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스마트한 기술, 멋진 지원 계획!



(2017년 누림센터 국제세미나 원고입니다.)


스마트기술, 스마트한 세상


안 스마트한 내 아들, 약간의 억울함

얼마 전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인간의 고유영역인 ‘창의적 사고’ 역시 빅데이터 분석과 딥러닝 앞에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발달장애인 내 아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일과 깊이 반복적으로 배우는 일에 대해 ‘안 스마트’한 것 같다.
잠깐 아들아이 얘기를 하고자 한다. 아들아이는 유아기 때는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아예 검사가 불가능했었고, 초등 학령기 때는 IQ 65점 이하로 평가받았다. 그 동안 열심히 치료받고 공부시켜놨더니 놀랍게도 고등학교 1학년 땐 지능검사 결과가 82까지 올라갔고(나중에 6개월 이내에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지능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점수가 높았던 것은 그 영향이 아닐까 의심된다. 특수교육지원센터/혹은 특수교사는 왜 지능검사 실시 여부와 결과지를 부모에게 잘 전달해주지 않은 걸까?), 청년이 된 후 받은 최종 검사에선 IQ 76이라고 하였다. 지각추론 지수가 평균수준으로 다른 인지적 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행을 보인단다. 실제 조작을 통해 시각적 자극을 분석, 통합하는 능력이 우수수준(토막=14), 시각적 규칙을 추론하는 능력도 평균 수준(행렬추론=10)이라고 한다. 아들의 약점은 언어적 측면이다. 언어적 개념화 능력(어휘=3)과 고차적 언어적 개념 형성 능력(공통성=4)이 지체수준이고 학습으로 축적된 지식(상식=5)은 경계선 수준이다. 일상생활에서 긴 대화를 이어가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여전히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큰데도 높은 IQ점수 탓에 자폐성장애 2급에서 3급으로 ‘떨어졌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기뻐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혼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아이인데 국가가 이만하면 되었다고, 도움을 덜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보여서 억울함이 먼저 앞선다. 이 아이는 안 똑똑하다고 주장하며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내 입장이 상당히 애매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적응능력이 아니던가? 적응이 낮음을 증명해야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은가? 각자의 적응능력에 맞추어 알맞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하지 않는가?


스마트기술을 애정하는 아들, 디지털리트러시(Digital Literacy)

아들은 스마트폰 게임과 유튜브 동영상 검색, 게임 홍보 영상을 좋아한다. 가끔은 검색하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알아내곤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요즘엔 대통령선거에 약간 관심을 보인다. 누구를 찍을지는 비밀이란다. 승기가 스마트세상에 대해 ‘까막눈’이 아닌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글자를 읽는 것을 ‘문해(文解)’이라고 한다. 디지털화된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디지털리트러시(Digital Literacy)는 디지털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정확한 정보인지 평가하며 공유하고 종합하고 종합된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며 이를 통하여 당면한 문제의 해결방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어릴 적 아이의 의사소통 어려움과 행동문제가 컸으나 공간지각력이 좋고 글자를 익히는 것이 가능한 것을 알고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았다. 장애 특성을 잘 활용하여 글자를 익히고 시각적 자료와 조형작업, 관심을 가지는 영상자료를 안내하여 흥미를 가지게 하려고 애썼다. 자신만의 세계를 더 안전하게 여기는 아이에게 조금 더 다양하고 넓은 세상을 소개하려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중간 통로가 필요했다. 그것이 그림이었고, 동화책 테이프였으며, 만화영화와 컴퓨터 게임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와 아이가 함께 해온 작업은 아이의 의사소통을 돕는 것이고 디지털리트러시를 갖추도록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활용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었다. 우리 정부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포함하였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기술 시스템에서부터 문제해결과 프로그래밍에 이르는 영역의 정보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특수학교(급)는 발달장애아이들, 특별히 인지와 언어 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 학생에게 과연 디지털리트러시를 안내할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까? 아직 서투른 측면이 많아서 아쉽다.


