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사회성


발달장애인의 성/섹슈얼리티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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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6 01:10


 


최근에 연일 터져나오는 미투(Me, too)의 고발 행렬을 보며, 성/섹슈얼리티는 비단 발달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는 겉으로는 고귀한 성, 거룩한 성을 강조하면서 이면에는 뒤틀린 성, 왜곡된 성이라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의 생물학적 측면에만 관심을 두고, 육체적인 성관계를 성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성은 쾌락적이고 유희적인 것이며, 성의 표현은 음란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의 표현을 금지하고 숨길수록 오히려 음성적으로 활성화되므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그릇된 성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특히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무지한 친구들끼리 그릇된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무지를 더욱 강화하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성에 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면 불쾌감과 부도덕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종족보존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를 하나의 죄악으로 여겼던 과거 시대의 문화적 유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이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친밀성(intimacy)의 표현이다. 친밀성은 다른 사람과 관계맺는 기본적인 전제이며, 관계의 정도를 결정짓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는 그러한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사고, 감정, 가치관, 행동 등을 포함한다. 성은 인간의 일상적인 삶과 유리된 별개의 영토를 갖고 있는 미개척지가 아니며,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인간관계와 사회제도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일전에 장애인복지관의 부모교육에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통합과 자립을 위해서는 3가지가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는데, 1) 평생교육, 2) 주거, 3) 성이라고 한다. 부적절한 성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던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퇴소 조치를 당하거나,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와 민원제기로 인해서 생활공동체를 옮겨야했다는 사례도 전해 들었다. 그 만큼 성은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통합에 핵심적인 요소인데, 아무도 이에 대해서 입에 올리지 않는 게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은 성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성적 욕구가 없는 무성적 존재로만 간주하기 때문이다. 간혹 언론에 보도된 경우에는 발달장애인의 통제되지 않은 성, 이에 대한 부모들의 우려와 불안감으로 점철되어 있다.

 

※ “날마다 자식의 욕구와 싸우는 엄마들” 한겨레21, 제 829호, 2010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8210.html

 

일반적으로 발달장애인의 성을 수동적인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듯이 성범죄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담통계분석(2015년 기준)에 따르면,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서 지원한 성폭력 피해자의 78%는 여성 지적장애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발달장애인이 가해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말아톤의 몇몇 장면을 떠올려보면, 얼룩무늬에 '꽂힌' 초원이가 다른 사람의 얼룩무늬 가방에 '손을 대서'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이 되풀이된다. 또한 지하철 역사에서 얼룩무늬 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에 손을 댔다가 그 여성의 애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옷에 단추가 끼워져 있지 않은 걸 견디지 못하는 발달장애 청년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하철에 탔다가 젊은 여성의 가디건 앞단추를 끼우려고 시도하다가 성범죄자로 몰렸다는 사례도 전해 들었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에게 성범죄 가해의 가능성은 크게 2가지 요인이 작동하기 때문인데, 첫 번째 요인은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친밀성의 표현이 허용되는지 모를 경우이다. 여기서 친밀성의 표현은 부드러운 눈빛, 미소, 인사에서부터 악수, 팔짱, 껴안기, 그리고 뽀뽀, 키스, 성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호작용을 포함한다. 그런데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영역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타인의 영역이란 관계에 따라 상호작용이 허용되는 물리적 공간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가족에게는 껴안기 등이 허용되지만 친구, 교사 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친구, 교사라 하더라도 아주 친하거나 상대방의 허락을 얻었다면 껴안기를 할 수 있다.1) 따라서 적절한 OTP(상황, 시간, 장소)에서의 성은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요구된다. 이게 제대로 안되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폐가망신하는 사람들을 요즘 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은 “영원한 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도 성욕구가 있다는 사실이 무시된다. 그러다보니 적절한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고, 올바른 성표현을 알려주지 않고 “하지마! 하지마!”의 상황이 된다. 그 결과 성표현의 허용 범위가 관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른 채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지 마라”는 금지는 행동 수정을 가져오기 어렵다. “~해라” 또는 대안적인 행동을 하도록 제시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 성교육은 사춘기, 또는 성인이 되고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연령에 맞게, 단계에 맞게, 발달수준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둘째 요인은 성욕구에 따른 표현이 아닌데도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성표현으로 오해받는 경우이다. 특히 요즘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 인식이 드높아지고 성범죄 인식수준이 날로 향상되고 있으므로 키 크고 건장한 덩치를 가진 발달장애인의 어설픈 행동들은 성행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커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성인 남성 또는 여성이 '이상야릇한' 행동을 하면 의혹과 두려움의 눈초리로 잔뜩 경계하고 혐오할 것이다. 게다가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으니 실제로는 자신이 한 행동보다 훨씬 나쁜 방향으로 덤탱이 쓰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지환이가 바지를 입고 지퍼를 올리지 않은 상태로 등교했는데, 남자화장실에서 ‘야한’ 장난을 치는 친구 옆에 있다가 닫혀있지 않은 바지 지퍼 때문에 같이 야한 장난을 친 걸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 ADHD 증상으로 덤벙거리는 지환이가 지퍼 올리는 걸 잊어버렸을 뿐인데 학교선생님께서는 사뭇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셨다.

 

발달장애인의 주위에는 교사, 사회복지사가 대부분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오해의 상황은 드물지 않게 벌어질 것이다. 특히나 성에 대해 폐쇄적이고 엄숙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면 ‘왜 저런 행위를 할까?’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지레짐작할 소지가 높다. 그러니 성교육은 발달장애인 당사자 뿐만 아니라 부모, 교사, 사회복지사 등 관계된 종사자들에게도 이루어져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별것도 아닌 행동을 오해하거나 과잉반응하거나 잘못된 반응을 함으로써 오히려 그 행동을 강화시키거나 고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해야 되는 행동,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행동, 해서는 안되는 행동 등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성교육의 핵심은 성행동(sex act)이 아니라 관계, 즉 사람마다 영역이 있으니 내가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또 반대로 나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내(신체)가 중요하듯이 타인(신체)도 중요하니 어떻게 이를 인지하고 배려하고 존중할 것인가를 습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삶의 질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발달장애인 성교육은 성교육만 똑 떨어져 시킬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격적 성장과 발전을 위한 교육적 지원이라는 커다란 바운더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각주1) 사회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상호작용이 허용되는 영역은 관계에 따라 4가지로 구분된다. 가족, 절친, 애인 등과의 상호작용은 친밀한 거리(0~45cm)에서 이루어지며, 친구, 직장 동료 등과의 상호작용은 개인적 거리(45~120cm),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등은 사회적 거리(120~360cm), 배우와 관객 등은 공적 거리(360cm이상)이다. 이러한 영역 구분은 사회문화에 따라 다르게 결정되며, 영역을 침범할 경우 비난 등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청년 엄마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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