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완전한 사랑: 이별의 준비

김석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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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6 07:40



첫아기를 출산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연분만으로 비교적 순조로왔는데, TV에서 들었던 우렁찬 울음소리와는 다르게 날카롭고 불편한 울음소리가 의아했으나, 붉고 쪼글한 아기를 안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머, 잘 생겼다!”

곁에 있던 가족과 간호사들은 소리내어 웃었다.


뱃속에서 태변을 보고 탁한 양수를 먹어서, 아기는 이틀 동안 위세척을 하며 고생하였다. 신생아실에 가서 아기를 안으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엄마, 내가 아플 때 어디 갔었어요? 다시는 날 혼자 두지 마세요.’


자폐아는 눈맞춤을 못하고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들 하지만, 나의 아기는 커다란 눈망울로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다고 느꼈다. 내 생애 처음 느낀 사랑이었다.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존재.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처음으로 만났다.


퇴원할 때 가족들에게 아기를 맡기지 않고, 내 두 팔로 꼬옥 안고 나왔다. 24시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고, 잠시 외출로 한두 시간만 떨어져 있어도 그리움에 사무쳤다. 위가 약해 수유 후에 트림을 시켜도 곧잘 구토해서, 잠 잘 때도 혹시나 기도가 막힐까 싶어 손을 꼭 잡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 깨서 살피곤 했다.


두 돌 쯤 되었을 때 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먼 거리의 언어치료실을 찾아가던 날, 그리고 장애전담어린이집에 갔던 날, 병원에서 장애진단을 받던 날, 그 어떤 날도 사랑이 흔들리진 않았다.


집안의 가전제품을 모조리 뜯고 전기선을 가위로 자르고, 벽지와 장판을 오려내어 집안이 폐허처럼 되어도 괜찮았다. 다만 한길 가운데서 한 시간씩 몸부림치며 울고, 차길로 불쑥 뛰어들어 교통사고가 나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 혐오의 눈총을 받는 순간들에는 둘이서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 아이가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매정해 보였다. 세상과 아이 사이에서 흔들리던 어느 날, 열 살이 되어도 입술의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아이는 또 동그랗고 촉촉한 눈망울로 내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몰라도 엄마만은 나를 아셔야 해요. 나의 작은 능력으로 얼마나 열심히 세상을 배우고 있는지, 엄마아빠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지...’


그래, 네 탓이 아니로구나.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자라는 너를 위해, 엄마가 세상을 바꿔줄게. 학교의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너를 알려줄게. 이 사회의 모든 이웃들에게 너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줄게. 엄마가 없을 때에도 아무도 너를 오해하지 않도록,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너의 눈빛과 몸짓을 보고 사람들이 너를 알 수 있도록, 엄마가 너의 마음을 읽었듯이 온 세상에 너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10년, 20년이 지나도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지고, 더 여물어졌다. 그리고 스물 네 살 된 아들을 보며 이제는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그것은 이별을 준비함이다. 정신연령은 아직 대여섯살 아기 같지만 몸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표현 못하는 그 안에 다른 여인과 친구들, 새로운 사회에의 호기심, 혼자만의 공간과 비밀들을 갖고 싶지 않겠나.


요근래 엄마가 바깥일로 바빠 퇴근시간이 늦어지면서 아들은 한두 시간씩 혼자 있는 동안에도 불안해하거나 심심해하지 않고 음악을 듣고, 라면을 끓여먹고, 가까운 가게에 가서 과자도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개고, 전기솥에 밥을 짓고, 과일을 깎아 먹는 정도는 곁에서 시키면 할 수 있다. 그리고 겨울에는 온풍기를 켜고, 여름에는 선풍기를 꺼내고, 잠잘 때 보일러 온도를 높이는 것들도 일정을 기억해서 해낼 수 있다.


누군가 곁에서 변덕 많은 춘삼월 날씨에 맞게 내복을 입어야할지 벗어야할지 일러주고, 채소반찬과 신선한 음식을 챙겨주고, 약속 정하기와 상황에 따른 변경 이유들을 설명해주고, 개인 신상 서류들을 챙겨줄 수만 있다면 아들은 엄마를 떠나 살 수 있을 것이다.


평소 다니던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노래방과 극장도 가고, 식당에선 터치스크린으로 음식을 시켜먹고,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전화해서 약속을 정하며, 그렇게 멀리 떨어져 각자의 생활을 즐기며 사는 날을 꿈 꾼다. 혼자 살든, 친구와 살든, 여인과 살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엄마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타인들 속으로 떠날 날을 꿈 꾼다.


이것이 내 사랑이다. 오늘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한다.



*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부지부장)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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