AAC(Augment Alternative communication) 스마트 기술로 만나기

사실 언어사용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보완대체의사소통(AAC;Augment Alternative communication)은 특별히 스마트기술을 통하여 그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다. 보완대체 의사소통은 말이 늦거나 조음의 문제가 있는 아동의 말을 보완하여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 상호작용을 보충, 향상, 지원하거나 성대수술이나 조음기관의 마비로 인해 발음을 할 수 없는 경우에 말 대신 의사소통 도구 등 다른 대체적인 방법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포함한다. 그중에서 그림교환 의사소통 체계(PECS; Picture Exchange Communication System)은 표현언어가 부족한 자폐성장애나 기타장애를 지닌 아동에게 유용하다.
2000년대 중반, 나는 치료실에서 내 아이에게 제공되고 있는 PECS를 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보완대체의사소통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 아이의 일상적인 언어가 훨씬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AAC와 관련된 영상들 *
https://youtu.be/HygplCyZtoA
https://youtu.be/Eb_URYj_L_k?list=FL_Z_yfG-pwDgYaiF4NAPxsw


아쉽게도 당시에는 모두 영어 자료였기 때문에 앱을 통해 구매하는 일이 자녀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한국어 문법 구조와 문화에 적합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이루어진 그림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신 집에서도 아이의 PECS를 함께 쓰고, 아이가 보고 있는 책과 그림들, 사물들을 가지고 함께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아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1~2학년 수준의 표현언어와 3~4학년 수준의 독해력 정도이다. 이것은 좋은 능력인가, 그렇지 않은가? 개인의 현재 수준이 그의 잠재력만큼 발휘된 것인지 알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 연구지원센터(www.atrac.or.kr)를 통해서 장애아동과 성인을 위한 차세대 의사소통 보조기구(AAC)지원을 받았다(https://web.projectaac.or.kr:8443/). 금새 흥미를 가지고 평소에는 잘 안하던 일상생활에 대한 자세한 후술(가족과 거실에서 삼겹살 구워먹었어요)를 해주었다. 좀 더 이른 시기에 꾸준히 지속적으로 훈련하였더라면 승기의 언어능력이 더 나아졌을까? 이것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다. 일정에 대한 감상이나 정보에 대해 자세히 대화할 때, 새로운 정보를 안내하면서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할 때,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승기가 혼자서 정보를 물어봐야할 때 AAC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이 영상에서 감명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 발화가 적은 자폐성인의 인터뷰
https://youtu.be/W3N1lVp27tU


아주 오래전에 내가 장애부모들의 모임에 올려둔 영상을 보고 자신의 자녀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좀 해달라고 부탁하신 부모님이 계셨다. 창우(가명)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었는데, 인지적으로 2~3세 수준의 인지를 보였고 무발화였으며 주로 침 자극을 하며 놀았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너무 허약하고 반응이 없어서 조심하며 키우는 것 이외에는 더 신경써 주기 어려우셨다고 한다. 최근 신체적으로 많이 성장하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몸 움직임이 커지니 무엇이든 가르쳐보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나는 외조부모가 돌보고 계신 동안 집으로 방문하여 일주일 2번 1시간씩 3개월을 함께 창우와 ‘놀았다’. 그때 상호작용 초기의 주고 받음(turn taking)부터 모두 안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돌봄과 훈육을 잘 변별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우는 그동안 많이 활발해지고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기 표현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3개월이라는 기간으로는 상징을 충분히 가르칠 수는 없었다. 다만 구체 사물 상징으로 야쿠르트 (먹어요), 신발(신고 밖에 나가요), 냉장고(먹을 것 꺼내주세요) 등 이전에 눈치로 서로 알아채던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왔다.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인지에 대해서 조부모와 부모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서 아쉽다.


발달장애인 개인별 지원 계획 수립(ISP: Indivisualizd Support Plan)


○ 개인별지원계획이란? - 발달장애인이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수립한 개인별 복지서비스에 관한 제공계획을 의미(발달장애인법 제18조제4항) ○ 개인별지원계획 수립의 원칙 - 발달장애인 중심의 계획 수립: 개인별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의 개인적 특성과 생애주기별 욕구에 기반을 두어 수립 - 강점관점 기반의 계획 수립: 개인별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강점에 기반을 두어 수립 - 발달장애인의 참여보장: 개인별지원계획의 수립 과정에 발달장애인의 참여를 전적으로 보장 -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의사소통 지원: ·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에게 읽고 이해하기 쉬운 개인별지원계획 설명 자료를 제공하고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의사소통 지원을 최대한 제공 - 개인별지원계획 내용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장: 개인별지원계획 수립 시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고, 발달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 - 지역사회 통합 지향: 개인별지원계획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한명의 존엄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립 - 지역사회 서비스의 총체적 연계: 발달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지역사회의 공공 및 민간 서비스를 최대한 연계 - 개인별지원계획 수립의 보편성: 계획 수립을 신청하는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예외 없이 개인별지원계획을 수립


