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한가- 『아무일도 없는 삶: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에 관한 서평
작성자: 김성남
책 『아무 일도 없는 삶: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는 그 제목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비평을 제기한다. 여기서 '아무 일도 없는 삶'은 평화롭거나 고요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어 있는, 즉 삶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을 박탈해버린 공허한 삶을 가리킨다. 한 추천사에 따르면, 이 제목은 "인간다운 삶의 중요한 요소들이 제도와 서비스로 인해 오히려 차단당해버린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빗댄 말"이다. 이 책의 핵심 질문, 즉 "최중증 지적 및 중복 장애(Profound Intellectual and Multiple Disabilities, PIMD)를 가진 이들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는 기존 장애인 서비스의 근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심도 깊은 민족지학적 연구, 즉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일상에 "참여하고, 관찰하며, 기록하는" 방법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추상적인 철학적 논쟁을 넘어 그들의 살아있는 현실과 직접 마주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원서 『좁혀진 삶(Narrowed Lives)』을 번역한 것으로, 핵심적인 민족지학 연구와 철학적 분석을 담고 있다. 2부는 한국어판 엮은이가 추가로 선정한 자기결정, 가족의 경험, 그리고 생애 말기 결정에 관한 중요한 연구들을 포함하여, 현대 사회의 윤리적 논쟁에 더욱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 글은 『아무 일도 없는 삶』이 현대 장애인 서비스의 역설적 실패를 해체하는 저작임을 주장한다. 이 책은 관계적·경험적·개인적 성장이 아닌, 위험 회피적이고 정형화된 신체적 돌봄을 우선시함으로써, 시스템이 오히려 '좋은 삶'과 대척점에 있는 '무(無)의 상태'를 만들어낸다고 역설한다. 이 책의 궁극적인 기여는 장애의 부재가 아닌, 사회적 연결, 개인적 표현, 그리고 위험을 감수할 존엄성의 존재로 정의되는 '좋은 삶'에 대한 급진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 책의 제목 '아무일도 없는 삶'은 하나의 '수행적 모순'으로 기능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부재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사회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의 삶을 강력하게 현존시킨다.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은 종종 '지워진 존재'로 묘사되며, 심지어 장애학 연구에서조차 배제되곤 한다. '아무일도 없는 삶'은 인간다운 삶이라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을 막아버린 시스템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이 공허함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저자들은 독자들이 이 문제를 직접 마주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수동적인 묘사가 아니라, 분석하고 비판하며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로 전환시키는 능동적인 정치적·윤리적 행위이다. 따라서 이 제목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무'의 상태에 담긴 심대한 상실과 부정의를 직시하게 만드는 책의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분석적 도구이다.
[1부 시스템의 역설]
1. 선의의 돌봄이 어떻게 우리를 만드는가
이 책의 핵심 비판은 돕기 위해 만들어진 바로 그 시스템—서비스, 제도, 정책—이 종종 좋은 삶을 가로막는 주된 장벽이 된다는 역설을 분석하는 데 있다. 추천사들은 이 역설을 강력하게 표현한다. "그동안 열심히 다져온 서비스가 오히려 발달장애인의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책은 지원이 "장애인 서비스 체계 안에서 맴돌았을 뿐"이며, 당사자들을 더 넓은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좁혀진 삶'의 구조
분석은 이러한 삶의 축소가 일어나는 기제를 상세히 설명한다.
첫째, 정형화와 자발성의 부재이다. 참여자들의 일상은 개인의 욕구나 자발적인 기회가 아닌, 식사, 목욕, 배변과 같은 돌봄의 루틴에 의해 지배된다. 이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만들어낸다.
둘째, 위험 회피와 과잉보호이다. 신체적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려는 시스템의 최우선 목표는 경험을 제한하는 명분이 된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와 욕망의 복잡성을 피하고자 당사자들을 "무색무취 무성의 존재"로 취급하게 된다.
셋째, 사회적 환경 속에서의 사회적 고립이다. 책은 그룹홈 내에서 경험하는 심각한 고립을 드러낸다. 참여자들은 직원이나 다른 거주인들에게 항상 둘러싸여 있지만, "진정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기회는 매우 부족하다". 이는 자원 부족과 관계가 아닌 과업 중심의 돌봄 문화 때문이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장애인 복지와 돌봄 서비스 시스템은 '인간적 성장'이 아닌 '생명장치 유지'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신체를 성공적으로 살아있게 유지하지만, 삶의 이야기나 사회적 자아의 발전을 지원하는 데는 실패한다. 시스템의 일일 기록과 우선순위는 식사, 수면, 투약, 배변과 같은 생물학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을 위해 고안된 활동들은 종종 인지적 또는 상상적 능력의 부재를 전제로 한 기본적인 감각 자극으로 축소된다. 이러한 접근은 당사자를 관리되고 유지되어야 할 생물학적 유기체로 취급한다. 반면, 성장하는 삶은 서사, 관계, 도전,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이 모든 요소들은 위험하거나 '필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따라서 시스템의 역설은 우연한 결함이 아니라, 전기적(biographical) 삶보다 생물학적(biological) 삶에 가치를 두는 생명장치 패러다임의 논리적 귀결이다. '좋은 삶'에 대한 책의 요구는 단순한 유지를 넘어 인격의 적극적인 함양으로 전환하라는 외침이다.
