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개인의 손상을 줄이기 보다는 삶을 가능하게 지원하기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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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23:43


UN장애인권리협약의 서문에 ‘장애(Disability)는 손상을 가진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태도적, 환경적 장벽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 라는 문장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을 따져보면, 장애는 개인이 신체기능이나 정신기능에 손상을 입어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한 한 측면, 환경과 태도가 제한과 제약이 많고 이해가 적어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한 또다른 한 측면이 맞부딪혀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세계 기준으로 장애인구는 전 인구의 약 15-20% 정도라고 한다(한국의 등록 장애인구는 약 6% 정도이다). 이 장애 기준은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사회적 제약이 있는 사람과 노령 인구를 포함한 것이고, 때로는 이주자, 이민자 중 적응이 어려운 사람도 포함한다. 이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 장애가 덜해지는지, 더해지는지는 환경과 태도의 영향도 크게 좌우한다.


신체와 정신기능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무조건 환경에만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 기질도 자기 자신과 가족이나 관계에 영향을 준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각자 다르다. 이런 것을 개인적 요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장애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사람에게 존재하는 개성이며 특징이다.  


이렇게 한 개인에게는 신체의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을 형성하는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신체(정신, 즉 신경계를 포함하여)의 손상(injury)만을 장애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영어로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한다. 이 때 장애는 영어로 Disorder라고 하여 기능장애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이는 신경계의 기능에 손상이나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이 말은 Disability로 번역하는 장애와는 의미가 다르다. Disability는 생활과 삶에서 능력이나 참여에 제한과 제약이 있는 상태도 포함한 의미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제한되며 특정하게 반복하는 감각행동이라고 통계적으로 규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이 정신의학적인 진단방법이다. 이는 행동을 규정한 것이고,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관련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관련 있는 것으로 연구되는 보고는 신경의 연접이 과밀하고 신경의 가지치기가 잘 되어 있지 않다는 특징이 있는데, 어떤 신경구조가 특징적으로 비슷한지, 어떤 신경세포가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규명은 연구마다 다르다. 다시 말해,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특징은 있지만, 정확히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규명은 Disabilty에 대한 규명이 아니라 Disorder나 Injury에 대한 규명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disorder)가 있는 사람이 생활에서 무능력 또는 비능력(disability)한지 생각해보자. 그건,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고 특정한 과제나 활동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생활적으로 보자면 식사나 목욕, 청소와 규칙적인 생활을 깔끔하게 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이 존재한다. 그럴 때 이 사람은 특정한 일상생활의 능력이 없는(disability) 사람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일터에서 정해진 업무가 익숙해지면 꾸준하게 수행하여 저금도 하고 여가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의 경우 자폐성 장애로 진단을 받았고,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이 어렵고 특정하게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많은 반복행동을 하지만 일상생활과 직업 및 여가생활의 장애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경우는 진단과 행동 어려움과 생활능력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앞서 통계적인 결과를 말하였다. 15-20%의 인구. 장애인구라고 하는데, 이 통계에 분류된 사람들은 손상인구가 아니라 손상이 있는데 행동과 생활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손상은 없는데 행동이나 생활의 능력발휘나 참여가 제한된 사람을 의미한다. 후자는 장애(disorder)나 진단된 의학적 상태가 아닌데 장애가 있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환경이 낯설거나 환경의 제약이 크거나 기회가 없어서 능력을 갖지 못하거나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두고 연구한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적응하지만 개인의 능력이 어려운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고 주변의 태도를 바꾸었더니 생활참여를 가능한 정도로 하더라는 것이다. 

똑같은 개성이나 손상의 수준인 사람, 진단명을 가진 사람이 삶을 똑같이 살지 않는다. 이는 자폐증의 뇌 구조나 크기가 다른 것만큼 서로 상관성이 낮다는 결론이 지어진 이야기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재활을 한다거나 발달지원을 한다거나 치료(cure가 아닌 therapy 또는 중재)를 한다는 의미는, 그 사람의 손상을 없애거나 줄이는 노력이나 개인의 개성을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과 삶을 가능하게(Enable) 지원한다는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을 통한 개인의 억제능력 향상이나 손상을 줄이는 방법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는 결론 또한 검증된 이야기이다. 똑같은 개성이나 손상의 수준인 사람, 진단명을 가진 사람이 삶을 똑같이 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는 곳이 다르거나 사는 나라가 다르거나 같이 사는 사람들과 커뮤니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을 바꾸는 노력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시작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을 바꾸어야 한다. 장애를 바라볼 때,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태도가 편견이 있고 무지한지, 물리적 환경에 장벽이 있는지를 우선 바라봐야 한다. 사회와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개인들의 무단한 노력으로 문제증상이 줄어들고 손상을 의학적으로 치료해도 삶의 장애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개인을 바꾸기 위한 노력만큼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서 환경이 바뀌게 되면 이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는 개인에게 들이는 노력의 양에 비해 효과가 크다. 개인에 대한 노력을 멈추라는 의미가 아니다. 순서를 의미한다. 


노력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쏟아야 할 노력의 순서는 어때야 할까. 손상이 있고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살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게 하는 데 노력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 지석연 (발달장애지원 전문가포럼 / 작업치료사 / SISO 감각통합상담연구소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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