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자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으면 그의 일대기 정도는 알아야 한다.

더스페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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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16:58

누군가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일지라도 그를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너무도 자주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을 사랑하는 그의 가족과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 일하는 선생님 그 밖의 많은 분들은, 자주 이런 보편적인 사랑과 이해의 불일치 현상 속에 놓여지게 되곤 한다.


우리가 '발달장애' 라 부르는 그 현상들은 그것이 한 개인에게 발생되는 순간 의사의 진단기준으로 표현되는 공통적인 속성을 넘어서는 개별적인 특성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우리가 그들을 분류하고 등급을 나누는 것은 의학적 진단과 법적, 행정편의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인 것뿐이지 실제 장애인들이 그렇게 나눠지지는 않는다. 아니, 모든 개인은 그렇게 나눠질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을 영어로 표현할 때,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존재 즉, in+divde+al = individual 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을, 장애를, 바라본다면 장애인을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연구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장애가운데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이성과 감성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매커니즘에 장애가 발생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 기타 정신적인 상태에 장애를 입은 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돕는 일이 지체장애나 감각장애를 이해하고 돕는 일보다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있다.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손상이 발생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손상이 생기면 그를 대하는 상대방이 가족이라 할 지라도 그를 이해하는 것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뇌신경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 화성의 인류학자 」라는 책에서 자폐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 반응 없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아이를 볼 때 부모는 자책의 늪에 빠지 쉽다. 자폐아를 둔 부모는 사랑해 주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붙이고 사랑을 쏟기 위해 애를 쓴다. 상상이 되지 않는 낯선 세계에 사는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모두 허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사실 자폐증의 역사는 여러 가지 '돌파구'를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 자폐아를 둔 한 아버지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4년마다 '기적적인' 치료법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식이요법이었고, 다음에는 마그네슘과 비타민 B6였고, 그 다음으로 강제적 포옹과 조작적 조건 형성, 행동 수정이 차례로 이어져죠. 지금은 청각신경 둔감화와 의사소통 촉진법이 대유행이랍니다." 열두살인 그의 아들은 닿을 수 없는 곳에 갇힌 채 말문을 열지 않았고, 모든 요법을 동원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때문에 비관적으로 남의 탓을 한다고 아버지를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가지 요법의 효과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떤 사람은 일부 요법에 놀라운 반응을 보이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자폐인은 닮은꼴이 없다. 각 사례마다 정확한 상태나 증상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자폐성의 특징과 기타 개인적 특성들이 아주 복잡하게(그리고 독창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한번 힐끗 보기만 해도 진단을 내릴 수 있지만, 자폐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으면 일대기 정도는 알아야 된다. (화성의 인류학자, p.353)



자폐아들의 부모나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이미 그의 일생을 함께 하게 될 운명에 있다. 부모의 노력과 현명함에 따라 그 시간이 좀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는 있으나 어쨋든 그와 함께하는 한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부모든 교사든 그 '자폐'라는 현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수용이 이루어지면 그 때부터는 그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고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실제 아직 나이가 어린 자폐아를 키우면서도 그렇게 깊이 아이를 이해하고 계시는 부모님들을 아주 가끔 만나기도 한다. 나이가 좀 더 든 자폐아의 부모들 가운데는 그런 분들이 더 많다. 즉, 아이의 나이에 비례해 아이를 이해하는 깊이도 더 깊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폐인을 이해하려면 그의 일대기를 알아야 된다'는 말을 인정한다면, 교사와 치료사는 자폐아를 이해하는데 가족들보다 더 불리한 조건에 있다. 평생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지 않는가. 그 때문에 그를 만난 그 순간부터, 그의 모든 외적, 내적 개인사를 최대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전문지식과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교사와 치료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임상 능력과 경험 그리고 공감능력으로 지금 내게 맡겨진 '이 아이'와 가족을 포함한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교사나 치료사들이 부모보다 더욱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이것은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모든 교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일 수 있이지만, 보통의 상식이나 지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병리적 증상들을 지닌 자폐아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치료사들에겐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아이가 쉽게 이해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더 많은 지식과 긴 시간의 노력이 없이 그것은 불가능하며, 아이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서 아이를 잘 가르친다는 것또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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