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대인관계의 욕구나 의사소통의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아동들은 단조로운 언어보다 선율과 리듬이 있는 노래로 다가갈 때 반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흥미로운 소리로서 관심을 끄는 단계와 함께,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거나 표현하게 하는 다음 단계로까지 넘어갈 수 있다면 소통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음악적 소통의 문을 통해서 서로가 자연스레 드나들기에는 부모나 교사 또는 치료사부터가 평상 시에 외우는 곡이나 가사가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아동의 흥미를 지속할만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에 노래를 주고 받는 상황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 이는 기성 세대들이 음악을 특정한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기거나, 노래방 등 특별한 상황에서만 표현하는 것으로 익혀온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동과 자연스럽게 노래 주고받기를 시도하려면, 어른들부터 먼저 일상 속에서 음악적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가장 자연스럽게 활용하기 쉬운 예로 개사가 있다. 가사를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대부분 동요나 가요 등 선율 정도는 흥얼거리듯 외우는 곡들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 평소 즐겨 부르던 곡이나, 또는 아동이 좋아하는 곡에다 현재 상황에서 표현하고 싶은 언어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면, 가족들이 아동과 과자를 나눠먹고 싶거나, 나눠주는 것을 가르치고 싶을 때, 아래 ‘가을’ 곡을 활용할 수 있다.
‘엄마는 엄마는 딸기맛 젤-리를 주세요
그래그래 엄마는 딸기맛 젤-리가 좋아요.
아니아니 아빠는 포도맛 젤-리를 주세요.
그래그래 아빠는 포도맛 젤-리가 좋아요.‘
요일이나 날짜와 함께 하루 일과를 일러주고 지키게 하고 싶다면 같은 곡으로 아래와 같이 개사할 수도 있다.
‘오늘은 오늘은 화요일 음악치료 가-자
그래그래 학-교 마치고 음악치료 가-자.‘
이와 같이 악곡의 특성을 살려서 어휘의 반복과 리드미컬한 억양으로 표현한다면, 일과의 전달이나 생활교육들이 노래처럼, 놀이처럼 흥미로운 소리로 인식되고 기억될 수 있다. 그리고 계절 중 봄의 풍경과 소리를 표현한 아래 곡 ‘숲 속의 합창’을 개사해서 생활 속의 잔소리를 노래로 승화할 수도 있다.
‘엄-마가 말하기를 밥 먹으래요
아-빠가 말하기를 밥 먹으래요
동-생이 말하기를 밥 먹으래요
철수야 밥먹자 냠냠냠냠냠-냠.‘
‘엄-마가 말하기를 일어나래요
엄-마가 말하기를 세수하래요
엄-마가 말하기를 이닦으래요
네네네 나-는 혼자할 수 있어요.‘
그 외에 구구단송, 알파벳송 등 학습 암기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과 우유송, 간식송, 김치송 등 식생활 교육용으로 활용하기에 좋은 노래들은, 악곡 자체의 독특함과 재미 덕분에 의미를 모르고서도 흥얼거리거나 외울 만큼 아동들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다. 어른들도 학창시절 ‘태정태세문단세...’ 조선왕조계보에 단순한 리듬과 선율을 붙여 외워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성경의 순서에 음률을 붙인 암송대회 참여도 해봤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음악적 완성도는 부족하더라도, 가사 자체를 암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간단한 음률 정도만 반복적으로 적용시켜도 효과가 있다.
발달장애아동의 의사소통 발달을 위한 개사와 음률 활용은 시적 수준이나 음악적 완성을 향한 것이 아니며, 단지 일상 속 언어들을 좀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자극하여 전달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장르가 어떠하든, 가사의 문법적, 시적 수준이 어떠하든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어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언어적 내용이 명확하다면, 그 위에 덧입히는 음악은 반복적인 리듬과 단조로운 흐름 속에 적절한 선율의 변화 정도면 악곡 형식을 완성시키지 않더라도 소통의 매개효과로선 충분할 것이다.
-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