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과 언어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 당신의 의사소통 스타일은 어떻습니까?

이경아님

0

5886

2018.03.11 17:52

얼마전 장애인의 건강권에 관한 법안이 새로 마련되었다. 의료/재활현장에서장애인이 충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다. 이와 관련하여 의료 실무자들에게 다양한 영역의 보수교육이 마련되었고, 필자는'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이라는주제로 강의를 의뢰받았다. 의료현장에서 면담하고 진료하는 과정에서 장애인과의'특별한' 의사소통을 잘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강의이다. 이 강의 요청이 나름 까다로운 이유는, 장애이해와 공감이나 경청 등 상담 주제는 각기 따로 강의가 마련되어 있어서 고스란히 의사소통에 중점을 두어 안내하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기 이후까지 포함되는 영역이니 (영유아) 발달이나 언어재활에서 다루는 의사소통에 대한 개론적 설명에 국한하기도 어렵고 각 세부 장애특성 별 의사소통 특성과 대응 요령만 안내하기도 애매하였다.


다행히 '돌봄의 의사소통'이라는 간호학 이론서를 우연히 기억해내고 기본 뿌리를 삼아 강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나니 그 핵심개념들이 특별히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많은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글에서는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의사소통'이 '그냥 말 잘하는 것' 이상의 복잡한 개념이라는 모두 동감할 것이다. 의사소통은 "두 사람 이상의 사람간에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상호호혜적 과정"이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 다음으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은 마치 공을 주고 받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만약 두 사람이 의사소통하고 있다면, 보내는 사람(화자)도 정확히 잘 표현해야 하고, 받는 사람(청자)도 잘 이해해야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주고받는 역할이 계속 바뀌며 이어지는 사이에 메시지가 계속 축적되며 의미가 쌓이고 발전된다.


그러니 의사소통은 혼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라던가 미리 짜여진 대로그대로 암송하는 대본과는 크게 다른 것이며 현장성이 강조된다.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상대자간의 이해와 존중이 전제되는 것이다. 가끔은 무얼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기분 좋았던 수다처럼, 그저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어린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말을 잘 하게 될까요?" 사실 부모가 의미하는 의사소통은 자녀가 어서 빨리 말을잘하게 되기를 바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소망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교정해주려고 애쓴다. 부모는 아마도 곧, 혹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자녀가 또래만큼 유능한 의사소통자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사실 발달장애인들은 거의 모든 의사소통의 지점에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기 쉽다.


  • ​의사소통 의도가 빈약하고 상호작용에 대한 관심이 적다.
  • 상황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 자기 생각과 느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 연령과 발달보다 미숙한 언어표현을 사용한다.
  •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 함께 대화하는 중에 상대에 맞추어 자신의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낮다.

쉽게 말하자면 발달장애인의 장애적 특성(인지,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자체가 의사소통 발달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녀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즈음이 되면 부모들의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내가 어떻게 해줘야 아이의 말이 늘까요?" 지금까지 부모들은 지시적이거나 강압적으로 말을 가르쳐왔을 것이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말을 강요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그로 인해 자녀가 위축되거나 더 말이 늘지 않는 것인지 걱정하기 쉽다. 혹은 커가면서 자연히 알아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냥 놔두는 방식을 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후회는 피해가기 어렵다.


좀더 열심히 가르쳤더라면 '좀더' 좋아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하며 서둘러 대화 방식을 '제대로' 바꾸어보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제대로'된 의사소통을 원하면서도 여전히 일방성을 벗어나기 어렵고 공격적인 스타일과 비주장적 스타일을 오가며 감정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좀더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이른 발달장애인들이 어린 시절 습득한 왜곡된 의사소통으로 인해 정서적인 어려움, 행동적인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상담현장에서 부모나 현장 실무자들의 의사소통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받아왔다. 아동이나 성인이 무발화인가, 지나치게 길 말하고 동일한 말만 반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강박이 심하고 자기 말을 굽히지 않는가에 상관없이, 그 질문들에는 공통적 특성이 있었다. 질문자들은 당황하고 불편감을 느꼈으며 어떻게 반응하는 게 '옳은 반응'인지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그 말을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당신은 상대에게 어떤 얼굴이나 표정, 몸 자세를 보여주었습니까?""상대방은 당신의 말이나 표정, 몸 자세에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몇 번의 질문을 통해서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어떤 정답 반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 당황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온전히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긍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였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게 된다.


"아! 제가 그때 많이 흥분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공격적인 모습을 보일까봐 겁이 났던 모양이군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주고 정당하게 반응한다면, 동등한 상호작용이 가능해지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어진다.


성공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태도에 중점을 두고 의사소통의 성패를 판단하지 않고 나의 의사소통 스타일, 태도 변화에 우선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 과도한 불안이나 타인에게 끼치는 손실없이 자신의 생각, 의견,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오랜 기간 연습이 필요하다. 주장적 의사소통은 단기간의 의지적인 선언이 아니라 차츰 발달시켜가는 연습과정이다. 주장적 반응의 틀인 DESC는 다음과 같다.

  • ​D: 상황의 묘사(Describe the situation)
  • E: 자신의 생각과 느낌의 표현(Express what you think and feel)
  • S: 자신의 요청을 구체화(Specify your request)
  • C: 결과 (Consequences)

사례 예: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14세 OO는 갑자기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져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없게 되었다. 점점 계속 흥분하며 어머니를 쫓아다니고 출발시간을 반복하며 소리질러 어머니 마음이 불편하다.


  • ​어머니 : OO야. 너는 3시에는 출발하고 싶었는데 4시까지 출발이 연기되어서 많이 기분이 나빠졌구나. 지금 아버지가 아직 오시는 중이야. 3시 30분까지는 도착하실 거다. (D: 상황의 묘사)
  • OO: 3시 출발! (손을 휘저으며 흥분한다)
  • 어머니: 니가 손을 휘젓고 자꾸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으니 엄마 마음이 많이힘들다. 아직 준비할 게 남아있는데 어수선하니까 집중하기 어렵구나. (E: 자신의 생각과 느낌의 표현)
  • 어머니 : OO야. 조용히 앉아서 유튜브 영상을 2개 보고 있으면 아빠가 오실 시간이 될 거야. 쇼파에 앉아서 기다려주겠니? (S: 자신의 요청을 구체화)
  • 어머니: 영상 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오시는대로 바로 내려갈 수 있게 준비를 마칠께. (C: 결과)

  • 사례에서 자녀에게 나무라는 말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늦어진 남편을 비난하거나 갑자기 여행계획을 무산시키는 행동은 공격적 의사소통이 된다. 자녀에게 애걸하고 달래며 기분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비주장적 의사소통으로 결국 자녀의 흥분과 불만을 계속 증폭시키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주장적 의사소통은 단호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확신에 찬 메시지를 줌으로써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한다. 문제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정하게 직면함으로써 해결에 이르도록 도울 수 있다. 때로는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더라도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하나의 큰 해결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의 의사소통 스타일을 점검해보도록 하자.


    참고도서: 돌봄의 의사소통 8판(2018) Julia Balzer Riley 저, 남경아 외 역. 정담미디어


    이경아: 장애부모/청소년상담사/가족상담전문가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