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기다림을 알기까지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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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22:35



아들의 취미는 지하철 노선안내도의 역명이 잘 통일되어 있는지 확인하러 다니는 일이다. 요즘엔 역명 옆의 괄호 안에 작은 글씨로 적힌 부기명이 변경된 역도 있고, 옛노선도 그대로 부착된 데도 있어서 아들은 미교체된 역을 일일이 확인하러 다닌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지하철 홈페이지에 미비된 내용을 교체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올리면, 대개 일주일 안에 해결을 받곤 하였다.


부산지하철은 일처리를 정확한 날짜에 하는 편인데, 환승으로 연결되는 동해선이나 김해경전철 등은 사업처가 달라서인지 몇 차례나 약속이 지연되곤 했다. 시간과 날짜, 약속을 강박적으로 지켜야하는 아들에게 그런 상황은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


기다림.

예닐곱살 때까지도 빨간신호등의 일, 이분이나 줄을 서서 햄버거를 주문함, 오늘 자고 나서 내일이라는 개념 등을 알지 못해 당장 이뤄지지 않으면 몸부림을 치며 울어대고 차길로 돌진해버리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숫자 1,2,3을 배우고 10초를 세며 기다릴 수 있게 되었고, 월, 화, 수요일을 배우고 ‘내일’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초등 2학년 때쯤인가 보다. 서울에 치료를 받을 일이 있어서 열흘 동안 아들과 둘이서 여러 모텔을 전전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낮과 밤, 날과 달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들이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2일이 된다."는 말을 듣고 밤을 꼬박 새며 하늘만 보다가 보름달이 뜬 걸 보고 "해, 해"라고 외치며 하룻밤이 지났음을 외치던 게 생각난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감이 높은 아들은 그렇게 첫날을 뜬 눈으로 꼬박 새고, 둘째날도 겨우 한두시간만 눈을 붙이고, 셋째날이 되어서야 몇 시간이라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열흘의 시간체험 후에 아들은 날짜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열흘, 한 달도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친척집에 갔다가 양변기의 비데를 사용해본 후 매일 비데, 비데를 외치며 사달라고 하기에 당시 가전제품마다 해체하고 고장내던 시기라, '산에서 흙을 퍼와서 하얗게 말리는데 한 달, 흙을 반죽하고 모양을 만드는데 한 달, 가마에 굽고 색과 약을 칠하는데 한 달....' 최대한 핑계를 대며 몇 달의 날짜를 미뤄놓고 그동안에 잊어버리겠거니 바랐었다.


그런데 처음 한 달은 달력에 매일 줄을 그으며 날을 세다가 두세 달은 전혀 말을 안하길래 잊었나보다 했는데, 디데이 보름쯤 전부터 다시 달력에 줄을 그으며 일정을 정확히 확인했다. 그 이후로는 아들에게 허투루 거짓약속을 해 본 적이 없으며, 정확하게 지킬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항상 일러주었다. 만약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사실 그대로 "아직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뤄질지 며칠 안에 알아보겠다."라고 대답해주었고, 가족들은 모두 아들과의 약속 일정을 최우선 과제로 늘 삼아왔다.


그러나 바깥의 상황이란 항상 그렇게 자로 잰듯 정확하게 움직여지지 않으므로 아들의 강박적 불안은 울화로 종종 터지곤 했다. 학교나 복지관 등에서 4시에 마치기로 했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청소를 늦게 한다던지, 교사가 외부 방문객을 맞느라 2~30분씩 시간이 지연될 때 아들은 그 혼란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언어적 장애가 있다보니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고, 화가 나면 문을 발로 찬다든지, 물건을 집어던진다든지 하는 행동들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또한 처음에는 기관측에서 정확한 시간에 맞춰주기를 바랬었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세상 모두가 어찌 아들의 강박에 다 맞춰줄 수 있겠는가 객관적인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아들아, 4시에 마친다는 말은 3:30~4:30을 뜻한단다. 친구들이 과제와 청소를 모두 빨리 마치는 날엔 3:30에 끝날 수 있고, 선생님이 전화를 받거나 손님이 오거나 친구들 과제가 남아있는 날에는 4:30분에 마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몇 시에 마치자 또는 만나자'는 말은 항상 30분 빠르거나 늦을 수 있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 이후로 아들은 앞뒤 30분까지는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림이란 정해진 시간에 대한 예측과 믿음이기도 하지만, 부정확하고 막연한 변수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인지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흔히들 융통성, 또는 낙천, 여유, 인내라고 표현한다. 사회적 상황의 다양성과 예측불허의 변수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에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이러한 인지력도 하나씩 경우의 수를 늘여가며 경험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굳이 장애의 범주가 아니라도 비장애인들도 이해의 폭과 가지 수가 적을 경우 기다림의 미덕을 이루긴 어렵다. 그리고 한편으로 뒤집어 보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도 잘못인 줄 모르는 비장애인들의 사고는 발달장애인의 강박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위원)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음악치료사/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위원)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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