2. 진단을 넘어서: 사람을 다시 마음에 새기기
이 책은 개인을 진단명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담고 있다. 공식적인 명칭과 진단 범주가 "우리 아들의 개성을 쉽게 집어삼킬 수 있다"는 비판이 그 중심에 있다. 책은 국제질병분류(ICD) 코드나 기능 평가와 같은 시스템의 공식적 지식과, '장애 뒤에 숨겨진 사람'을 보는 돌봄 제공자들의 비공식적이고 관계적인 지식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인식을 위한 도구로서의 민족지학
이 책의 민족지학적 방법론은 이러한 '다시 마음에 새기는' 작업에 필수적이다. 연구자들은 당사자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만의 고유하고 체화된 의사소통 방식—성격, 유머, 선호를 드러내는 미묘한 몸짓, 소리, 표정—을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이 과정은 결핍의 총합이 아닌, "사교적"이거나 "느긋한", 또는 "장난기 있는 유머 감각"을 지닌 개인들을 드러낸다.
책은 "인지 능력이 극히 낮다는 사회적 통념은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자원 및 활동의 종류를 좌우한다"는 사회적 전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책은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들이 진단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수용 능력과 사회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한다. 경증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연극반에서 성장하는 프리다의 사례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놀라운' 역량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한 두 개의 상충하는 인식론, 즉 시스템의 '결핍의 인식론'과 돌봄 제공자의 '친밀함의 인식론'을 제시한다. 좋은 삶을 위한 투쟁은 부분적으로 어떤 방식의 앎에 권위가 부여되는가에 대한 투쟁이다. 복지 시스템은 발달장애인의 관한 정보 수집 도구인 기능 평가 양식과 같이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도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하며, 이는 지속적으로 이들 최중증 발달장애 당사자들을 최하위 기능 수준으로 평가한다. 이는 무엇이 부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결핍의 인식론이다. 반면, 돌봄 제공자와 가족은 장기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통해 다른 종류의 지식을 발전시킨다. 그들은 뉘앙스가 풍부하고 개인적인 소통을 해석하는 법을 배워 성격과 의지를 드러낸다. 이는 누가 현존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친밀함의 인식론이다. 시스템은 전자를 우위에 두어 제한된 서비스와 낮은 기대를 정당화한다. 책은 후자를 옹호하며, 그것만이 좋은 삶을 촉진하는 유일하고 타당한 기반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단지 새로운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지식'으로 간주되는 것의 근본적인 재평가를 요구함을 의미한다. 즉, 가족과 헌신적인 직원들의 깊고 관계적인 지식이 일화적 수준을 넘어, 지원 계획의 필수 데이터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온전한 삶의 미개척 영역들
4장부터 6장까지는 기존 장애 담론의 경계를 허무는, 책의 가장 획기적이고 윤리적으로 도전적인 장들을 분석한다.
사회적 세계에 대한 권리: 현존 대 참여
이 책은 지역사회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날카롭게 구분한다. 사회적 연결이라는 더 깊은 필요를 다루지 않은 채, '평범한 주거 지역'에 그룹홈을 물리적으로 배치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정책을 비판한다. '록 콘서트에 간 엘라'의 사례는 책이 제시하는 긍정적인 대안의 핵심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원적인 그룹홈 문화, 개인 조력사라는 재정적 자원,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탐색하는 데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오랜 과정의 정점이었다. 이는 올바른 지원이 있다면 풍요로운 사회적 삶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적절성'이라는 폭력: 나이를 해체하다
이 부분은 '나이에 맞는 삶'이라는 상충하는 개념에 의해 삶이 제약받는 청년 '휴고'의 사례를 분석한다. 책은 '정상화' 원칙이 어떻게 억압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비판한다. 성인의 유아화를 막으려는 본래 의도와 달리, 이 원칙은 당사자가 진정으로 즐기는 활동(예: 동화 듣기)을 단지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청년'이라는 개념은 휴고에게 부족한 것—활기찬 사회생활, 친구, 취미—을 부각하며 '정체된' 삶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시스템을 비판하는 데 사용된다. 시스템은 청년기를 고유한 지원이 필요한 발달 단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동 서비스와 성인 서비스 사이에 '구덩이'를 만들어낸다.
마지막 금기: 섹슈얼리티와 친밀감
6장 '섹슈얼리티'는 윤리적 지뢰밭을 탐색한다. 책은 이 주제를 둘러싼 깊은 불편함과 무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핵심적인 윤리적 문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없는 개인의 '동의' 문제이다. 책은 동의를 해석하는 극도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 즉 사실상 인격을 부정하는 선택을 거부한다. 대신, 신뢰하는 사람이 깊고 장기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의지와 선호를 해석하는 '지원적' 또는 '촉진적 의사결정' 모델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예/아니오'를 넘어 그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더 나아가, 책은 개인이 성적 쾌락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많은 경우 이는 조력 자위(assisted self-stimulation)를 통해 윤리적으로 촉진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는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을 비성적인 존재로 보는 지배적인 관점에 도전한다.
