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어느 자폐아 어머니의 눈물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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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18:28



오늘은 특수학교에 근무하던 특수교사 시절에 내가 만난 한 아이와 그 어머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던 기훈(가명)이는 열 살의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언어 발달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유의미한 발화가 거의 없고, 지적장애도 심한 편이어서 읽기나 쓰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의사표현도 몸짓이나 상대방의 손목을 잡아끄는 정도로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기훈이와 의사소통이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방법이나 도구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의사소통의 문제보다 더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소위 ‘도전적 행동’이라 불리는 훈이의 행동이었다. 주변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틈만 나면 입으로 무언가를 물어뜯어 그것에 침을 발라 손으로 반죽하듯 주무르거나 문지르며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그 물건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손이나 입으로 뜯어내기 쉬운 책이나 수건이나 옷의 실밥같이 종이나 천으로 된 것은 무엇이든 쉽게 입으로 가져갔고, 그런 물건들을 치워두면 교실의 나무로 된 의자나 책상을 이로 갉아내어 그 부스러기를 가지고 손위에 놓고 침을 발라가며 놀았다. 


자기자극 행동이라고도 하는 이런 행동을 종종 본 적은 있지만 그 빈도가 이처럼 심한 아이는 처음 만난 것이다. 기훈이의 담임을 맡았을 당시 나는 고작 2년차의 특수교사였다. 이 정도로 심한 문제행동을 접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행동을 억지로 제지하기라도 하면, 그 때는 자신의 손을 물어뜯는 자해행동을 보였다. 이런 기훈이에게 교실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가급적 손이 놀지 않도록 손으로 해야 하는 다양한 활동들(예, 그리기, 떼기, 붙이기, 쌓기, 끼우기 등과 같은 작업들)을 계속 하게 해 주는 것과 그 행동을 하면 타임아웃 시키거나 하는 정도 이상은 없었다. 다행히 집에서보다는 학교에서 이런 자기자극 행동의 빈도나 강도가 더 적긴 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봐도 이 행동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기훈이의 어머님은 등하교시에 학교통학버스에 아이들과 함께 승차해서 아이들을 태우고 내려주고 돌봐주는 유급 자원봉사를 하시며 매일 기훈이와 함께 학교에 오셨다. 당시에는 보조인력 지원이 따로 없던 시절이었기에 학교에서 별도로 적은 예산을 들여 어머님들께 통학지도와 같은 자원봉사를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교 전까지 계속 학교에 머무르시면서 점심시간에도 기훈이를 돌봐주셨고 이런 어머님 덕분에 나는 그나마 수업시간 외에 점심시간이나 야외 활동 등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시면서도 어머님은 늘 다른 아이들보다 자기 자식인 기훈이를 벅차하셨고 그것은 기훈이의 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학기 초 상담시간에 어머님께 병원 치료를 권해드렸었다.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처음 자폐진단을 받고 나서 2년 정도만 병원을 다니시다가 그만두셨단다. 그 때는 지금처럼 문제행동이 심하지는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지나치게 이러한 특이행동이 심한 경우에는 어머님이나 기훈이 자신을 위해 약물치료와 행동요법을 병행하실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렸고, 어머님은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기훈이는 병원에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가정형편 때문인지, 혹은 피치못할 무슨 사정 때문인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이었다. 그날도 기훈이 어머님은 아이들 통학지도를 도와주러 학교에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부으셨고 표정도 평소보다 어두워 보이셨다. 나는 점심시간에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어머님 얼굴이 안좋으세요.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그러자 어머님은 내게 주말동안 집에서 있었던 사건을 말씀해 주셨다.


사골국을 끓이려고 소뼈를 사다 그릇에 담아 놓으셨는데, 잠깐 아이를 혼자 두고 집 앞의 구멍가게에 채소를 사러 나갔다 온 사이에 기훈이가 그 소뼈들을 꺼내서 방바닥에 놓고는 거기에 소변을 보고 뼈에 붙은 살들을 뜯어 손위에 놓고 문지르며 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담임선생인 내게 하시면서도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해드릴 수가 없었다.


그 일은 나또한 며칠간 우울하게 했다. 특수교사로서 내가 기훈이나 어머님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기훈이 어머님의 삶의 무게가 온전히 느껴져서였다. 어머님에게 기훈이는 어떤 의미일까? 천형이라고 느끼실까? 혹은 극복해내야 하는 굴레 같은 걸까?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견뎌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물론,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인이나 그 가족만의 문제로 접근되어서는 해결될 수가 없고, 중증의 발달장애아를 위한 사회안전망이라든지, 문제행동을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의 지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심화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지금 당장 아무런 지원책도 존재하지 않는 당시의 특수교육과 복지 체제하에서 문제해결은 난망한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훈이 어머님은 어떻게 이 상황을 견디고 지탱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에 한 동안 답답한 가슴을 안고 지내고 있었는데, 기훈이가 조금씩 행동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문제행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그 빈도가 줄었고, 자해행동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머님 말씀을 들어보니 내가 상담 때 제안해드린대로 서울에 있는 소아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문의의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와 행동수정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교실에서 수업 활동을 할 때도 한결 수월했다. 물론 그런 행동들은 여전히 가끔 나타났다. 어머님은 계속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와 행동치료를 병행하시겠다고 하셨다. 물론 비용이 부담이 되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시겠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최근 들어, 특수교육에서 가족지원 프로그램이나 부모역량강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학교에서 또는 교실에서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최소한의 학습이나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 중에 하나가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어머니와 같은 주양육자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과 안정은 가족역량강화나 가족지원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어야 함을 나는 기훈이를 통해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런 프로그램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고 일부 기관과 단체에서 그런 접근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가족지원 프로그램이나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좀 더 체계적으로 좀더 많은 발달장애 가족들에게 기본적인 프로그램으로 의무화되어 제공되길 간절히 바란다. 또한 재정적인 지원만이 아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그 가족의 요구와 문제에 맞춰 맞춤형으로 제공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구축되길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가정안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또는 지역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특수교사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보다 열 사람의 열 걸음으로 이러한 지원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갖춰지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나도 한 걸음 아니, 열 걸음을 보태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자 한다.


- 작성자: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나사렛대학교 재활자립학부 겸임교수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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