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작업


문제기반과 강점기반의 관점 사이에서

지석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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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

2018.06.21 23:46

이번 달에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조금 어렵게 시작하고, 맺어질 것 같아서 서두에 양해를 구하며 글을 시작한다.


우선,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은 유전자나 세포단위의 변형, 신체나 신경 손상 등으로 인해 생애발달과업을 수행하는 데 제한이 있는 다양한 상태를 보인다는 전제를 먼저 하자. 다운증후군이나 윌리엄 증후군, 취약성 X 증후군 등, 소아 관련 증후군에만 관련된 책이 두께가 7cm는 되어보인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신경이 손상되면 운동마비나 인지, 지각, 언어, 감각 등 다양한 기능의 어려움이 생긴다. 그 중, 확실한 이유가 발견되는 경우는 세포나 신체 및 신경의 손상에 따라 각각 진단명이 부여되는데, 의학적 진단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는 진단보다는 보이는 증상에 따라 언어장애나 자폐성장애(사회적 상호작용과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반복적이거나 비전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지적장애, 전반적 발달장애, 발달지연 등 외부적으로 보이는 기능양상에 따라 분류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법에서는 장애인복지법21항에 따른 장애인 중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으로 분류하고 그 외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않아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말하는 발달장애인도 우선은 신체장애나 중도손상, 유전적 장애 등으로 인한 발달장애인보다는 자폐성 장애인이면서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하기로 한다.


진단이 중요한가?

채혈을 하거나 혈압을 재고, 유전자검사를 하고, 각종 전자기술을 동원한 기구와 기계를 사용해서 진단하는 결과는 증상에 대한 원인을 알고 처치를 할 수 있거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은 가능한한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진단을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경우는 그에 대한 대응이나 주의할 점을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 그런데, 자폐증 진단은 유전, 신경, 각종 진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증상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는 의학적 진단이라기보다는 행동 통계적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의학적 진단을 통해 자폐증으로 분류되는 경우의 예로는 취약성 X증후군이나 레트 증후군 등이 있다. 이런 진단된 증후군은 원인은 알 수 없되 증상을 설명할 수는 있다. 신체나 신경의 상태의 진단은 몸과 정신기능의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다운증후군의 경우, 이 사람들에게 근골격계의 움직임 제한이나 약한 관절, 심장결손이 있을 수 있다는 예측과 지적장애라는 보편적인 증상을 알아서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진단을 할 수 없거나 진단이 되지 않는 발달장애인들이 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으로써 사는 동안 아프거나 불편한 증상을 진단하기에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한계는 발달장애 증상의 이유를 아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이 아플 때 어디가 아프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아는 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진단으로는 알 수 없거나 진단이 어려운 행동과 삶의 기능이 존재한다.


증상에 대한 지식의 유용함과 한계

발달장애인을 만나는 데 있어서 의학이나 신체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 알러지가 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대체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정확한 기계로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상호적인 관계가 형성이 된 상태에서 갑자기 흥분할 때 머리가 뜨끈뜨끈해지고 심박동이 급격히 상승한다면 상황이 먼저인지 생리적 반응이 먼저인지 살피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이런 지식은 부모와 교사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와 지식, 신체기능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의료보건인이 제대로 살피고 전달해야 한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감각이 예민한 것과 더불어 장기능이 민감하다는 연구지식을 토대로, 구토를 심하게 하는 경우 장기의 문제가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것은 의학적 지식이 기반이 된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자극이 반복되면 습관화, 둔감화되는데 취약성 x 증후군인 사람들은 자극이 반복되어도 습관화되지 않는다는 실험연구에 의해 감각자극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힘든 감각, 민감하게 만드는 감각자극을 줄이려 조정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정보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고 공유해 줄 수 있는 발달장애인 전담 의료인이 참으로 필요하다.

어떤 때는 발달장애 아이가 몹시 감정이 변하고 지나치게 흥분해서 주변사람들이 힘들어하는데, 사실은 몸이 불편해서 그런 경우들도 꽤 있다. 치아를 갈 때 힘든 행동을 하기도 하고, 배가 아픈데 표현을 행동으로 하기도 해서 소통보다는 서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알고보니 긁혀서 상처가 났는데, 긁혀서 아프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어 옆에 있는 사람을 꼬집고 때릴 때도 있다. 창문에 빛이 너무 세서 그 때문에 피하면서 물건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감정 조절이나 이해와 감정에 대한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감정 변화 폭이 너무 크면 행동으로 감정을 조절하다보니 급격히 과격하거나 급격히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이런 어려운 행동들을 맞닥뜨릴 때면 정말 그 원인을 알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그런데, 그 이유는 참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의료적 관점은 문제와 증상을 우선으로 한 관점이다. 여기에 너무 매몰되버리면 문제를 차단하고 증상을 줄이려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그러면 사람 자체를 문제로 보고, 삶 자체를 증상으로 보기 때문에 이차적인 문제를 발생하게 될 여지도 있다. 그리고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행동을 문제증상으로 보고 매몰되는 일도 생긴다.


개인적인 이야기 번아웃, 소진.

