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배움에는 맥락이 중요하다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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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4 15:44




글 : 정병은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코로나의 창궐로 인해 개학이 연거푸 연기되고, 급기야 온라인 개학이 이루어졌다. 개학을 둘러싸고 혼란스러움과 불만족이 표출되었지만, 당분간 원격수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코로나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멀리 내다보고 온라인 개학을 결정했으면 좋았을텐데, 찔끔찔끔 2주씩 개학을 연기한 점은 매우 아쉽다. 학교 선생님들이 뒤늦게 결정된 온라인 개학과 원격수업을 준비하느라고 힘든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가 원격수업 인프라가 부족하다니 놀랄 일이다. 학교에는 오래된 컴퓨터가 많아서 원격수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교실에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니, 우리나라 IT강국 맞나? “21세기의 학생들을 20세기의 선생님들이 19세기의 교실에서 가르친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실태를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은 서버 다운 등의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원격수업의 질에 대한 불만이 많다. 대부분의 수업이 EBS나 유튜브 영상만 틀어주거나, 원격수업을 준비하는 교사의 미숙함이 지적되었다. 유명학원의 1타강사 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학생들이 보기에 학교교사의 원격수업은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교사집단의 역량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고 본다. 


그런데 발달장애학생에게는 원격수업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를 보이는데 이는 기술이 발달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발달장애인에게 학교란 무엇이며 왜 학교에서의 대면수업이 필요한지를 반증해 준다. 


먼저 용어부터 살펴보자면, 온라인 개학과 원격수업은 공급자(교육부, 학교, 교사)의 용어이다. 학교는 개학을 하고 교사는 원격수업을 통해 학생을 ‘가르친다’. 반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원격수업을 통해 ‘배운다’. 배움이란 몰랐던 사실을 알고 지식을 쌓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무엇을 위해서 배우는지 생각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적합한 방법을 궁리하며, 나아가 실천해야 진정한 배움이다.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축적한 지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가져오고, 상황에 맞춰 적용해서 몸에 각인시켜야 한다. 입시공부가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왜 자신이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모든 입시가 끝나면 몇 년간 쌓은 (죽어있는) 지식이 휘발되고, 대학 강의실에는 초점을 잃고 유체이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발달장애학생은 장애진단 이후 특수교육을 받느라고 이러한 살아있는 지식 습득과 실천의 배움을 갖기 힘들다. 자녀들은 자신의 관심과 흥미, 선호를 표현하기 어렵고, 어떤 특수교육을 왜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권이 별로 없다. 자녀의 연령이 낮을수록, 장애가 중증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러다보니 교사와 학생 간에 쌍방향으로 일어나야 할 배움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습득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여기서 꿈은 단순히 직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의미한다. 제대로 살아있는 배움이 이루어진다면 발달장애학생도 꿈을 꾼다. 


그런데 발달장애학생의 배움에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특정한 맥락(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이유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이지 단순한 문자학습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데, 표현과 이해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맥락(상황)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는 발달장애학생의 배움에서 맥락(상황)을 제공해 주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특정한 맥락(상황) 없는 배움은 추상적이고 일반화시키는 사고가 요구되는데, 발달장애는 이러한 고차원적 인지를 어렵게 한다.


특수학급에서 초등학교 6년을 보내면서 지환이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고, 학교시스템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 결국 대안학교로 떠밀려 가게 되었지만 지환이에게는 더욱 학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환이는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면서도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만약 장애가 없거나, 단순한 지식습득이라면 홈스쿨링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환이에게는 사회성이 핵심적인 배움의 요소이고, 교사 및 친구와 부딪히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경험의 맥락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는 지환이가 다녔던 중등대안학교 교사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묶음을 발견하여 읽게 되면서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학생들과 원만하지 못해서 쌓인 분노가 중학교 시절 사춘기와 결합하면서 지환이는 통제가 어려운 ‘골치거리’, ’문제학생’이었다. 교사와 학생에 대한 공격적인 언행, 규범의 무시와 일탈로 다수의 학생들과 갈등하고, 교사들이 두손 두발 드는 상황이었다. 지환이의 행동을 바로잡기 위해서 교사와 학교생활을 공유하고, 문제행동에 대한 벌로 등교를 금지당하고 가정학습을 시키는 등 일련의 힘든 과정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환이의 문제행동은 조금씩이나마 잦아들었는데,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바꾸는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대화법, 감정조절 등의 학교수업은 이런 상황에서 지환이의 배움은 증폭될 수 있었다. 온라인 개학에 따른 원격수업이 장기간 이루어지게 된다면 발달장애학생이 구체적인 맥락(상황)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학교가 발달장애학생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발달장애학생의 학교생활은 많은 난관을 마주칠 것이다. 난관을 헤쳐나가는 어려움은 학생과 부모를 지치게 하고 때로는 좌절시킨다. 그래서 원격수업이 더 편하고 좋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발달장애자녀 교육의 장기적인 목적과 비전을 떠올려본다면 학교는 사회성을 배우고 익히는데 필요한 맥락(상황)을 제공해 주는 필수적인 공간이다. 지역사회에서 타인과 어울리며 살아가려면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준비해야 한다. 가정의 제한된 울타리를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맥락(상황)에서 진정한 배움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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