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의 조력자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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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20:29




글 : 백미옥 (성인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 장애인권강사)


조력자는 회원들과 함께 있을 때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그림자이지만, 회원들과 떨어져 있을 때는 회원들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눈에 박아야 하는 천체망원경이 되어야 한다. 구름 뒤에 숨어있다 나타났을 때 미세한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확인하며 보고 또 보는, 구름이 걷히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보고 또 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신념으로 지원하고 있는 다양한 자조모임의 요모조모를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자조모임 A – 시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을 주저하는 상황에서도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구성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진행 하겠다면서 발달장애인 20대 청년 7명의 인권교육을 의뢰받았다. 담당 사회복지사의 야무진 꿈을 열렬히 응원하면서 주저 없이 시간을 내어 참여하였다. 대중교통 이용이 위험한 시기이니 남편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매주 한 번씩 인천과 광명을 달리고 달렸다. 퇴근시간으로 뒤엉켜 차량 행렬 속에서 저속으로 걷다시피하는차 안에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담당자의 목표인 이 청년들이 모임을 지속하겠노라고 자조모임을 선언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원하노라고!


드디어 3개월 만에 담당 복지사와 나의 바람대로 청년들은 자조모임을 지속하고 싶다고 회원 모두 일치하는 의견을 내어 주었다. 자조모임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으니 자조모임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자조모임을 하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자조모임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해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마지막 주 내용을 미리 예고했다.


모임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과 생각의 구조가 달라 각자 개성 있는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함께 거쳐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다는 삶의 공식을 가기 다른 성향을 가진 청년들에게 이해하고 기억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여 인권에 대해 안내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이 자조모임의 조력자는 이미 계속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담담복지사로 선택되었다.

평소 만나봤던 다른 사회 복지사분들과는 달리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가슴과 머리에 담고 계신 분인지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조모임의 구성원들은 모임에 참여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더불어 선택에 대한 정보를 쉬운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게 제공 받아야 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존중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준다면 누구든, 언제든 그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조모임 B – 학교를 대신하는 소중한 만남


자조모임을 일찍부터 경험하게 하고픈 보호자들이 구성한 중, 고등학생들의 모임에서 나를 조력자로 선택해 주었다. 중고생이 함께 모인 자조모임에서는 그들의 특성을 살려 학교생활에 흥미를 갖는데 익숙해 질 수 있도록 온갖 지혜를 뽑아 조력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교과서에 수록된 악보에 가사와 계명이 함께 그려진 음악을 계속 틀어 놓고 활동을 하면 “아! 저거 들었어요, 저거 알아요.” 하면서 흥얼거리며 신나게 활동을 이어간다. 또래의 학급 학생들이 하는 교과서의 미술 활동을 펼쳐 놓으면 “아, 나도 이거 하고 싶었어요!” 라며 반갑게 도구를 챙겨든다. 또래 학생들이 하는 보드게임을 늘어놓고 변화무쌍한 우리들의 규칙을 만들어 가며 함께 즐기는 법을 알아간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그나마 1교시 30분씩에 점심식사 까지만 허용되고, 마스크를 입에서 내려놓지 못하며 하는 불편한 학교생활이지만 또래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주1회 자조모임 2시간동안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 선택과 결정에 어려움이 많은 이 십대들은 다른 또래들이 하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경험하고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갖게 될 것이다. 이 시기를 먼저 보낸 내 딸과 아들을 겪어낸 내 경험이 그 또래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특이한 조력자의 감성으로 이 모임의 학생들에게 안전하게 반사될 것이니까 말이다.


감사하게도 이들의 보호자들은 가정과 연계된 활동에도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충분히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보호자들이 자조적으로 구성한 모임이라 거의 매번 장소를 옮겨 가며 매주 모임을 이어가고 있지만 자신을 믿고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가족들 덕분에 변동되는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자조모임 C – 팝콘은 거들 뿐


코로나19의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자조모임은 복지관도 주간보호센터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집에서 종일 보내다가 유일하게 자조모임 하는 그 날만 바깥바람을 쐬게 되는데 지역적으로 경계하라는 엄중한 시기엔 자중하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임은 몇 년 전부터 지자체 행복센터의 주민활동교실들을 대관해서 이용해왔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절대 출입금지라는 통보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지역의 `스터디 카페‘를 이용해 만남을 이어온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아마 이 팀이 최초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은 처음 봤다는 사장님의 입소문을 통해 이 지역에 확실하게 존재감을 나타냈다, 조력자가 준비한 정보들에 놀라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과 느닷없이 소리 지르며 마구 뛰어 긴장감을 푸는 무서울 정도의 감정표현으로 양면의 모습을 여과 없이 이웃들에게 제대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머님들의 수고로 아무 설비가 없는 조명만 있는 넓은 새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는 거리두기를 위해 특별히 각자 장만한 커다란 은박돗자리를 원하는 자리에 익숙하게 옆 사람과 겹치지 않게 쫙 펴는 일로 모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예전에 극장에서 숨죽이며, 눈치 보며 봤던 영화들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감상하는 것이 이들의 영화감상법이다. 영화 중간에 오해할만한 장면들이 나오면 내가 설명을 곁들여가며 장면을 다시 곱씹어보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장면에서는 벌떡 일어나 따라 하기 내공을 자랑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편안한 감상이 가능한 곳이니 팝콘이 인기있을 리 없다. 미리 준비해온 팝콘은 돗자리 옆에 그대로 놓여져 있다. 아마 극장에서의 팝콘은 맛있어 먹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 먹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자조모임 D – 스스로가 주인되는 자조모임


내가 관계하고 있는 자조모임 중, 계속 톡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자기주장을 또렷하게 잘하는 몇 명의 청년들이 주도하는 자조모임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언제 만나도 되나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더니 그들은 결국 스스로 안전하게 무장하고 만나자며 강한 만남의 의지를 표현했고, 원하는 회원들이 먼저 코로나의 빗장을 열고 모임을 하게 되었다. 한 회, 두 회, 모임이 진행 되는 모습을 확인 하고 나서야 회원들이 모두 합체하는 감동을 보여주었다. 바깥 활동을 좋아해서 늘 어디 갈까를 논의 하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실내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활동들을 스스로 찾아내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안팎으로 서로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며 위로하는 정을 쌓아가고 있다. 격한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으로 종종 나를 초긴장 속으로 몰아세우던 위태롭기 짝이 없던 회원들이었는데 요즘 나로 하여금 묘한 반전의 감정을 심어주고 있다.

  

자조모임 E – 정보를 얻어가는 알찬 모임


자조모임 조력자의 역할 중 하나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우리 발달장애인들의 알권리를 옹호하고 바른 정보를 알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만남이 중단된 또 다른 자조모임의 회원들에게 코로나가 무엇이며, 마스크를 지속적으로 쓰고 있어야하는 불편함에 대해 공감하며 마스크를 잘 쓰는 방법, 마스크를 안전하게 버리는 방법, 마스크를 갈아 껴야하는 시기와 손씻기 6단계 등에 대한 정보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기 위해서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여 회원들의 단체 sns 에 올려 제공하였다. 미흡하고 어설픈 동영상이었지만 회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대해 함께 영상을 반복해서 본 가족들은 “쉬운 설명에 속이 시원하다, 이젠 마스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다.”는 말을 알려왔다. 메시지가 한 글씩 올라 올 때 마다 감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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