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발달장애 성인의 삶에 대한 단상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성인기 진입, 우리에겐 지도가 필요하다


발달장애 성인의 삶-이번 원고 주제는 참 어렵다. 실은 이러한 내용을 다루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자청하다시피 맡은 것인데 마감시한을 넘기고도 글이 편편히 이어지지가 않아서 왜 이 주제를 택하였을까 큰 후회가 되었다. 한번은 다루어야 할 내용이어서 제안한 것이지만 이론이나 현장 모두 아직 산발적인 논의들만 무성할 뿐이고 깔끔하게 정리된 생각과 실천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역시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아직 청소년이라 아직 청년기 이후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터여서 타인의 경험을 보며 개념을 체화시키기 어려웠고 내 두려움과 막막함이 더해져 이 주제를 다루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나는 가끔 강의에 가면 발달장애인들(혹은 그 부모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산을 오르는 두려움에 비유하곤 한다. 길도 모르는 가파른 고개를 넘어 겨우 한 고개의 끝-고개 마루에 서게 되었는데, 그 순간 이것이 끝이 아니라 무수한 등성이 중의 하나이며, 돌아보니 다른 길을 택해 오른 누군가는 나보다 더 높은 저쪽 산마루에서 야호를 외치고 있는 걸 발견하고 속상해하게 되기도 한다. 성인기로 진입하는 고개는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고개보다 훨씬 가파른 길이다. 게다가 부모로서는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가 혼자 산을 오르도록 준비시켜야하고 본인으로서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혼자 가야할 시점이 되어서 참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더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내자나 잠시 쉬어갈 산장, 약수터 같은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산중턱 어디에서 조난당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기도 한다. 지금 이 시점엔 지도가 정말 필요하다.

이번 원고를 쓰려고 준비하는 동안 나는 발달장애 성인기에 이르거나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났고 그 수만큼의 생각의 가지를 길고 깊게 이어갔다. 그동안의 다양한 만남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붙이며 성인기 삶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자폐 형제를 둔 한 청년의 물음


이 모든 일은 작년 겨울 무렵 한 청년에게서 뜨거운 고민이 가득 담긴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을 자폐성장애 형제(명구씨:가명)를 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명구씨는 자폐성 장애로 장애가 무척 심해서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시설에 맡겨져 키워졌다고 했다. 지금도 시설에서 지내고 있고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자신이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선택하신 시설은 인가된 곳으로 명구씨를 안전하고 쾌적하게 잘 돌보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명구씨가 아무런 변화나 기대도 없이 매일 매일 무의미하게 지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만나고 돌아올 때면 죄책감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중증장애인들이 꾸준히 훈련하여 일을 하고 임금을 받으며 지낸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지내는 시설에서 그런 일까지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명구씨가 무엇을 배우도록 지원할 수는 없겠느냐고, 자신이 도울 방법은 없겠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일단 그와 명구씨를 센터로 초청하였다. 우선 명구씨를 염려하는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한 날까지 현장의 상황을 살피고 그에게 말해줄 바를 찾고자 했다. 어느새 그들을 만날 날짜가 가까워온다.


성인, 직업을 고민하다


성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지내는 것이 마땅한가? 고등학교까지는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큰 걱정이 없지만 막상 학교를 마칠 때가 되면 부모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취업이 가능한 친구들은 일부이고 전공과와 대학진학이 가능한 학생들의 수도 한정되어 있다. 성인기 부모님들은 아무리 그래도 어디 갈 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다가 막상 졸업하고 보니 아무도 불러주는 이 없더라고 호소하시고 갈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일이 너무도 막막하고 내 아이에게 맞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고 호소하신다.


