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문제행동에 대한 교사-부모의 협력

이경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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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23:30




내 아들 승기는 만 15세 10개월이다. 녀석은 (내 눈에는^^*)신체 멀쩡한 얼짱이지만, 다른 청소년들과는 조금 다르다. 승기는 자폐성 장애 2급 등록장애인이고,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다닌다. 나는 내 아이 때문에 특수교육 공부를 시작하여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상담사 자격을 취득했고 지금은 내 아이 같은 아이들과 나 같은 엄마들, 그리고 우리 가족 같은 다른 장애 가족들을 돕는 일을 하며 산다. 

   얼마 전 고등학교 진학을 하려면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진단검사를 해야 한다고 중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날은 원래 한국장애인 부모회 이사 자격으로 국립특수교육원에서 평생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당연히 외부활동보다 부모 역할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항상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나는 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승기와 함께 진단검사를 하러 갔다.


   학교로 가지 않고 특수교육지원센터로 향하자 승기는 눈에 띄게 불안해한다. 나는 승기에게 상황을 거듭 설명해주었으나 승기는 아주 잘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가보는 장소여서 긴장과 거부가 심하지는 않다. 선생님은 지능검사(K-WISC -Ⅳ)와 기초학력검사를 하기 위해 승기를 데리고 검사실에 들어가시며, 대기실에 있는 내게 사회성숙도검사와 CARS검사를 주셨다. 시행하는 방법을 설명해주려고 하셔서 “네, 알고 있어요.” 라고 했더니 나를 다시 쳐다보셨다. “아이 때문에 특수교육 공부를 좀 했어요.”라고 짧게 웃어보였다. “네, 요즘 그런 부모님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대단하시네요.” “네...감사합니다.”


   승기의 CARS점수는 33.5, 사회성숙도는 9세 4개월 정도, 지능검사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IQ 70을 넘지 못할 거다. 공간지각력과 집중력이 좋지만 언어성 지능이 중도 장애 수준으로 나올테니까. 승기의 기초학력 수준은 수리부분은 초등 3학년, 국어는 1학년에서 2학년 사이다. 그렇다. 내 아들 승기는 고등학생이 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폐성장애이고 일반아이들의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특수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교육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말하고 부모 노릇에 대해 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아들을 ‘완치’시키지는 못하였다. 자폐는 자폐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학생들의 ‘고약한’ 학교 적응


   검사를 마친 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승기 학교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어떤 건가요?” “네...작년까지는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공격적인 행동과 친구들과의 다툼이 많았어요. 지금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조금씩은 어려움이 있죠.”. “네...” “음...그리고 시간 강박과 변화 적응에 어려움이 있어서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며 투덜거리는 일이 있고, 모르는 공부는 아예 안하려고 해서 일반학급에선 참여를 전혀 하지 않고 잠만 잔다고 해요.” “그렇군요.” “뭐가 더 있지? 참! 일등 하지 못하면 소리 지르고 화내는 일 있구요, 저희는 그걸 ‘일등 병’이라고 불러요. 심한 편식 있구요.”


   엄마 맞나? 남의 아들 이야기하듯, 다른 장애학생 상태 이야기하듯 ‘비판’이 이어지자 선생님이 적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래도 승기는 참 밝고 좋은데요?” “네...성격은 좋고 선생님들 지시는 잘 따르는 편이예요.” “어머님 아시는 것처럼 학교에서 자폐 친구들이 좀 어려움이 큰 편이잖아요. 승기정도면 많이 좋은 거죠. ” “네, 행동도 많이 좋아졌고...인지도 많이 낮은 편은 아니어서 다행이예요.” 우리는 미소로써 면담을 마쳤다.
   그렇다. 승기는 “다른 (장애) 학생들보다” 상황이 좋다. 내가 학교상담, 위기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들에서 얼마나 고약하고 힘든 ‘문제행동’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던가. 인지가 되면 되는대로, 인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대로 아이들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에 노출되어 있고 교사와 부모는 당황하고 힘겨워하고, 그리고 속수무책이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인지장애도 동반된 경우가 많다. 인지적 어려움이 적더라도 자신의 인지능력에 비해 낮은 언어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더라도 의사소통적 측면에서는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타인과의 대화에서 핵심적 내용을 파악하거나 자기를 적절하게 주장하거나 타인과 타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자기중심적이며 정서적 조절에 어려움이 있어서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감각이 예민하거나 둔감하여 고통을 지나치게 호소하거나 위험에 노출되기 쉬우며, 사회적 관계에 관심이 없으니 교사의 지시를 따르거나 친구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관습적인 규칙들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여도 따르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타인을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이 불편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습을 배우는 장소이다. 또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밥 먹고 놀고, 수다 떨고 운동하는 중에 사회적 규칙과 통제에 따르는 일과 공식적, 비공식적인 사회적 관계(교사-학생, 학생-학생)를 배워간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 인식과 능력의 결함, 의사소통의 지연과 특이성, 특정한 집착을 지닌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외계인이며 ‘고약한’ 학생일 수 밖에 없다.
   이룰 수 있는 학업적 성취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것이 자폐성장애의 스펙트럼적 특징 중 하나이다. 어떤 학생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대학을 가며, 어떤 학생은 특수학급에 있거나 특수학교에 간다. 어떤 학생에게 어떤 교육적 배치가 적합할 것인가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배치가 적절하지 않을수록 학생의 ‘문제행동’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교사와 부모가 학생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것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도 학교-가정 간 갈등의 요인이 된다. 교사는 이 학생이 그냥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깍두기 취급을 받고 일반학습에서 소외되는 것이 너무도 마음 아프다면, 혹은 반대로 교사는 이 학생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돕고 싶은데 부모는 냉담하고 될 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사소한 일상적 갈등만으로도 교사-학부모간 의견차이가 크게 드러나고 갈등이 심화되기 쉽다. 그 a민망하고 아픈 일들에서 ‘역지사지’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두 사람 중 더 건강한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좋겠다.