진정한 포용은 사회적, 발달적, 성적 영역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위험을 감수할 존엄성'을 포용할 때 가능하다. 현재 시스템이 모든 위험을 제거하려는 강박은 '아무 일도 없는 삶'을 만드는 주된 동력이다. 록 콘서트에 가는 것은 위험을 수반하지만, 책은 그 계산된 위험을 감수했을 때 얻는 엄청난 보상을 보여준다. 성인이 '유치한' 것을 즐기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책은 사회적 적절성보다 개인적 선호의 존엄성을 옹호한다. 섹슈얼리티는 모든 영역 중 가장 위험하지만, 책은 이 근본적인 인간성의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 그것을 촉진하는 관리된 위험보다 더 큰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미개척 영역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실은 '위험'이다. 책이 그리는 '좋은 삶'은 단지 해로움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삶이 아니라, 기쁨, 연결, 성장의 잠재력을 가진 삶을 살도록 지원받는 삶이며, 이 모든 것은 위험을 내포한다.
4. 주체성, 존엄성, 그리고 삶 자체의 공동 구성
2부는 주체성, 인격과 같은 근본적인 개념을 자기결정과 생명과 죽음의 선택과 관련지어 재정의한다.
말 없는 주체성: 파트너십으로서의 자기결정
이 책은 말을 할 수 없는 비언어적 장애인을 위해 자기결정의 개념을 급진적으로 재정의한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자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에서 벗어난다. 7장의 '자기결정'에 따르면, 주체성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신뢰할 수 있고 세심한 파트너 사이의 공간에서 '출현하는' 것, 즉 '양자 간의 성취' 또는 '파트너십'으로 개념화된다. 이 주체성은 깊은 조율 관계 내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미묘한 신체 변화, 발성, 몸짓과 같은 '체화된 의사소통'을 통해 표현된다.
혈연의 전문성: 생명윤리학자로서의 부모
8장과 9장의 부모 경험과 생애 말기 결정에 대한 분석은 심오한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부모를 전문가 조언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닌, 자녀에 대한 독특하고 귀중한 형태의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로 위치시킨다. 린다와 사라의 이야기는 딸을 실망시키는 시스템에 맞서는 '자경단'이 된 어머니가 자신의 경험을 '깨달음'의 한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9장은 부모들이 생애 말기 결정이라는 궁극적인 책임을 감당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정교한 '실천적 생명윤리학자'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삶의 질, 고통, 인격을 순전히 의학적인 관점의 권위에 도전하는 깊이로 숙고한다. 자녀를 위한 의사 조력 사망과 같은 선택지를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자녀의 고통과 부모 자신의 전문가적 판단 모두를 인정해 달라는 급진적인 요구이다.
이 책은 암묵적으로 관계적 인격 이론을 제시한다. 즉, 완전한 도덕적 주체로서의 지위는 정신의 내재적 속성이 아니라, 타인과의 인정과 관계를 통해 부여되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자기결정은 개인의 행위가 아닌 '파트너십'이다. 개인의 의지와 선호는 단순히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공동 구성'된다. 생애 말기 결정에서 부모는 평생의 친밀한 지식에 근거하여 자녀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의식과 목소리를 빌려주는 대리인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인격은 고독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통해 실현된다. 세심한 파트너, 옹호자로서의 부모, 신뢰하는 돌봄 제공자가 없다면, 개인의 주체성과 도덕적 지위는 비가시적이 될 위험에 처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심오한 함의는 우리의 도덕적 의무가 단지 최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 자체의 조건이 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시사한다. 시스템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관계의 실패이다.
결론: 좁혀진 삶에서 좋은 삶으로
이 책이 그리는 '좋은 삶'의 총체적 비전은 장애나 의존이 없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삶이다.
의미 있는 관계의 존재: 상호 인정과 애정에 기반한 가족, 헌신적인 직원, 동료와의 연결.
개인적 표현의 기회: 고유한 체화된 언어를 통해 '들리고' 이해받으며, 선호가 존중받는 것.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 단지 돌봄의 수혜자가 아니라 친구, 음악 애호가, 지역사회 생활의 참여자가 되는 것.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 루틴을 넘어 삶을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전기적인 것으로 만드는 새로움, 기쁨, 도전을 마주하는 것.
온전한 인격의 인정: 과거, 현재, 미래를 가진 온전한 한 사람으로, 기쁨, 위험, 슬픔을 포함한 인간 삶의 모든 스펙트럼을 경험할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보여지고 대우받는 것.
이러한 주제들은 엮은이와 추천사에서 강조하듯, 관련 논의가 부족했던 한국 사회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 책은 이러한 어려운 주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동기와 용기"를 제공하며, 관심을 촉발하는 강력한 "계기"가 될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