성인이 되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직업이다. 직업전환교육과 평생교육에 관한 내용이 특수교육법령에서 정비되어 가고 있고 장애인고용공단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의 직업군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요즘 시도 교육청에서 다양한 전환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고용을 직접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부모나 장애당사자들은 현장의 전문가들의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직업재활사들은 부모들이 자녀의 진로와 직업에 대하여 낮은 가치관(에게, 이것도 직업이야?)과 높은 기대(그래도 이 정도 급여는 보장받아야지)를 장애청소년이나 성인의 진로지도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사례: 너무 힘들어서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소영이(가명)는 외모에서 장애의 징후가 전혀 발견되지 않을 만큼 희고 가냘프고 예쁜 학생이다. 말투도 소곤소곤 작고 예쁘게 하고 지시에 대한 순응력도 매우 높은 편이다. 지적능력도 양호하여 보호고용보다는 전문가 지원을 통한 지원고용이나 취업 알선이 가능한 수준으로 판단되었다. 개인적으로 꽃과 식물을 좋아해서 화훼농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직무배치를 하였다. 구체적인 직무는 일정한 시간에 꽃에 물주기, 기타 농원 정리, 청소 등이었다. 그러나 1개월이 채 되기 전에 더 이상 하지 않았다고 본인과 보호자가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이유는 농원에서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주장이었다. 초기에 대상의 체력을 고려하여 10~4시까지 일을 하는 것으로 디자인 하였는데 이마저도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장애자녀가 성년이 되었을 때 직업과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은 법적, 행정적 도움과 그의 인지적 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청소년기 부모님께 드리는 현장전문가의 조언>


1. 어릴 때 쏟은 애정과 관심의 반만이라도 쏟아라

2. 현장에서는 자녀의 능력을 평균값이 아니라 가장 낮은 능력에 기준하여 평가 한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예절과 체력

:특기나 취미는 그저 특기나 취미일 뿐 직업화할 수 없다면 아무 필요가 없다

4. 대학진학???

장점: 빛나는 졸업장/부모의 여유 VS. 단점: 백수 유예/ How much?

(박명훈-강남구직업재활센터)

흠 그렇구나....그렇지, 우리 친구들과 부모들도 많이 노력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 가만, 잠깐만 더 생각해보자. 과연 그럴까? 나는 아주 당연하고 그럴 듯한 이야기 앞에서 왠지 미심쩍어서 잠깐 멈춰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만나기로 한 명구씨가 떠오른 것이다. 만약 중도장애를 가진 명구씨를 위해 직능개발을 한다면 부모나 당사자는 얼마만큼 기대를 낮추고 몸을 숙여야 하는 것일까? 그 직업은 그가 즐거워할만한 일일까? 직업을 가지는 것이 그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정말 그에게 가능한 직업을 그들은 제공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꽤 근사해보이던 말들이 참 중요한 요소를 빠뜨리고 발달장애인의 직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직업은 성인됨을 알리는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그 형태는 보호고용부터 완전 경쟁고용까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최중도의 친구라면 재활작업장에도 직업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러하더라도 그가 성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Do-하는 일-이 아니라 Be-존재 그 자체-로써 이미 가치로운 것이 아니던가. 그 생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발달장애의 직업과 고용에서의 지나친 노력과 애씀이 부를 강제, 폭력성의 위험을 방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친구들을 늘 보아온 부모도 교사도 아는 일이지만 이 친구들은 8시간, 잔업, 매번 바뀌는 과제의 종류를 견디어 낼 힘이 없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것이 이 친구들의 인지 특성이고 장애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호고용이던 사회적 기업에서의 고용이던 직업을 가지게 하는 일은 돈 버는 일, 세금 내기 위한 생산성을 위한 일이 아니어야 한다. 장애를 가진 개인이라도 그에게 할 일을 부여하고 그 직업에서, 혹은 그 직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을 존중받고, 스스로 존중하게 되는 과정, 재활의 일부임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더욱 더 참 조심스럽고 잘 설계되어야 하는 과정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기능이 좋은 친구건 그렇지 않건 간에 직업을 고르고 준비하는 일은 각 개인의 능력과 환경에 맞추어져서 계획되어야 하고 장기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기능이 낮거나 문제행동이나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들을 위해서는 맞춤형의 직업코칭프로그램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우리의 학교는,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얼마 전 자녀의 고용문제로 도움을 드렸던 발달장애 부모님이 쓰신 글을 소개한다.