   머릿속이 복잡한데 승기가 정적을 깬다. 복도로 나온 승기는 “어머니, 다 끝난 거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팔을 펄럭거리고 잠시 뛰어오른다. “응, 다 끝났어. 승기야.” “음...잘 되었어요. 내가 잘 하려고 했지만 너무 어려운 것 있을 뿐이야.” 조금 얼굴이 시무룩하다. “아니야, 승기야. 선생님이 잘 했다고 하셨어.” 승기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그럼 일등이야?" "그래.” “그럼 잘 되었군. 이제 학교 가자.” 승기는 서둘러 뛰어나간다. “야 이 녀석아. 인사하고 가야지!” 승기는 밖에서 혼자 외친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행운을 빈다.” 승기는 평소와 다른 일정 탓에 학교를 못 갈까봐 걱정이 되었나보다. 일등도 하고 드디어 학교를 가게 되어서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졌다.


우릿하게 아픈 기억: 얼마나 치료하면 나을까요?


   오랜만에 공식적인 교육진단을 받아서였을까? 혹은 얼마 전 한국의 가족지원에 대한 강의를 하며 우리 가족의 삶에 대해 다시 되집어 보아서였을까? 승기를 데려다주고 서울 사무실에 가며 아이 어렸을 때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승기의 첫 진단은 32개월 동네 소아정신과에서였고, 정말 운이 좋게도 그 여자의사선생님은 자폐성장애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그분은 내게 지금은 그냥 예쁘고 말이 없을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폐성향이 강하며 이후에는 인지문제도 동반되는 것이 확인될 것 같다는 정확한 진단과 함께, 지금부터 애착과 동기를 심어주는 일,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때 나는 놀이치료를 예약하고 오면서 “얼마나 치료하면 나을까요?”라고 물어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새벽에 잠이 쉽게 들지 못할 때면,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때의 그 선생님과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하던 나를 먼 발치에서 다시 바라보곤 했다. 그 선생님은 내게 무어라 일러주고 싶었을까? 혹시,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한참동안 내 앞에서 아무 말도 안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의 ‘말없음’에 나의 과거 경험들이 올라와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곤 했다. 비록 내가 아무 말 하고 있지 않아도 내 굳은 표정을 보고 상처받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승기의 치료사, 교사였던 아직 예쁘고 어리기만 하던 그들에게 고단한 장애엄마의 낙심과 분노를 가감없이 보인 것을....사과하고 싶다...“그땐 제가 좀 뾰족했어요. 이해하세요.”


화려한 텐트럼(Temper Tantrum)-‘문제행동’ vs.‘자기주장?’