치료사로 일을 하면서 가끔 번아웃(Burn out: 소진)을 경험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진을 좀 덜 겪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최근에 번아웃을 좀 크게 겪었다. 어떤 성인 발달장애인의 어려운 행동문제가 심해져서 개입을 하기 위해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주욱 알아보니 어릴 때 좋은 모습이 많았고, 주변사람들에게 참 사랑받던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려워졌다. 비슷한 시기에 한 아이가 보육기관에서 적응이 어렵고 공격행동이 너무 심해져서 개별적으로 좀 더 열심히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성인 발달장애인의 이야기와 어린 발달장애인의 이야기가 겹쳐서 갑자기 내가 지금 하는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무기력이 몰려왔던 듯하다. 사실, 소진을 본인이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막연하고 힘든 마음이 짓눌러 스스로 번아웃 상태라는 사실을 머리(대뇌)로 이해하기보다는 묵직한 기분과 감정이 더 사로잡는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황은 더 번지고 커져서 무기력함이라는 감정에 이르게 한다. 그 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무척 다행스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무기력의 상황에 빠져들고 침잠하게 된다. 아마, 많은 경우의 발달장애인 부모, 가족, 함께 만나는 교사, 치료사, 복지사들이 겪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소진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고맙고 필요한 방법은 좋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이해받으면서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정말 시간을 보내고 세월을 보내는 것 자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해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이 지식은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돌아보는 구체적인 지식이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아간다. 생활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힘들어해서 소진될 때, 잠시 시간을 둔 다음 했던 일은 관련된 글과 문헌을 찾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아는 것은 감정을 안정시키고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읽었던 글 중에, 북유럽 도시의 인구에 대한 조사결과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해당 도시의 발달장애인의 인구를 파악하고, 진단과 의학적인 특성 뿐 아니라 생활기능에 대한 정보를 담아 생애 전반적인 주기의 건강변화를 제시한 보고서였다. 소위 선진국에서 지금 주목하는 부분 중에 발달장애인의 노화와, 일반인들의 노화가 다르기 때문에 발달장애인의 전생애접근 중 노년기 지원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해당 보고서에서도 특정 발달장애인구의 노화를 다루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경우 중년기에 이미 노화가 많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활기능도 상승하다가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노화와 합병증이 생기면서 저하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내용을 읽고 마음이 어려웠다. 내가 일하면서 발달장애인을 만나왔어도, 아직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직 30대에 이른 정도다. 나에게 발달장애인의 노년에 대한 구체적 경험은 없다. 어르신들을 만난 경험은 있으나, 그 분들은 일반적인 삶을 살다가 노화와 인지기능 장애를 겪으면서 삶과 몸의 기능이 줄어드는 경우여서 발달장애인의 노화와는 그 삶의 내용이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니 번뜩 머리를 세게 치고 가는 말이 있다.

발달장애인의 삶과 생활이 상승하는 시간이 짧고 누리는 시간이 짧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좋은 게 아닐까?”

살아가는 삶이 짧은 사람이 발달장애인일 수 있다. .. 살면서 정말 즐겁거나 좋은 순간이 짧은 사람이 발달장애인일 수 있다. 그리고 통계와 연구는 제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나라나 사회별로 비슷한 비율의 발생율을 보인다고. 발달장애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할 수 있거나 참여하거나 덜 아프거나 더 너그럽거나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삶의 폭이 원래 제한되어서 참여하는 삶과 관계와 활동과 행동의 순간이 짧고 좁다. 그걸, 발달장애인에게 더 넓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발달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가능한 능력을 발휘해서 더 많이 이해해서 발달장애인이 덜 힘들고 덜 아프고 좀 더 즐거운 순간을 만드는 노력이 더 가능성 있는 방책이다.

이런 관점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생각해봐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되지 않을까? 누가 나에게 소진된 마음일 때 더 노력해라’, ‘좀 더 잘해라’, ‘참아라라고 한다면,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미워할 것 같다. 나는 덜 느끼는 편이라는 소진에 이렇게 몇 주 넉다운이 되었는데, 혹시 발달장애인은 이런 소진과 비슷한 느낌을 자주 느끼거나 빨리 느끼는 것은 아닐까?


발달장애인의 강점은 무엇이며 강점에 초점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에게나 단점과 강점이 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을 조금 더 통계와 근거를 토대로 설명하면,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강점은 몸을 움직이는 것과 규칙적인 활동을 이해할 때 일정하게 방식을 확립하는 데 있다. 물론 운동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달라진다. 운동장애는 있으나 지적장애가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강점은 생각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강점에 초점을 두면, 자폐성 장애인이 움직이는 활동을 확장하고 규칙과 약속이 확장되는 일이 가능하다. 뇌성마비 장애인은 인지적인 학습을 확장하고 의사소통을 확대할 수 있다. 대신, 이 확장이 혼자 가능하지 않고 사회환경이 지원해야 가능하다.


장애는 의료적인 질병이 아니다.

질병과 감염은 의료적인 처치, 의료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장애는 지원이 필요하다.

질병에 대한 의료적 처치처럼,

장애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병에 약을 처방하듯,

장애에는 이해를 처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해는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이해라기보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사회 구성원의 이해다.

그리고, 그 이해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상호적인 관계를 할 때 상대의 강점을 이해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의 강점을 이해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장애가 없는 사람의 강점을 이해하는 일도 조금 더 용이하지 않을까? 약점과 문제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대화나 관계는 어렵다. 강점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바라보는 대화와 관점은, 그보다 조금 덜 어렵다. 덜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바뀌는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가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참 좋다. 몹시 어려운데, 참 좋다.



지석연 (발달장애지원 전문가포럼 / 작업치료사 / SISO 감각통합상담연구소)​


※ 위 글은 <함께웃는재단> 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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