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민기씨의 ‘혼자 살기’를 응원하며





“민기씨, 혼자 살아봐라 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좋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32살 발달장애인 한민기군의 혼자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큐에세이 ‘그 사람’에 방송 되었다.


발달장애자녀를 가진 수많은 부모들은 ‘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다 가고 싶다.’라고 흔히 말해왔다.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 발달이 더뎌서 이 복잡하고 험한 사회를 홀로 살아가기에 너무나 큰 어려움을 가진 자식을 보면서 차마 손을 놓지 못하고 생의 끝까지 돌봐주어야 하는 숙명을 이야기한 것이다.


부모가 먼저 떠난다면 누가 발달장애인을 돌봐줄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장애형제의 그늘 밑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남은 평생까지 맡겨야할까, 삼촌, 고모, 이모, 제 삶 살기도 벅찬 친척들에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돌봄을 맡겨야할까, 수용가능한 생활시설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장애인들만 모여사는 시설에 맡겨 평생 단체생활로 정해진 삶을 살게 해야할까. 그 어느 곳도, 어느 누구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런데, 한민기씨는 다른 부모들이 걱정하는 미래와는 다르게, ‘혼자 살기’를 선택하였다. ‘나 혼자 잘 산다 원더풀라이프’ 하루하루의 자연스럽고 멋진 일상을 보여주었다. 비장애인들도 사춘기의 자아성장기를 지나 성인에 이르면 자연스레 부모에게 의존하던 습관을 버리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사적인 경험이나 지식과 정보, 사회적 관계들에서 부모의 영역은 점점 더 축소되고 부모가 알지 못하는 바깥 세계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 민기씨도 여느 비장애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직접 지은 밥에 된장찌개를 데워먹고 전철을 타고 직장에 출근해 일을 하고 오후에는 언어치료와 댄스,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며 특기를 살려 대회에서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주말이면 부모님을 만나 가게 일을 도와드리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사세요.”라고 따뜻한 인사도 건넬 줄 안다.


“혼자 사니까 외롭지 않니?”

“안 외로워요.”

“엄마랑 아빠랑 이렇게 같이 밥 먹으니까 어때?”

“너무 좋아요.”

혼자 사는 것도 좋고, 주말에 부모님을 만나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좋다는 솔직하고 건강한 민기씨의 대답은 모든 성인들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민기씨에겐 몇 가지 도움이 필요하다. 전기밥솥에 밥을 지을 수 있고 만들어진 된장찌개에 두부를 썰어 넣을 수는 있지만, 반찬을 요리하거나 식당에서 음식값 계산하는 일들은 스스로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부모님이 일주일치 반찬을 미리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먹도록 적절한 지원을 해주셨다.


빨래를 개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줬냐 물으니, “엄마와 같이 의논했어요.”라고 답을 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가르쳐준 게 아니라, 아마도 수건을 2단으로 접으면 좋을까 3단으로 접으면 좋을까 서로 의논하며 배웠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에서 민기씨 어머니의 지혜롭고 인격적인 교육방식에 존경심을 느꼈다.

“자식이 장애라 해도 한 달에 하나씩 배우면 일 년이면 12가지를 배우는 거잖아요.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가르쳤어요.”


교육과 성장, 지원과 자립은 개인과 환경 간에 유기적으로 함께 이뤄지는 것이다. ‘장애’ 진단이란, 홀로 독립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다만 그 지원의 방식과 양이 개인맞춤형으로 파악되고 설정되고, 또 서로 간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시기적절하게 조율될 수 있어야 한다.


음식지원과 일과 조정,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적절한 업무와 근무시간 배치, 교육과 여가생활의 병행, 그리고 지역사회의 식당, 편의점, 미용실 등 익숙한 이웃들의 배려 등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구체적이고 세밀한 지원이 민기씨의 생활반경 전면에 구석구석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민기씨보다 지능이나 사회성과 의사소통 면에서 더 중한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은 곁에서 24시간 지원하는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지원의 양과 방식은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다만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곁의 가족이나 지원인들은 세심한 관찰과 소통의 기술, 그리고 동등한 관계로서 존중하는 의식적 태도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완전히 홀로 독립해서 살 수 없다. 사람이 삶을 산다는 것은, 타인과 서로 적절히 의지하고 지원하여 필요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유기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며, 서로 간에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의존되는 방식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욕구를 표현하고 조율해가는 동등한 관계가 건강한 가정과 사회의 척도일 것이다.



참고: 부산MBC-TV 다큐에세이 ‘그 사람’ - <나혼자 잘살다 민기씨의 원더풀라이프>

1편: https://youtu.be/ZKLyo33y50c

2편 : https://youtu.be/oDvL2iCg4HU

3편 : https://youtu.be/waEwCRBb9Fs

4편 : https://youtu.be/oQBSWhJy5YQ


김석주 / 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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