   그래도 내가 부모로써 가진 혼란과 교육, 치료에 대해 가졌던 의심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 이들이 없었던 것은 참 유감스럽다. 나는 승기를 데리고 치료실을 전전한 지 이삼년이 지난 후에야 아이의 ‘장애’를 확실히 인정하게 되었고, 내 아이에게 치료와 교육이 필요하지만 모든 문제가 치료와 교육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나를 힘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한 것은, 승기가 자랄수록 발달할수록 감각문제가 더 많이 나타났고, 자기 의견이 생길수록 아이를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행동치료를 위주로 하는 조기교육기관에서 승기의 별명은 ‘화려한 텐트럼’이었고, 그 다음 해에는 ‘자해공갈단’이었다.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별명이었다. 승기는 자기 주장이 너무도 강했고 사회적 규칙이나 타인의 요구를 읽어내는 능력이 너무도 부족했다. 감각문제가 심해서 잠이 들지도 못하고 특정한 질감의 옷이나 특정 장소에 가지 못하고, 심지어 음식을 먹는 일 조차 어려움을 겪는데, 나는 아이를 도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치료사와 교사들은 아이에게 “안돼!”를 가르치려고 했고 승기는 죽을 힘을 다해 거부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보며 매우 불편했고 화가 났다. 나는 승기의 상동행동에서 ‘불안’을 보았고 울음과 비명과 도망가는 행동들 사이에서 아이의 ‘요구’와 ‘거절’, 그리고 ‘지지받고 싶음’을 보았다. 나는 어떤 행동이 아이를 버릇없고 더 자폐적으로 보이게 하니까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교사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이가 안심하기를 바랐고, 자기 요구를 존중받듯이 타인들을 배려하기 바랐다. 내 아이는 ‘마음이론’이 없어서 자기 요구가 무언지 모른다고? 자발적으로 공감하는 법을 배울 수 없으니 하나하나 금지하고 지시하라고? 내 아이는 강아지 수준도 아니고 그냥 나무인형일 뿐이라고??? 이 아이에게는 ‘보조원’을 평생 붙어서 ‘침입적’으로 강제하고 금지해야 한다고? 아니다...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아니...확실히는 모르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총체적 난국’-제대로 된 도움은 어디 있는가?


   나는 “모든 치료방법을 권하는 치료사”나 “모든 것에 회의적이고 고쳐질 수 없으니 인정하라는 의사”나 “모든 것이 부모에게 달렸으며 사랑만이 답이라는 상담자”나 “모두를 자신만 바꿀 수 있다는 교육전문가(?)”를 만났고, 그들이 말하는 모든 말들이 의심스러웠다.
   나는 내가 만나는 전문가들이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증거에 근거하여 말해주길 바랐다. 나는 내가 만나는 전문가들이 내 아이의 발달과 기질적 특성을 존중하고 아이의 동기를 존중하여 강점을 발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냥 어미의 가슴으로만, 그저 어린 아이들 앉혀놓고 영어 과외 조금 해본 경험만을 가지고 이렇듯 권위적이고 낙심을 강요하는 무섭고 차가운 말들을 감히 이길 수 없었다. 그것 이상의 대안을 알지 못하니 호기롭게 내 품에 아이를 안고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아 불쌍한 승기야....엄마가 어린 날에 그러했듯이 무섭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이 있더라도 섯불리 싸움을 걸었다가는 다친다라는 걸 알 정도로 영리하기라도 하였더라면...발톱을 감추고 그 ‘폭력적’인 훈습과 ‘성의없는 관심’을 이겨내며 따르는 척이라도 할텐데 말이다...이 학력 중시 사회의 줄 세우기에서 제일 끝에서, 아니 제일 끝의 끝에서 이렇게 눈치없고 자기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를 살아남게 도울 수 있을까? 나는 너무도 화가 났고 제대로 된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했다.


이인 삼각 (二人三脚): 교사-부모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절망감으로 그 당시를 극적으로 꾸밀 생각은 없다. 대체로 내가 만난 치료자와 교사들은 참 선하고 좋은 이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불편하게 한 쪽은 나였다. 나는 승기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 하나 잊거나 흘려듣는 일이 없었고 매우 날카롭고 해결되지 않을 일들에 대한 질문들을 불쑥하곤 했다. 그들은 마치 내가 그들에게 무어라 (비난)하는 것처럼 내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나도 자폐성향이 좀 있나보다. 처음엔 승기에게 너무 몰두해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불편해하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였다. 하지만 곧 일부러라도 좀 더 부드럽고 편하게 대하거나 질문을 줄이려고 애썼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척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교적 옳은) 답을 찾아가려면 한참 걸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교사)가 유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승기가 참 다루기 어렵고 힘든 상태였고 한참동안의 지속적인 훈습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나도 답을 모르는데 저 사람도 모르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 힘든 건 사실이었다.


