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다가가기 힘든 은총이 이야기 - 행동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에 관하여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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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18:56



은총(가명)이는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귀엽고 총명하게 보이는 까만 눈동자의 큰 눈을 가진 열 두 살 난 남자 아이다. 억양없는 모노톤의 짧은 단어 한 두 개로 단순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은총이는 한글을 읽고 쓰지는 못했고 반향어를 종종 사용했고, 원치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거나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을 땐 텐트럼을 보이기도 하는 등 자폐아들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는 아이였다. 그런데 은총이는 유난히 신체적인 움직임이 매우 민첩하고 순발력이 좋았다.


교실과 복도에서 자주 움직이면서 여기 저기를 빨리 걷거나 뛰어 다닐 때가 많다. 그렇지만, 한 번도 그 빠른 움직임때문에 다른 아이들이나 물건들과 부딪힌 적이 없다. 즉, 부주의하지는 않은 아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항상 그렇게 뛰어다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보다는 훨씬 분주하게 자주 움직이긴 했다. 세심한 관찰없이 겉으로만 그의 행동을 보면, 자폐성 장애와 과잉행동을 함께 보이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처음 그 아이의 담임을 맡았을 때 동료 교사들 중에 몇 분도 은총이가 ADHD 증상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지속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보기엔 단순히 과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사흘 정도 관찰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은총이는 많이 움직이는 걸 좋아하거나 과잉행동 증상 때문에 자주 움직이거나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누군가가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이으로 자신에게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오게 되면, 그를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마치, 자석이 같은 극끼리 밀어내듯이 은총이는 누군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면 자신의 몸을 밀어내어 그 거리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 행동은 특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가 그 타인이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나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일 때보다 어른들일 때, 그 중에서도 남성인 어른일 때 훨씬 심했다.


우리가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사회적 상호작용할 때 어떤 상대방과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상호작용(접촉)을 하는가 하는 문제, 즉, 근접 혹은 접근(proximity)의 역학은 일상적인 상호작용 기술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다. 은총이는 과잉행동 증상이 있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의 움직임은 그저 누군가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조금 더 은총이와의 시간을 보낸 후에 그가 정말 싫어하는 것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과 신체적인 접촉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억지로라도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거나 양팔을 붙잡거나 하면, 그 순간부터 내가 손을 뗄 때까지 그는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몰라했고, "어~어. 으..."하면서 힘을 주어 손을 빼거나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자폐성 장애의 특성 중에 하나일까? 그렇지 않다. 자폐아이라 해도 대부분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타인과의 신체적인 접촉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타인과의 모든 신체적인 접촉과 나를 향한 그의 제스쳐들은, 예컨대 손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감싸 안거나 혹은 그밖에 어떤 것이든, 사회적인 의미와 의사표현의 의도를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나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를 만지려 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그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위협적으로 느끼거나 심지어 범죄시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은총이는 왜 늘 함께 지내는 선생님에게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그냥 스킨십 자체를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스킨십을 싫어하게 된걸까?


앞서 실시한 기능적인 행동 관찰은 행동과 그 앞 뒤의 원인과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찾아낼 수는 있었다. 기능적 행동관찰로는 그 행동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행동의 '원인'은 그 행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 행동을 촉발시키는 즉각적인 바로 앞의 '상황'일 뿐이다. 그래서 'Cause(원인)'가 아니고 'Antecedence(선행사건 또는 선행자)' 인 것이다. 이것은 행동주의의 한계라 할 수 있다.


과연, 은총이는 왜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행동을 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스킨십을 싫어하는 것일까? '현재의 그'만을 알아서는 이 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진짜 원인은 한 달 후에 엄마와의 상담을 통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은총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애 아빠가 은총이를 데리고 만지고 껴안고 구르고 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가 워낙 귀엽기도 하고, 또 애 아빠가 스킨십을 좋아해서 레슬링하듯이 같이 뒹굴고 하는 일들이 잦았거든요. 그 때는 안 그랬는데, 조금 크고 나서부터는 그걸 싫어하더라구요. 유치원 갈 때 쯤부터는 아예 아빠가 자기 몸에 일체 손을 못 대게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러는 걸 거에요”


이제 원인이 분명해졌다. 은총이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다. 자폐라는 현상은 자기 안에 갇혀있다는 그 단어의 그대로의 뜻하고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좀더 정확한 설명은 자기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외부의 타인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 원초적인 기능에 손상을 입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여러 자폐아들의 행동은 이러한 설명으로 대부분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비사회적인(반사회적이 아닌)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면, 타인이 나에게 하는 행동에 담겨있는 사회적인 의미들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사회적인 행동 가운데 아이를 사랑하는 많은 아빠들이 아이들과 어렸을 때 자주 하게 되는 바람직한 행동이 스킨십일 뿐이다. 스킨십에 대한 은총이의 해석은 사회적인 혹은 정서적인 의미나 느낌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채, 그냥 내가 모르는 타인이 내게 그런 스킨십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자기를 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자기보다 크고 힘센 어른이 자기를 안고 뒹굴고 하는 정도의 스킨십은 은총이 입장에서 보면 감각적, 물리적으로도 상당히 불편했을 텐데, 그 스킨십의 의도와 의미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불편함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컸을 것이다. 그냥 기질적으로 스킨십을 싫어하는 보통 아이와 은총이가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첫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는 스킨십이 갖는 의미를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물론 전달한다고 해서 그 의미를 우리들이 느끼는 정도로 잘 파악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는 데까지는 해보아야 했다. 적어도 지금처럼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는 이해를 시켜야 했다.


드라마의 여러 장면들 가운데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을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하거나 하는 등등의 행동들을 은총이에게 보여주면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설명해 보았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런 제스처나 스킨십을 시범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거의 소용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설명을 이해하기에는 언어 이해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타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의 근본적인 손상이 회복되지 않으면 이 부분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았다.


다음 단계로 시도해본 방법은 소위 행동수정 기법에서 말하는 둔감화였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스킨십을 느낄 수 있도록 미약한 수준의 접촉을 조금씩 시도하면서 점차 몸이 닿는 부위나 접촉 강도를 조금씩만 높여갔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여서, 악수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가능해졌다. 아직까지 감각적으로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포옹이나 몸을 잡고 밀고 당기는 놀이 수준으로까지는 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이상의 신체 접촉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은총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은 은총이도 내게서 도망가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거의 반 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친숙한 타인이 아닌 다른 주위 사람들(은총이가 만나고 거부감을 주지 않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에게도 그 정도의 접촉은 허용하는 것이다. 모든 장애아들에게 그렇듯이 부모와 가족, 선생님, 친구들(장애가 없는) 등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주변 사람들이 함께 은총이를 이해하고 이런 대처를 할 수 있다면 이런 내 바램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 소통과 지원 연구소 대표 / 나사렛대학교 재활자립학과 겸임교수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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