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Ryan & Deci의 이론으로 본 '돌봄' 너머의 '주체성'
윤송하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소통과지원연구소 연구부장
우리는 흔히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이라는 단어 앞에서 꽤 거창하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린다. 독립적인 주거 공간을 계약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구하며, 선거철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비장애인 중심의 성취 지향적 기준에서 볼 때,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하고 신변처리를 위해 24시간 밀착 돌봄이 필요한 최중증·비언어 발달장애인의 삶은 종종 '자기결정권의 사각지대' 혹은 '불가능한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의사표현을 전혀 못 하시는데 어떻게 결정을 하죠? 위험하지 않게 보호하는 게 최우선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그러나 장애 당사자의 삶을 가장 수동적으로 만드는 뼈아픈 오해다.
Ryan & Deci(2000)가 정립한 자기결정성 이론(SDT)은 이 오래된 오해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열쇠를 제공한다. 그들은 자율성을 '타인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혼자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승인하고 동의하는 느낌'으로 정의했다. 이 관점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최중증 장애인의 깊은 침묵 속에서도 그들의 생생한 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자율성: 거부할 권리와 '해석'의 미학
최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자율성은 유창한 언어가 아닌, 몸짓과 표정, 그리고 생리적 반응이라는 '신호'로 나타난다. 제공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뱉어내는 것, 특정 활동 중에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긴장하는 것, 혹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미세하게 눈꼬리가 내려가며 표정이 밝아지는 것. 이 모든 반응은 단순한 반사가 아닌 'Volition(의지)'의 강력한 표현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인지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복잡한 선택지를 나열하고 고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이 보내는 미세한 생체 신호, 눈빛의 변화, 그리고 때로는 격렬한 거부 반응을 유의미한 의사소통으로 '해석'하고 존중하는 태도다. 지원자가 그들의 거부를 도전적인 '문제 행동'으로 규정하지 않고, 싫음을 표현하는 정당한 '자기 결정'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들의 자율성은 질식하지 않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옷감의 감촉 선택, 식사 속도의 조절 등 일상의 미시적인 영역에서의 존중이 자기결정권의 시작이다.
유능성: 환경을 통제하는 작은 경험의 축적
Ryan과 Deci는 유능성을 '환경에 효과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어렵고 전적인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유능감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것은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켰다'는 인과관계의 반복적인 경험에서 온다.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스위치 하나로 방 안의 조명을 켜게 하거나, 눈동자의 움직임(Eye-gaze)만으로 화면 속 영상을 선택하게 하는 보조공학적(AAC) 지원이 훌륭한 예시다. 기술적 지원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비록 밥을 혼자 떠먹을 수는 없어도, 숟가락이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입을 벌리는 행위가 식사의 속도와 리듬을 조절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지원자가 숟가락을 무작정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입을 벌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 짧은 멈춤이 핵심이다. 이 작은 통제감(Perceived Control)의 축적이 학습된 무기력(Amotivation)을 극복하고, 삶을 주도하려는 내면의 동기를 부여한다.
관계성: 안전기지로서의 지원자
마지막으로 관계성은 이 모든 과정의 전제조건이자 토양이다. 논문은 안전한 애착이 탐색의 기반이 된다고 강조한다. 언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곁에 있는 지원자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창문일 수 있다.
지원자가 자신의 미세한 눈빛을 읽어내고, 불편함을 호소할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해결해 준다는 신뢰(Secure attachment)가 형성될 때, 그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관계성은 단순히 신체를 씻겨주고 밥을 먹여주는 '기능적 돌봄'을 넘어선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정서적 조율(Attunement)'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깊은 정서적 연결이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지원자를 믿고 새로운 활동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다.
Ryan & Deci의 이론은 우리 사회와 현장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여전히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욕구와 선호를 가진 주체적인 인간'으로 보고 있는가?
그들의 자기결정권은 거창한 법률 조항이나 제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 입을 옷의 부드러운 감촉을 선택하게 하고, 원하지 않는 타인의 접촉을 거부할 때 즉시 멈춰주는 그 찰나의 순간 속에 살아 숨 쉰다. 언어가 없는 곳에도 분명한 의지는 존재한다. 가족과 지원자의 역할은 지시하고 관리하는 감독관이 아니라, 그 침묵의 의지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통역가가 되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가는 저자(Author)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율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사람 중심 실천'이다.
보호의 대상을 넘어 권리의 주체로
출처: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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