은 일상생활을 토대로 수행을 중점적으로 바라보고 치료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이다. 이 전문가들을 만나면, 서로 '능력'이나 '역량'을 먼저 말하지 말고 '수행'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요구하자.



엄밀히 말해서, 능력이란, 수행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능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해 보지 않은 모든 것을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무능한 점이 많다.

해 본 것 외의 모든 것에서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해 볼 필요도 없다.



지석연 - 작업치료사 / SISO감각통합상담연구소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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