   내가 선생님들과 그나마 비교적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대’하고 교사의 일에 월권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침입당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이 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일 이외에 더 요구하거나 이것 저것 해라 말아라를 (개입/간섭)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약속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고 다만 내가 내 아이에 대해 (교육적으로)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승기가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처음에 나의 질문의도를 몰라서 긴장하고 나를 많이 어려워하시던 그들은 조금씩 경계를 풀고 승기를 돕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을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잘 봐”, “도와주세요.”, “힘내.”, “고마와요.” 라는 말을 배운 아이


   승기는 비록 말을 못했고 치료세션들은 문이 닫히면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승기가 좋은 교육을 받고 존중받고 그 활동을 즐거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치료실을 나오는 승기가 표정과 몸짓을 통해 ‘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발화(음성언어)와 글자(문자언어)만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정, 몸의 움직임, 자세, 땀 냄새는 이이들의 지금 기분과 무엇을 알아듣고 못 알아들었는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를 충분히 알려준다.
   승기는 꾸준하고 자신의 발달에 적합한 교육을 통하여 과제에 집중하고 정확히 반응하는 법을 배웠고, 관심있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선생님들이 승기에게 보여준 그 끈기와 인내심, 따스한 격려가 너무도 고맙다. 승기가 처음 쓰기 시작한 말들이  “싫어!” “안돼!” 가 아니라 “잘봐.”“힘내”“잘했어.”라는 말이었던 것은, 그동안 그를 만나주었던 선생님들에게서 미소와 그러한 따스한 말들을 충분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제행동’은 “행동”일 뿐이다.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행동은 변화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와 우리 가족을 가장 많이 지켜준 원칙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승기의 장애가 참 고통스러웠지만 세상 사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그 일이 “내게만” 일어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승기의 낯설고 불편한 ‘문제행동’들에 당황하고 화를 내거나 부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크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은, 내 아이의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들 중 하나였거나, 적어도 별 관심 없이 무심히 지나가는 한 사람이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지 나의 인식 전환, 승기의 장애를 수용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승기의 장애가 내 인식과 상관없이 그냥 장애인 것처럼, 승기의 ‘문제행동’은 그냥 문제행동인 것이다. 승기의 나이가 점점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승기의 낯선 행동을 이해해주지 않으려하고 엄격한 준거를 들이대며 금지시키고자 하였고, 그냥 두는 엄마를 참 이상하게 보거나 직접 가르치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승기가 ‘할 수 없는 부분’과 ‘안 하려는 부분’을 잘 구별해주기를 바랐다.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은 그를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 하며 울화를 일으키게 할 것이었다. 안하려고 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은 그를 고집스럽게 하고 공격적이며 더 이상 행동이 조절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아직 어리고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승기를 ‘못살게 구는’ 것이 싫었다. 그가 보이는 행동을 어떤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고 감정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화가 났다. 이 어린 아이와 이런 감정싸움을 하다니! 아이의 행동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말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완고하게 굴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그것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모르면서 그렇게 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사과하고 더 이상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고,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내가 왜 이렇게 우기고 있는지 살피고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적 환경이다.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일이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보다 더 자랐고, 더 배웠고, 더 성인이니 더 노력하고 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렇다. 그런 필요가 있다. 그러하다면, 윽박지르고 비난하고 내 감정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상황적으로 어떤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 어떻게 대처하여 행동을 늘이거나 줄일 수 있는지에 추론하고 계획세워야 한다. 아이의 발달 연령 인지수준, 장애특성과 신체적 특성이 고려된 제한점을 확인하여, 어떤 접근방법으로 행동을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여야 한다.


   계획된 것이 실행되고, 자연스런 결과들에 의해 강화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야 행동은 비로소 변화한다. 때로는 3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고, 5년이 가도 안 바뀌는 행동도 있다. 원칙과 점검, 평가가 있어야 행동변화를 요구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 부모와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내가 따스하고 정확한 요구를 할 때, 이 아이에게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과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일과 그 고단한 수고를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사람들 사이엔 ‘오해의’ 섬이, 화해의 섬이 되길...


   “사람들 사이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단 두 줄로 된 정현종 시인의 시이다.  상담공부를 하고 상담을 하다보면 타인에게 더 많이 신경 쓰고 타인을 조종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들이 실은 상처가 많고 자신의 일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그러니 다시 말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알지만 그가 내게 입힌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고 보살피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상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도우려고 할때 비로소 자신을 도울 수 있다. 그러니 내 앞에 있는 ‘적’을 ‘이웃’으로 보고, 그를 돕도록 하자. ‘함께’ 일구어가는 미래를 꿈꾸도록 하자.


이경아/ 자폐성장애자녀를 둔 부모/특수교육학박사/ 청소년상담사


(2014년 계간지 '함께 웃는 날'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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