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자립의 열쇠: 개인별지원정보 플랫폼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수학교 전공과에 떨어졌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돌 때쯤 발달의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처음 언어치료실을 찾아갔을 때부터 이십 년 동안 남편 뿐 아니라 시부모님까지 온 가족들이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비교적 남들보다 더 일찍 장애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아들의 눈짓 하나, 몸짓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교육의 기회로 삼았고, 학습 뿐 아니라 정서와 건강과 재능까지 모든 면에 정성을 쏟았었다. 비싼 치료실을 전전하는 어리석음을 삼갔고, 아들이 잠든 후 밤마다 교육 관련 서적을 읽으며 직접 가르치고 지원하는 생활교육을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갈 데가 없었다.


복지관과 직업재활기관 등 열 군데가 넘게 이용자 대기신청을 하고 기다리던 몇 달 동안, ‘지난 20년의 공들임은 그저 부분일 뿐이었구나, 성인기 이후의 길고 긴 몇 십 년의 삶은 더 망망대해, 척박한 사막이로구나.’라는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게다가 신청접수를 위해 찾아가는 복지관마다 체크하는 상담내용이

‘출생 때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장애는 언제 발견했습니까?’

‘그동안 받은 치료는 무엇인가요?’

‘상동행동이나 공격성, 자해 등 행동 문제가 있습니까?’

‘복용하는 약이 있나요?’

등으로 20년 전과 똑같은 문항들이었다.


그 동안 아들이 한자 6급 자격증을 딴 것, 지능로봇 조립대회에서 전교 1등을 한 것, 전국장애인기능경진대회에서 2년 연속 입상한 것, 그리고 스스로 일 년 동안의 집안일 스케줄을 짜고, 매주 금요일에만 단 한 번씩 설탕과자를 만들어 먹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 내내 참는다는 것, 자신이 시간약속을 정확히 지키기에 타인이 약속을 어길 때 화를 참기가 어렵다는 것 등 수많은 시행착오의 공을 들여 변화되고 성장한 일대기에 대해선 아무도 알려하지 않았다. 단지 ‘자폐성장애1급’이라는 명칭과 구두언어적 소통이 어렵고, 가끔씩 예민하게 화를 낸다는 것 정도로만 아들의 존재를 판단해버리고는 기관에 입소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였다.


열 군데의 기관을 다닐 때마다 그런 응대를 받으며, 대신 전하는 엄마도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데, 스스로 자신의 능력과 사연들을 표현하지 못하는 발달장애 당사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라는 암담함이 마음을 눌렀다. 혹여라도 내일 당장 남편과 내가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면, 아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온 20여년의 가치들은 누가 알아줄까, 누가 아들의 능력과 애로를 제대로 구분하여 수용할 수 있을까, 누가 구두언어보다 문자언어가 수월한 아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느껴졌다.


2016년 제정된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따라 각 시도마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생기고, 각 당사자가 속한 복지관이나 학교, 직업재활장 등을 담당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개인별지원계획을 작성하는 것에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만큼’이라는 모토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 지원계획을 작성하는 방식부터가 의사표현이 어려운 당사자의 소통지원체계가 부족한 채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부모가 원하는 것을 두서없이 이것저것 받아적기만 할 뿐, 정작 제대로 된 당사자의 행동이나 감각, 언어 등 기능적 특성, 그리고 상황마다의 정서적 반응 등에 대해선 아무런 파악도 분석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이 다니는 치료실, 병원, 졸업한 학교의 이력과 교육성취정도 등 당사자에 대한 내용들이 전혀 공유되지 않았고, 의료, 교육, 복지 등 기관에서는 거의 다 폐쇄적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아니, 엄연히 개인의 정보는 개인의 소유권인데 각 기관들에 뿔뿔히 흩어져 남들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인별지원계획을 수립하러 여기저기 발로 뛰며 찾아다녔을 담당자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병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복지관에서도, 치료실에서도 정보공유를 꺼리는 상황에서 받아적을 것이라고는 당사자도 아닌 부모의 주관적인 의견들 뿐인 현실에 그들로서도 난감했으리라. 그리고 각 시도마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의 개인별지원계획 수립 양이 일 년에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아날로그 방식의 조사에 한계를 절감했으리라. 부산만 해도 만 이천 여명의 발달장애인이 있는데, 일 년에 백 명씩 조사한다면 백 년이 넘어도 다 해내지 못한다는 수셈이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디지털 방식의 개인별지원정보 플랫폼 시스템의 구축을 제안하는 바이다. 학교 다니는 동안 학생의 성적관리가 nice사이트에서 일괄 구축되었듯, 스스로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표현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들의 개인별 지원은 디지털 방식의 시스템으로 정리되고 보호받고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출생 시 의료기록부터 장애진단, 그 후 약물복용이나 상담치료 등의 경과, 학교에서 개별화교육계획으로 진행된 성취 정도와 교육방법, 또한 치료실이나 복지관 프로그램을 통해 파악된 소통방법과 행동적 특성, 효과적인 중재방식, 그리고 직장이나 가정, 지역사회 속에서의 어려움과 지원의 욕구 등까지 각 기관에서 투명하게 개인의 플랫폼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의무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 개인의 정보는 부모로부터도 보호받아야할 권리이므로, 적법한 보호시스템 하에서 적절하게 필요시마다 개인의 동의 하에 공유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면, 후일 부모가 늙거나 사망하더라도 당사자의 살아온 이력은 언제까지나 효력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표현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후일 부모가 없이 아들이 혼자서 거주하게 되더라도, 면도는 스스로 할 수 있으나, 계절에 맞는 옷 찾아입기는 어렵다는 정보가 공유되어, 자립지원인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선까지만 도울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주말마다 지하철을 환승하여 다니기를 즐기고 혼자 이동할 수 있지만, 버스를 타고는 주춤거리다가 내릴 정거장을 놓치고도 스스로 수습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주변인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형님과 동생, 스승과 친구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려워하지만, 설명서를 보고 가전제품과 복잡한 기계조립을 스스로 완성해낸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할 일 꺼리를 제공해주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고, 세탁기도 돌릴 수 있으나, 빨래를 탈탈 털어서 말리는 것은 서툶을 타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사후에 아들을 위해 남겨주고 싶은 채비는 바로 이것이다. 의사소통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별지원정보 시스템, 그 플랫폼으로 표현되는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에요. 나는 이것을 원해요. 나는 저것을 어려워해요. 나는 언제나 성장하며 배우기를 즐겨요.’와 같은 아들의 일대기가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기록으로 구축되어 평생을 대변하는 것이다.



*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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