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쉘 위 댄스?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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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22:48




부족한 생각이나마 함께 나누고자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분들은 어린 연령대부터 성인이 된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계시고, 이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과 기관 종사자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부탁받은 교육이나 강의의 주제 중에는 이론에 대한 딱딱한 정보를 설명해드려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객관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건 부모나 교사, 종사자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정보를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자료를 더 찾아 공부하고 편의상 주관적인 판단을 내려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든 상관없이, 늘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공통으로 배워야 하는 내용도 있지만,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상황, 같은 사람을 대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부모의 입장과 교사나 종사자의 입장은 확연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모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위해 일하는 전문가의 입장에 동시에 처하다보니 전혀 다른 두 입장이 맘속에서 충돌하여 혼란스럽고 괴로웠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저 자신을 양다리 걸친 사람, 이중스파이라고 지칭하며 자조했을까요.


부모는 부모답게 사는 법, 전문가는 전문가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전문가의 입장으로, 전문가는 부모의 입장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한 상대방의 오해와 불신의 마음을 뒤집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저는 이제 막 장애를 받아들이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을 맡은 어린이집 교사들의 모임에 초대되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안타까워하는 점은 부모님들의 느슨함이었습니다. 교육의 현장에 있다 보면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확연히 보입니다. 선생님들은 그 현장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보살피니 나머지 시간은 가정에서 열성적으로 아이를 이끌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눈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은, 바램처럼 열성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쳐 보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선생님들의 안타까움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부모님의 숨겨두었을 마음과 감정을 선생님들 앞에서 풀어헤쳐드리는 것이 그 자리의 선생님들을 최대한 돕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어린 자녀를 돌보며 바쁜 삶을 꾸려나가고 계실 부모님들의 진심을 선생님들을 미처 못 보셨을 수 있습니다. 씩씩해 보이는 부모님도 아마 혼자 계실 때에는 아이 걱정으로 눈물을 흘리시고 계실 것이고, 무던해 보이는 부모님도 집에 돌아가서는 아이의 치료와 교육을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밤새 뜬눈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 두렵고 조바심 나고 울고 싶지만, 최소한 선생님들 앞에서는 씩씩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으로 가득 찬 자신의 속내를 보이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그러했으니까요. 부모님이 갖고 계신 이면의 마음과 입장까지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전문가의 본분입니다. 


제가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맨 처음 접했던 글 중에 이와 같은 부모-전문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 있었습니다. 작가이자 장애부모인 Janice Fialka가 쓴 [The Dance of Partnership: Why do my feet hurt? (협력의 춤, 내 발은 왜 아플까?)]입니다. 이 글에서 작가는, 부모와 전문가의 협력을 춤으로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전문가는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부모인 나는 처음부터 이 춤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고 이런 협력을 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저런 댄스파트너를 만난다는 건 더더욱 생각해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전문가라는 파트너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내가 자식으로 인해 가장 나약해졌던 순간을 그 사람은 목격했습니다. 내가 아이 때문에 당혹스러워하고 좌절하고 분노할 때 전문가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전문가와의 관계가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가르치는지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지요. 장애를 가진 나의 아이를 이쁘고 귀엽다고 말해줍니다. 전문가들은 그 아이들이 이 춤의 파트너인 양 대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댄스장에서 전문가의 파트너가 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춤을 리드해야 할까요? 어떤 상황에서는 전문가가 리드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스텝은 부모인 내가 먼저 내디뎌야 하는 리듬도 있습니다. 만약 전문가가 한 발을 내뻗으면 나는 한 발을 뒤로 빼주어야 합니다. 


부모와 전문가가 함께 춤추겠노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이 각자 다를 때도 있습니다. 댄스홀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함께 듣지 않고 각자 헤드폰을 끼고 자기만 좋아하는 노래만 고집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아집도 부모와 전문가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댄스를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귀를 덮은 헤드폰을 벗고 상대방의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만의 독특한 스텝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를 보다 잘 알기 위해서 부모와 전문가는 상대방을 더욱 잘 알아야 합니다. 각자의 입장을 넘어서서 사람 그 자체로서 말이지요. 이 과정은 물론 많은 인내와 끈기,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이 댄스홀의 진정한 스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하는 길일 것입니다. 


※ 참고문헌 https://www.danceofpartnership.com/DanceArticleSept06.pdf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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