○ 발달장애인의 참여 및 자기결정권의 보장

http://www.gov.kr/portal/service/serviceInfo/135200000095


이것 저것 두서없이 말한 것 같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이 세미나의 주제가 ‘스마트기술을 활용한 발달장애인지원계획(ISP) 방안 모색’이라는 것을 상기해본다. 발달장애인 개인별지원 계획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페친 한분의 최근 직접 경험담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참 높다는 걸 보여준다.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복지서비스를 계획해주고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서비스라 함. 신청은 주민센터에 가서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난항 ㅎㅎㅎㅎ
주민센터에 신청하러 갔더니 담당공무원은 아예 모르고 있고 어딘가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난리남. 직접 전화 받아들고 내가 오히려 설명해줌. 이런 서비스 신청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고 투덜댐 응, 이제 앞으로 많이 받게 될테니까 꼭 알아둬. 라고 갈챠줌. 당장 내년에 학교 졸업하는 아들이 이 혜택을 알차게 받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ㅜㅜ 내 정말로 후배엄마들 길 터준다는 생각으로 요 서비스 열심히 뚫어볼 거임. 암~
※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학생을 대상으로 요 개인별지원계획서비스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요. 조만간 좀 더 생생하고 답답한 후기 공유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스마트기술은 발달장애인계획(ISP)에 어떻게 기여할까?


스마트기술은 일방성, 전체성을 지양한다. 각 개인별 요구에 집중하고 자기주도적 창의적인 능동적 참여가 가능하다. 스마트기기는 이동성이 보장되며 상시적인 무선 인터넷 접속, PC환경에 접근한 인터넷 풀 브라우징(full browsing), 다양한 애플리케션(app) 설치, 다양한 센서 기능을 가진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회적 연결성(social networking)을 비약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 증강현실 등 새로운 유형의 컨텐츠를 통하면 보다 동기와 몰입이 극대화된 이해가 용이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꿈꾸어보자면, 보험설계나 수술 절차를 안내하는 장면에서 스마트기술이 사용되어 개인별 맞춤형 설계가 제공되는 것이, 발달장애인계획을 수립할 때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개별화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피상적으로 구획하여 실효성 없는 계획이 되기보다는 지역 내 연계 가능한 자원을 찾고 적합한 곳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비스 내용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하는 일과 당사자와 가족의 의견 제시가 쉬워지면 좋겠다. 복잡한 서류절차 대신 접근성이 보장된 온라인 자료가 제공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검색해보았더니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https://www.broso.or.kr/mainPage.do 의 홈페이지가 새로 정비중이다. 현재로서는 각 지역센터별 정보나 전 생의주기별 정보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중앙센터가 약속했던 정보 내용들이 채워진다면, 당사자와 부모, 후견인들이 참조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방 광역센터와 기초센터는 각각 지자체의 자원들을 통합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느려도 괜찮아. 스마트기술이 지켜주잖아.


한국은 속도 빠른 인터넷 강국이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는 10분기 연속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2016.10.06일자 연합뉴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06/0200000000AKR20161006073600017.HTML).


든든한 스마트기술이 ‘느린’ 우리 아이들의 삶이 정체되고 소외되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어느 어린 엄마들이 자조 모임 이름을 “거북이 모터달다”로 정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내 아들 승기와 내가 만났던 창우(가명)가 모두 자신이 충분히 참여하여 의사결정하고 안내받으며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는 삶. 인권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당사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진정한 소통이 간절히 필요하다. 스마트기술은 다양한 차원에서 장애당사자에게 목소리를 주고, 그들의 권리를 수호하며 소통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지원이 아니라 각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적합하게 설계된 지원 계획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내 아이들이 함께 모여 게임도 즐기고 동영상도 보면서...즐겁게 지냈으면 참 좋겠다. 스마트기술아...우리 아이들 좀 부탁한다.


이경아/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 특수교육학박사/ 청소년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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