가장 참담하고 화가 났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20118, 서울시 교육청한국 장애인 고용 공단이 공동출자해 희망 일자리- 커리어 점프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경험 삼아 신청을 했더니 75명의 대상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사무행정 보조직, 기사보조와 도서관 사서 보조의 세 가지 직종을 두고 3일의 취업준비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각 학교에 배치를 받아 3 주간, 직무지도원의 지도하에 지원고용프로그램을 한 후, 학교 측과 고용계약을 체결이 되면 3 개월의 인턴쉽 단기채용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취업의 기회가 왔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한 반면, 내가 거의 20 년에 거쳐 준비해 왔던 과정들이 과연 3-3-3개월의 단기에 속성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간의 훈련과 교육의 힘에 더해 12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익힌 일과성과 자폐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인해 주최 측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히 수행해낸다는 중간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주변 고교의 장애학생을 위한 직업훈련시설의 허브인 통합거점학교에서 인턴을 하는 관계로 국회의 정책 발표회에 사례 발표까지 시키면서 인턴 이후의 고용과 향후 커리어의 점프까지 보장하던 처음 조건은 통합거점학교측에서 고용을 거부함으로 인해 자꾸 미루어졌다. 혼자서 기사보조 일을 할 수도 없고 따라다니며 지도할 인력이 없어 고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일은 그들로서는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인지 몰라도 나와 내 아이에게는 완벽한 사기극처럼 느껴졌다. 취업을 하기 위해 미리 등록까지 마쳤던 ‘사회종합복지관’ 부설 ‘무지개 대학’에 입학을 포기했는데, 일이 무산되고 나니 상윤씨를 포함해서 도합 열 명도 넘는 장애학생들이 일 년 동안 갈 곳이 없어질 형편에 처해진 것이다. 화가 난 나는 서울시 교육청과 한국장애인 고용공단, 고용노동청이며 서울시 의회까지 찾아다니며 노력을 했으나 구제할 길은 없었고 다행히 복지관 측에서 휴학 취소를 해줘서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고용이 된 나머지 학생들도 고용계약과 일부 달라진 조건으로 근무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을 당하게 되었다. 교육청 사업 경험을 통해 아들과 나는 사회에 첫 발을 아주 씁쓸하게 디딜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장애자녀의 부모들이 공권력 앞에 머리를 깎고 오체투지를 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아무런 책임도 지려 들지 않는 교육부를 비롯한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은 앞으로도 씻기 어려울 듯하다. 내가 아무리 쫓아다니며 큰소리를 친들, 실적에만 연연하고 상부에 보고하고 나면 ‘상황종료’인 관행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영(자폐인 송상윤 어머니) 자폐학회 춘계학술대회 원고 중

성인, 여가를 고민하다


이전엔 말아톤 열풍과 김진호선수의 영향으로 체육쪽 재능을 열심히 키워주시는 부모님들이 많으셨고 요즘엔 하트하트재단 등을 통해서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있으며, 그림을 전공으로 배우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다. 오래 전 청소년기나 아동기에 처음 예술활동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대학에 가거나 청년기에 접어든 것으로 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악이나 미술, 체육을 접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며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평생을 두고 할 수 있는 좋은 여가기술과 자기 개발, 혹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 친구들의 경우 불안이나 강박이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예술활동은 그러한 어려움들을 줄여주는데도 좋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만약 미래를 생각하며, 직업으로써 예술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직업인으로써 발달장애인들의 예술활동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평점을 주지 못하겠다. 많은 이들이 몇몇 ‘유명인’을 모델로 시작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얼마전 정창교씨가 그동안 라디오를 진행하고 칼럼을 쓰며 쓴 글을 모아 ‘문화복지’라는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 중에서 음악이나 미술의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그 재능을 단지 여가기술이 아니라 문화컨텐츠로 개발하고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개념이 들어있다. 지자체와 복지관련 후원단체들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아마 그런 방법이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이나 몇몇의 부모가 마음을 모아서 추진하기는 힘든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취미는 즐길 수 있으나 직업은 즐기기 힘든 것이니까....


게다가 이런 고민들은 명구씨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아마도 타악기를 두드리는 일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여가기술, 노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기를 들여다보면 직업에 대한 고민은 큰데 여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 참 놀랍다. 결국 외부자인 부모와 교사, 복지사들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발달장애인들이 건강한 신체와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여가기술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하다. 또한 나아가 기술 습득이라는 개념 이전에, 노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노는 즐거움을 알고 또래친구들과 좋은 우정관계를 맺는 일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왜 그들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빼앗는가?


