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아기상어 춤을 추는 발달장애청년

김성남님

0

4814

2020.06.29 18:38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코로나 국면이 아니었다면 재현씨가 올봄부터 다니게 될 복지관 프로그램이 시작도 못하고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코로나 국면이 반년을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활동과 프로그램을 궁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선생님(사회복지사)들도 재현씨의 가정활동을 위한 동영상 안내와 여러 재료, 교구를 배달해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매일 가벼운 운동처럼 즐길 수 있는 동영상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복지관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어 동작을 연습하고 녹화에 자막까지 정성스레 입혔을 그 동영상의 제목은 ‘아기상어 아침운동’이었습니다. 그 선생님들에게 재현씨같은 지적장애 청년은 정신연령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아기상어 동요나 춤 정도를 좋아할 존재로 여겨졌을까 싶어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재현씨는 아기상어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춤 쪽이라면 오히려 보이그룹의 칼군무나 ‘아무 노래’ 챌린지 따라 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스무살 또래들이 좋아할 법한 컨텐츠를 더 좋아하면서도 토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딩동댕 유치원을 틀어놓고 번개맨 체조를 우당탕거리며 따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발달장애인이 무엇을 좋아할지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없다’여야 합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마음속을 훤히 알 수 ‘없다’여야 하고, 정신연령에 맞추어 취향도 어린 아이 같을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도 ‘없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코로나 집콕활동 키트’를 제공할 때 우선 고려해야할 점은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무엇에 흥미를 보이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려워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향과 내용으로 서비스를 계획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교육의 목표를 정하기 이전에 현행수준을 파악하는 단계이기도 하고 서비스를 계획하기 이전에 사정이나 진단(assessment)을 하는 단계입니다. 


만약 개인의 수준이나 요구, 필요와 상관없이 타당성이 부족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된다면 설령 그 준비과정에 아무리 공을 들이고 시간이나 자원이 투입된다고 해도 상당부분은 헛수고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준비했는데 그것이 애초부터 적절한 방향성을 잃은 것이었다면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했고 노력했다는 자체에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발달장애 관련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도 성실과 친절을 큰 미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길이나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여정 속에서 아무리 규칙을 잘 지킨다 한들, 게으름 피지 않고 꾸준히 갔다고 한들 잘했노라고 응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기상어 동영상을 제공받은 발달장애 젊은이 중에는 이 동영상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 단계의 진단이나 상황파악 없이 서비스를 계획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 한 명은 이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요행을 바라는 격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개별화 (Individualized) 또는 사람 중심 (Person-centered)이 중요한 가치이자 원칙이어야 하는 발달장애서비스에서 단순합산에 의한 평균치를 성과로 오해하거나 무계획·무진단의 요행을 기대하는 것은 가장 조심하고 피해야 할 자세입니다. 


서비스를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더 세심하게 챙기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집콕활동’으로 3분 즉석요리 데워먹는 활동을 제안한다면, 요리 동영상 링크를 공유하고 사진자료로 만들어서 칼라 출력하여 안내하는 것에 더하여 3분 즉석요리 제품과 즉석밥은 물론이고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그릇까지 챙겨서 키트를 구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고 꼼꼼한 가정활동재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하여 즉석요리를 만들어 먹는 활동에 흥미가 없거나 수준에 맞지 않는 경우라면 위와 같은 친절함과 꼼꼼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정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발달장애인 이용자를 위해 열심히 기획하고 안무 연습에 동영상 제작에까지 힘써주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친절과 성실에는 항상 함정이 있을 수 있지요. 손동작과 동선을 궁리하기보다는 발달장애인의 취향과 필요를 더 궁금해 하고 동영상을 녹화하고 편집하기보다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다양한 컨텐츠를 더 살펴보며 입맛에 맞는 정보를 발달장애인과 가족에게 연결해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이기를 기대합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