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완치의 유혹에 가려진 장애의 편견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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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7 13:48





글쓴이: 김석주 (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자폐완치’라는 유혹은 자폐성장애자녀를 둔 부모들 곁에 평생을 따라다닌다. 외모로 표시나지 않고,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천재성을 보이기도 하기에 무언가 획기적인 치료법만 만난다면 나으리라는 기대를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강박과 상동행동, 울화와 자해 등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유혹에 매달리기도 한다.


이렇게 부모들의 약한 심정과 과대포장된 치료기관들의 신념이 맞물리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소모 뿐 아니라, 장애자녀에겐 과잉치료로 인한 학대, 가족들에겐 심리적, 경제적 와해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문에 ‘자폐, 조기치료로 완치 가능한 질병입니다’라는 문구를 실어서 전국 장애인단체로부터 규탄과 항의를 받고 즉각 수정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공단측은 전문적 검증도 없이 모 국회의원 자녀가 ABA(응용행동분석) 치료를 받고 지능과 사회성에 호전을 보인 개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여 홍보문에 실었고, 양육자들에게 혼란과 자괴감을 주었다. 


이러한 완치 홍보는 10년 전, 20년 전에도 여러 곳에서 계속 있어왔다. 모교육원에서는 플래쉬카드로 TV광고화면의 빠르기와 같이 시지각 집중도를 높여 이미지를 암기함으로써 지능지수를 2~30이상 올릴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외에도 영양요법, 청각치료, 운동치료, 심지어 종교적 안수기도나 무당굿까지 완치에의 현혹과 피해는 장애부모들 사이에 주기적인 붐처럼 떠도는 양상을 보인다.


최근에도 모한의원에서 치료비를 무상지원한 한두 명의 자폐성장애 아동 사례를 들어‘완치’,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쓰며 홍보기사를 내었다. 6개월만에 한약 복용과 감각발달치료 및 플로어타임 기법으로 지적장애아동의 지능검사 점수가 20 이상 오르고, 자폐성장애 3급 아동이 장애재판정에서 등급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ABA나 플로어타임, 운동치료나 영양요법이 효과가 없다는 건가요? 다 잘못됐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 효과가 있다. 피곤할 때 비타민C만 먹어도 신체적, 심리적 회복이 되는데, 영양요법이나 한약이 왜 효과가 없겠는가, 당연히 신체와 뇌 건강에 효과가 있다. ABA는 문제행동을 감소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증가시키는 기법으로 이미 검증되었고, 플로어타임이나 플래쉬카드도 학습능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완치’라는 과대광고가 문제다. 장애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 면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검증된 특수교육이나 언어재활, 그리고 소아정신과 영역에선 결코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특수교육이나 재활교육에서 6개월이나 1년마다 교육계획서를 쓸 때 수리력, 언어능력, 사회성, 정서행동에 대해 어느 단계까지 성취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사후평가를 통해 향상 정도를 보호자와 함께 공유한다. 소아정신과 약물은 강박증, 우울증, 조증 등에의 효과 뿐 아니라 약품설명서에 주의사항으로서 부작용 현상에 대해 위약대조 임상시험 비율까지 기록하고 있다.


치료와 교육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 향상과정에서의 전후 중재방법과 반응 변화까지 상식적으로 표현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 막연히 기적과 같은 일시적 변화를 기대하하게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몇몇 기법을 통해 지능지수가 2~30씩 올라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검사지표는 객관적인 통계로서는 용이하나, 그것이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절대치가 될 수는 없다. 지능지수 검사지는 일반적 환경에서 평균적인 교육적 자극을 경험한 집단군에 적합한 문항들로 이뤄지며, 다른 중복 장애나 질환 또는 특별히 소외되거나 자극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이에게는 오차범위가 클 수 있다. 또한 검사지와 비슷한 유형의 문항으로 반복학습할 경우 암기 효과로서 점수 변화가 커질 수 있다.


실제 장애재판정 시 장애등급이 해지되어 사회적으로 보호나 이해도 받지 못한 채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현장에서의 세심한 관찰을 통해 장애등급을 받지 못한 경계선장애학생까지 특수교육 대상으로 포함하여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를 증명할 보호장치 없이 학교나 사회에서 조금 부족한 지능과 독특한 사회성으로 인해 혼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완치라는 유혹에 부모들이 계속 흔들리는 이유는, 장애를 다양성의 관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쳐야할 개인의 질병이나 사회적 낙인 등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관념에서 기인한다. 기실 사회적 인식과 환경이 신체적, 정신적 다양성과 개개인의 독특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장애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독특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지원하게 된다면 모두가 무장애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장애진단이란 개인의 능력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늠하는 절대치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의해 그 범위가 달라지는 통계적 수치로서 독립적 일상이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장치이다.


아직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장애를 두고 완치 운운하는 치료기관들은 그 자체로 모순이며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표출로서 약자들을 현혹하는 행위이다. 특정 기관에 과대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의존하려는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장애자녀의 독특한 어려움을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풀어가는 고귀한 과정에 부모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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