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장애체험활동, 장애인식개선에 도움될까?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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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 11:44


장애체험활동, 장애인식개선에 도움될까?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어린이 박물관에 가면 'Power of Children' 이라는 기획전시실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큰 용기를 보여준 세 명의 아이들에 대한 소개와 체험부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라이언 화이트입니다.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진실이 아직 세상에 정확히 알려지기 전이었던 80년대에 라이언은 혈우병 치료를 받다가 에이즈에 감염되고 맙니다. 에이즈에 대해 부정적이고 두려운 시각이 절대적이었던 당시, 라이언의 학교 학부모들과 선생들은 서명운동까지 펼치며 라이언의 등교를 거부하게 되지요. 이 부당한 처우에 맞서 라이언 가족은 수개월간의 법정공방을 펼친 끝에 다시 복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라이언이 맞닥뜨려야 했던 것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격려와 응원이 아니라 냉대와 왕따, 욕지거리와 가혹한 차별였지요. 죽음의 위협까지 받아야 했던 라이언 가족은 결국 그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새롭게 정착한 마을에서 그는 편견없는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라이언 화이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이클 잭슨이 만든 노래가 바로 'Gone too soon' 입니다.)


이 어린이 박물관에 가면 라이언의 짧은 생을 소개하는 쇼킹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는데요. 라이언이 온갖 멸시와 차별을 감내하며 다녀야 했던 중학교의 복도를 체험하는 전시입니다. 학생들의 사물함 사이에 라이언의 라커가 배치되어 있는데 라이언의 것에만 온갖 더러운 낙서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도를 지나가는 동안 라이언이 들어야 했던 욕설과 비난이 음성으로 흘러 나옵니다. 박물관은 그 불편하고 아팠던 진실을 어린이 방문객들이 직접 체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기획전시의 의도는, 병마와 싸우는 불쌍한 라이언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세상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반성하고 이에 홀로 맞서야 했던 라이언의 용기를 보고 배우라는 것이겠지요. 


현재 현장에서 시도하고 있는 장애체험활동도 이런 관점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세상을 겪어보는 장애체험이란 걸 처음 보았을 때 제 첫 느낌은 이랬어요. "뭐야 저거. 저 불편한 걸 왜 굳이 체험해"

장애를 불편함과 박탈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생각의 끝은 결국 장애에 대한 동정 이상은 아닐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 가족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영역의 종사자가 바라는 것이 동정심에서 비롯된 얄팍한 시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장애인식체험이 이런 수준에 그치는 것은 유감입니다.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것은 "당신들도 장애가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보세요" 가 아니라 "당신들이 보여주는 불편한 시선과 배려없는 말 한마디가 우리에게 얼마나 무섭고 힘겨운 폭력이 되는지 알아주세요"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장애를 체험하는 이벤트가, 장애의 불편함을 체험하는 이벤트에서 장애를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편견을 반성하는 이벤트로 조금씩 바뀌어 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의 편견, 그것이 조금씩 사라져 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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