우리(부모, 교사, 사회복지사들)는 ‘다른 고민-그를 좀 더 잘 기능(Good Function;기계도 아니고???)하게 만들고자 하는 열망’들에 빠져서 이 친구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일에 참 인색한 것 같다. 이들도 노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놀게 해주면, 참 즐겁게 잘 논다. 혹시 우리가 그들이 노는 꼴을 못 보는 건 아닌가? 놀이는 많이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 처음에는 장(놀이마당)을 만들어주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여도 어색해서 잘 못 노는 친구도 있지만 점차 누적된 경험들을 통해서 서로간의 관계를 맺고 우정을 형성하는 일까지 그럴 듯하게 잘 한다. 발달장애 성인들이 고립된 공간(가정에서 혼자 있는 일도 고립의 일종이다)을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 놀고 먹고 여행하고 즐기게 허락해주자.


성인, 주거를 고민하다


얼마 전 오랫동안 알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맡고 계시는 인천의 그룹홈 한 곳이 새집을 마련했노라고 오픈하우스를 하셨다. 이 그룹홈은 시작한 지 10년이 된 곳이고 네 명의 성인친구들이 살고 있다. 다른 곳과 달리 특이한 점은 여러 연령과 성별이 다른 몇 개의 그룹홈들과 연합체를 형성하여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부모님들과 연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개인은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내는 자조기술을 익히며 친구들, 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지내는 사회성기술도 습득하게 된다. 10년을 지나는 동안 각자 생활이 많이 안정되었고 복지관 보호작업장이나 주간보호센터를 벗어나 부모님들께서 설립하신 회사에 취직하거나 경쟁고용 상태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이곳 그룹홈에서 직장을 오가고 오후 여가활동을 즐기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지만 처음 이 친구들과 부모님을 뵈면서 ‘집주인’느낌이 나는 것이 가장 좋게 느껴졌다. 그렇다. 부모의 집이 아니고 사회복지사의 집이 아닌, “내 집”에서 살고있는 청년들이어서 더 당당하고 좋아보였다. 어느 부모님은 방문 기념 메모판에 “**야, 이제 이 집에서 장가가라.”라고 적어두셨다. 아마도 이전에 광주에서 본 엠마우스 복지관의 그룹홈이 그러하였듯이 이 친구들 중에 몇몇은 근처에서 반독립생활을 하거나 함께 오랫동안 만남을 가졌던 이성친구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이도 나올 것 같다. 이렇듯 안정적인 장기적인 주거가 가능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진 것은 사회복지사들이 장기근속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보장되고 부모님들간의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라도 의견이 조율되기까지는 많은 갈등이 있을 수 있기에 당사자-부모-기관 간의 의견 소통과 믿음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곰곰이 명구씨를 생각해보았다. 그를 위해 비장애형제나 부모의 집 근처에서 지내는 일을 제안하는 일이 필요할까? 만일 가족의 근처에서 살게된다면 그에게는 어떤 주거형태가 제공되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명구씨가 정말 중도의 장애를 가진 성인이라면 가족의 근처에서 사는 일이 그의 삶에, 그의 형제나 부모의 삶에 더 좋은 일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그룹홈에서 지내려면 어느 정도 자조기술이 있어야 하고 지나친 폭력성(감각과 정서적인 조절이 안되어서 생기는 폭력성)이 없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이동을 할 수 있으려면 위험을 인지하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인지능력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말이 아니라도 도움을 청하는 카드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만나게 될 명구씨는 그런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다면 명구씨는 지금 지내고 있는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 명구씨의 형제가 어떤 얼굴을 지을까...조금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그에게 얘기를 꺼내야겠다.


