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이중돌봄제공자의 분노와 절규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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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21:19




114년만에 가장 더웠다는 올여름 폭염에 엄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밤에 주무시는 사이에 찾아온 뇌경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가 다음날 아침에서야 거동을 못하는 엄마를 수상히 여겨 119를 불렀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응급실 담당의는 며칠 전에 엄마와 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에 도착한 70대 할아버지가 몇 시간 후에 사망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응급실에서의 긴급한 상황을 거쳐서 뇌졸증집중치료실에 엄마를 두고 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뇌졸증집중치료실에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엄마는 닷새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뇌부종이 심하지 않아서 두개골 절개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오른쪽 뇌의 80%가 손상을 입어 왼쪽 편마비가 왔다. 각종 검사가 연이어 이루어지고 다양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80대의 고령에다가 욕창과 낙상의 가능성이 높아서 보호자가 24시간 대기해야했다. 나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지환이도 돌보아야 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도 돌보아야 하는 이중돌봄제공자가 된 것이다. 


지환이가 어릴 때 보육뿐만 아니라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후 각종 치료와 특수교육을 섭렵하느라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엄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직장에 다니다가 뒤늦게 공부하겠다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집안 살림에 신경 쓰지 않고 지환이의 치료와 특수교육에 매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연구자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지환이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쓰러졌으니 돌봐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맡은 일이 있고 지환이도 아직은 나의 손길이 필요하니 간병인을 구하기로 하였다. 아버지가 암투병 하실 때는 삼남매가 돌아가면서 간병을 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몸과 마음이 젊은 40대였다. 그리고 엄마도 건재했었다. 다행히 경력이 많고 노련한 간병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입원한지 두달이 되어간다.


지금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와 재활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거동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퇴원하면 좋으련만 입원한지 6주가 지나면  무조건 다른 재활병원으로 옮겨야 한단다. 중한 환자가 속속 입원하기도 하지만 환자가 장기입원을 할수록 건강보험공단이 병원 진료비를 보전해주는 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은 장기입원환자가 많으면 비용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신참환자를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3개월마다 병원을 옮겨 다니는 재활난민이 된다.


이런 이유로 다른 재활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재활병원이 대기기간이 최소한 한달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나와 우리가족이 그동안 납부한 건강보험료와 세금이 얼만데.. 왜 정작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가 원하는 치료와 재활을 제대로 받을수 없는 건가.. 그리고 하루 몇 만원에 달하는 간병비를 왜 꼼짝없이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를 돌보는 일은 왜 당연히 가족이 감당하는 건가..


지환이가 발달장애를 진단받았을 때에도 어디서 어떤 치료와 교육을 받는지 내가 일일이 알아보고 다녀야했다. 지금이야 발달재활서비스라는 제도가 생겨서 치료바우처로 약 20만원 정도의 공적 지원금을 받지만 당시에는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했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를 가진 지환이를 치료하고 돌보고 교육하는 일을 왜 온전히 가족이 떠맡는가. 국가는 무엇을 하는 존재이며 사회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엄마가 입원한 후 집안살림도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연구소에서 맡은 일하랴 지환이 돌보고 학교 보내고 일정 체크하랴 엄마 간병하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다. 다행히 할머니가 입원해서 엄마가 할일이 많고 바쁘다는 걸 눈치챘는지 지환이가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가족 그리고 가족이 간병비를 부담하는 간병인의 돌봄을 받고 있다. 맞은편 침대에 누워있는 30대의 미혼 여성을 돌보는 이들은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노부모이다. 등이 굽은 늙은 엄마는 누워있는 딸을 돌보는 일이 힘에 부쳐서 모진 말을 내뱉기도 한다. 늙어 기력이 부족한 아빠도 이 상황이 감당이 안되는지 가끔 버럭한다. 옆침대의 환자는 상태가 위중한지 두 명의 가족이 달라붙어서 돌보고 있다.


다행히 다음으로 옮겨갈 재활병원에 병실이 나서 대기상태인데 간병인이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알려왔다. 그동안 하루도 쉬는 날 없이 힘들게 간병해 온 걸 아는지라 더해달라고 붙잡지 못했다. 그래서 간병업체를 통해서 다른 간병인을 구했다. 오늘 기존의 간병인은 가고 새로운 간병인이 왔는데, 당황스럽게도 새로운 간병인이 엄마의 상태를 보더니 힘들 것 같아서 못하겠다며 그냥 가버렸다. 간병업무 인수인계해 주러 병원에 들렀던 나는 순식간에 간병을 떠안게 되었다. 지환이가 마침 학교캠프를 떠나고 집에 없으니 망정이지. 


간병업체에 연락해서 다시 간병인을 구해달라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다. 주말에 연구소에서 맡은 일을 해야 하는데 꼼짝없이 병원에서 엄마를 돌보는 일에 묶이게 되어 버렸다. 이중돌봄제공자의 처지가 된 것도 힘든데 병원치료라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받게 해주던가, 간병 부담이라도 덜어주던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간병인이 그만 두겠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가. 고령인구는 급속하게 늘고, 가족은 해체되고, 1인가구는 증가하고, 결혼과 출산은 감소하는데,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빈약하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가족이 돌봄을 떠맡게 할 참인가.


청와대에서 중증중복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어려움을 토로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북지부 김신애 회장의 절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청와대에서 발달장애 평생케어 정책이 발표되었으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생겼을 때 공적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을지 궁금하다. 특히 담당부서들의 장관과 공무원들 말이다. 학교, 병원, 센터 등의 시설을 늘린다고 케어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적합한 사람을 준비하고 그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부적합한 기존의 시스템은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돌봄에서 제일 중요한건 돌봄의 질의 보장이고 따라서 사람이다. 엄마병실에서 예정에 없던 독박간병을 하면서 이중돌봄제공자로서 분노와 절규의 목소리를 내본다. 



정병은 / 사회학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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