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사회성


자폐인의 동일성에 대한 집착 또는 변화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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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22:23



경민(가명)은 간단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능력이 있는 13살의 자폐아다. 경민이가 우리 학교에 다닌지 6년째다. 우리 학교의 통학 버스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을 기준으로 매일 2시 20분에 아이들을 태우고 하교길 운행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는데, 오후에 교직원 전체 행사가 있어서 오전수업만 하고, 학생들은 하교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가 학교 버스를 타려고 하지 않았다. 버스에 절대 타려고 들지를 않았고, 몇 명의 교사들이 억지로 태워보려고 했지만, 너무 완강하게 버텨서 결국 포기하고,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를 학교에 오시도록 조치를 취했다. 한 30분 정도를 담임인 나와 둘이서만 교실을 지키고 있으니, 경민이의 어머님이 오셨다.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해도 그는 한사코 가려고 들지 않았다. 결국, 그가 좋아한다는 피자를 사주겠다고 달래어 겨우 차에 태워 집에 데려갈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이 힘든 상황을 겪게 만든 것이다. 고집이라고 하기엔 이유가 없고, 그냥 2시 20분에 학교 버스를 타고 가기를 원했던 것 뿐이라서 이상행동이라고 하기엔 행동자체의 특이성이 없다. 그는 왜 그랬을까?


자폐인들에게 있어 비자폐인들의 세상은 매우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이해불가한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나 세상사람들이 소통을 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도 부족하거나 가지고 있지 않다. '자폐'라는 손상을 입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비유를 해보면 이렇다. 


당신이 혼자서 어느 외계 행성에 불시착했는데, 우주선이 불타버려 다시 지구에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그 행성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겉모습은 똑같은 인간인데 그 행성의 인간들이 행동하는 방식과 그 행동양식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문화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전혀 다른 것이다. 말과 문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고, 심지어 그들이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억양이나 제스처와 같은 것들도 지구에서는 어떤 문화권에도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은 상대를 욕하고 비난하는 의미이고, 의문문을 사용할 때는 문장 끝의 억양을 낮추고, 슬플 때 낄낄대고 웃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겠는가? 


불안하고 답답할 것이다. 다시 지구로 돌아올 방법도 없기 때문에 이 행성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외계인들의 말과 행동양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습득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첫번째로 필요한 것이 그들의 말과 행동의 규칙성이나 구조를 찾아 하나씩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익힌 그 규칙성이나 구조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혹은 상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하나씩 습득해 나갈 것이다. 


이런 원초적인 규칙과 그 규칙의 변이나 예외 규칙까지 알고 나면, 이제 그 외계는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변해 가고, 우리는 그 문화를 내면화시켜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습득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 행성에서 당신은 자폐 스폐트럼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자폐아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위의 예와 같이 전혀 다른 행동규칙이 존재하는 외계 문명에 불시착한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같다. 그들에게 이 세계는 더없이 불안한 곳이다. 그래서 무언가 자신이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을 찾으려 애쓰고, 그 기준과 규칙에 따라 일상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자 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이 찾은 해결책 중에 하나가 바로 '동일한 절차' 혹은 '예측가능한 구조'에 대한 집착이다. 이들은 항상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절차나 구조를 찾아야만 한다. 일상생활의 루틴(routine)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반복되어, 그 규칙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의 불안감과 답답합은 줄어들게 된다. 


초인종이 울리면 누군가 밖에 와 있다. 평일 오후 2시20분시에는 매일 학교버스를 타고 집으로 출발한다. 고깃집에 가면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이것이 그가 편안하게 이해하고 있는 행동규칙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들이 이해하고 습득한 구조는 실제 상황에서 항상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예외나 변수가 자주 생기게 된다. 


전형적인 신경계를 가진 비자폐인들이 사는 세상과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의 바램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모든 사건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초인종은 울렸는데 문밖에 나가보면 아무도 없을 수 있다. 오늘은 평일이지만 2시 20분에 통학버스를 타지 않고, 12시에 자가용을 타고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 고깃집에 가서 갈비탕만 먹고 나올 수도 있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이 세계는 그들에게 다시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행동할 수도 없는 원래의 불안하고 답답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이런 상태로 돌아가기를 꺼려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다 당연한 것이다.


자폐아들은 이 '규칙성'에는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변수는 모두 서로 다른 마음을 지닌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이들은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모든 행동의 차이는 거기서부터 생겨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회적 능력'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흔히, 자폐아의 행동특성으로 "변화에 대한 저항" 혹은 "동일성에 대한 집착"이라고 표현되는 행동은 이러한 현상을 표현한 용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제 이러한 그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해줄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이 근원적인 개념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러나 적어도 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자신이 이해하고 규정한 '절차' 혹은 '구조'의 범위 혹은 다양성을 넓혀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교수나 치료가 아니라 '훈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훈련의 방법은 먼저 그가 예측가능해서 편안하게 느끼는 고정된 일상이나 정해진 규칙을 습득한 상태에서 거기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변화의 양과 강도를 어느 정도로 조절할 것인지는 각자의 특성, 적응력, 현재 상황, 소통 능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지만, 예를 들어, 의도적으로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이라도 정해진 일상의 정해진 순서를 바꿔주고 그 상황에 적응하고 견딜 수 있도록 서서히 훈련해야 한다. 즉,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점차 변이의 폭을 넓혀 가야 한다. 이럴 때 가장 힘든 것은 역시 늘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보호자'이다.


이것이 온전히 보호자나 부모의 몫이 되지 않도록 교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좀 더 쉽게 이 훈련 방법을 적용하려면, 일주일간의 생활계획표 상에서 정해진 부분을 의도적으로 전혀 정해지지 않았던, 계획되지 않았던 일을 해 보는 것으로부터 바꿔 보는 것이다. "월, 수, 금 저녁 5시에는 수영장에 간다" 라는 정해진 규칙을 2주에 한 번씩은 요일을 의도적으로 바꿔 보는 식이다. 그렇게 바꿀 수 있는 활동이 있다면, 그 활동을 하는 시간을 '비정기적으로' 만들어 보거나, 그 활동을 하는 장소를 바꿔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아이가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상 일은 내가 예상하거나 내가 정해 놓은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것도 또 하나의 규칙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훈련이 잘 먹히지 않을 때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훈련의 목표는 '그가 변화에 대해 견디고 적응하는 것'이지, 그의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부모나 교사들은 가능한 훈련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 특수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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