베리어프리와 역지사지, 그리고 가장 약한 자를 돕는 일


부모들(혹은 이번 경우처럼 명구씨의 비장애형제)은 자신이 자녀(혹은 형제)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나는 부모들을 만나며 그냥 부모노릇하라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명구씨의 형제에게는 형제로써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이미 수고하고 있고, 가끔 밝은 얼굴로 형제를 만나러 가는 일이 정말 필요하고 도움되는 일이라고 얘기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설에 형제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면 정확히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부모들(혹은 형제들)은 자신의 ‘모자라는’ 자녀(혹은 형제)를 맡겨놓은 것에 더하여 무엇을 요구하는 일이 가능한지 걱정하는 일이 많다. 내가 요구하는 내용이 너무 까다로운 것은 아닌가, 과연 실현 가능할까 미궁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자녀(혹은 형제)의 기능 수준을 과소, 과대 평가하거나 지나치게 보호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버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가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다보니 아무리 무리하거나 황당한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도 결국 그분들이 자신의 자녀(혹은 형제)에게 필요한 것을 깊이 생각해보았기에 제안된 ‘소망’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부모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소망’을 구체화한 ‘개념’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것은 부모(혹은 형제)와 도움을 제공해야 할 사회복지사(혹은 교사/치료사/행정관계자)가 함께 논의를 해가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여 풀어야 할 문제이다. 신뢰와 시간이 풀어줄 문제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생의 주기에 따른 모든 계획들-학령전기의 개별화가족계획(IFSP), 학령기의 개별화 교육 계획(IEP), 성인기의 개별화 프로그램 계획(IPP)-에는 각 발달장애인 개인의 장애특성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부모(/가족/혹은 함께 생활하는 사회복지사)가 지목하는 우선순위와 그의 환경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어야 한다. 나아가 현재 지역사회에 준비되어 있는 성인기 직업전환 프로그램이나 고용 자원들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을 다루는 책임자들의 인식이 "People first-장애가 아니라 사람을 볼 것"으로 먼저 개선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료가 누적되고, 실행결과에 따라 계획을 원활히 변경하며 다시 시도해보고 또 평가하여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


나는 이것을 어느 식당의 뷔페에 비유하고 싶다. 요리사들이 음식은 차려두었지만 그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아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며, 이미 식었고 짜거나 싱겁다. 나는 음식을 타박하고 음식 먹기를 거부할 수도 있지만 우선 내가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결정하고 혹시 그 음식이 어디엔가 있는데 위치를 모르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거나 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원하는 음식이 없다면 지배인을 불러 이러저러한 음식목록을 추가해 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음식이 짜거나 싱거워서 음식맛이 좋지 않다면 간을 맞추어 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요리사가 모든 개인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균적인 맛은 유지해야 하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금이나 후추를 별도로 준비해주어야 할 것이다. 식당은 늘 오는 단골손님을 기억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 그의 취향을 고려하여 항상 최선의 식단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 요구할 수 있느냐고? 당신은 그 뷔페의 고객이니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뷔페의 주인이 바로 당신이라면 어떠한가? 우리는 시민이며 국민이기에 당연히 이 모든 복지 시스템의 주인이다. '보편적 설계;바리어프리(Universal Design=Barrier Free)'는 신체장애를 가진 이들부터 고령자까지 고려한 여러 가지 건축학적 도움(문턱을 없애거나 도로의 턱을 없애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나 U자형 통행로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하여 교육이나 인권운동에 확대된 개념이다. 특수한 필요를 가진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단지 그 사람 개인 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불편한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불편하다. 그러니 권리이자 책임인 자기 옹호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다만 같은 장애부모로써 우리 안에도 ‘역지사지’, ‘존중’이 필요하며 학령기부모들이 성인기 이후의 삶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이해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여럿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나만’ 먹고 싶은 음식, ‘내 입맛’만 강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의사를 잘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자녀(혹은 형제)가 내 입맛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만 생각해서 이전의 나 같은 사람이나 앞으로 내가 될 모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두가 같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동안 ‘통합교육 광풍’이 불더니 그 후엔 ‘탈시설화 광풍’이 불었던 것으로 안다. 불편하게 ‘광풍’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주장(통합, 탈시설화)이 분명히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입장을 흑백논리적으로 폄하하여 배척하는(특수학교=분리교육, 시설=인권유린) 나쁜 영향력을 끼쳤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특수학교에서의 보다 많은 도움이 제공되는 교육이 필요하며, 시설에서의 보다 많은 도움이 제공되는 주거형태가 필요하다. 전체 교육예산과 복지예산을 제공하는 일에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 한명이라도 꼭 그 도움이 필요한 이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가진 작은 것을 빼앗아서는 안될 것이다. 부디 가장 작고 약한 사람을 우리 스스로 돕는 서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마무리하고 나니 왠지 양희은의 오래된 노래 중에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이라는 노래를 듣고 싶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하고 함께 소곤거리며 이야기 나누며 함께 산을 오른다면 무척 힘든 비탈길이거나 오른 곳이 그저 나지막한 동산이라도 참 기쁘고 즐거울 것 같다.


이경아/자폐성장애 자녀를 둔 부모/ 특수교육학박사/ 청소년상담사


(2012. 계간지 '함께 웃는날'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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