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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적 관점에서 '장애'의 의미






가치중립적이고 감정중립적인, 순수하게 공학적인 관점으로만 인간을 바라본다면, 특수교육의 관점이나 의학적 관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라는 구분이나 복지제도를 위한 '장애등급' 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해 진다.

공학적 관점에서 모든 인간은 '사용자'다. 그러므로 장애나 장애의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어느 정도 잘 사용할 수 있느냐' 로 논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어떤 도구나 서비스 또는 콘텐츠를, 아예 접근 할 수 없는 상태부터 완벽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상태까지의 스팩트럼 안에 모든 인간이 포함된다. 여기서 '상태' 라고 표현된 것은, 그 사용자의 신체적, 감각적, 심리적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다.

따라서 사용자를 여기부터는 비장애고, 여기까지는 무슨무슨 장애 1등급이라는 구분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

나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그런 내가 어느날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가이드도 동반자도 없이 홀로 길을 잃었다면, 그리고 내 주변에는 한국말도 영어도 할 줄 아는 중국인이 아무도 없다면, 그 순간 중국어 사용자로서 나는 언어장애인 혹은 의사소통 장애인과 동일한 '상태'가 된다. 

심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볼펜을 사용해 휴지쪼가리 같은 종이 한장을 들고 거기에 글씨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순간 나는 손가락으로 펜을 사용하기 어려운 지체장애인과 동일한 '상태'가 된다.

소주 반 병이면 취하는 사람이 어느날 소주 두 병을 먹고 필름이 끊기면 그 순간 그는 기억력과 지각능력이 저하된 인지장애인과 같은 '상태'가 된다.

야간자율학습중인 고등학교 교실에서 갑자기 정전이 되고 비상등도 촛불도 없이 캄캄한 상태가 된다면, 그 순간 그 교실의 모든 사람들은 시각장애인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시각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의 사용자'가 있을 뿐이고,
지체장애인이 아니라 '신체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의 사용자'가 있을 뿐이고,
지적장애인이 아니라 '인지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의 사용자'가 있을 뿐이고,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청각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의 사용자'가 있을 뿐이고,
언어장애인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용자'가 있을 뿐이다.

이 때의 사용자에는 우리가 구분지어 놓은 장애인/비장애인이 모두 포함될 수 있고, 그 개인의 이러한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모든 사람이 일시적 혹은 상시적으로 처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여 도구, 제품, 환경, 서비스, 콘텐츠 등을 설계하고 개발하자는 것이 universal design, design for all, inclusive design, barrier-free design 등으로 불리는 설계방법론의 이념이다.

이것이 인간을 '판단'하지 않고, 
도구와 물리적 환경과 그 사용 맥락만을 고려하는, 가치중립적이고, 감정중립적이며, 객관적인 공학적 관점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역설적이지만, 나는 이것이 장애를 바라보는 가장 인간적인 관점이라 생각하며, 내 연구개발의 궁극적 지향도 이 관점이 적용된 콘텐츠와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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