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자립의 현실과 미래 (1) -탈시설 너머 자립지원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2021년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이는 이후 20년에 걸쳐 기존 거주시설 이용인 2만 9천여명의 지역사회 이동 정도를 계획한 것일 뿐, 지원 없이 자립이 어려운 24만명의 발달장애인은 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올해부터 ‘최중증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를 몇 개 지자체에서 실시하는데 예산과 체계가 결여된 복지는 현장의 희생만을 강요하게 됩니다. 작년 발표에 의하면 OECD 국가 중 한국의 복지예산은 최하위로 더 후퇴했습니다. 사각지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울음과 죽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이에 저는 현실을 알리고 가야할 미래를 계속 말하고자 합니다.
1. 준비되지 않은 탈시설은 사회적 방치
현실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탈시설은 사회적 방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최중증이 아닌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 속에 안전장치 없이 위험과 사고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례 몇 가지를 먼저 전하겠습니다.
첫 번째 사례입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급성 뇌졸중으로 응급상황이 되어 병원에 실려갔는데 보호자 서명을 받지 못해 수술을 거부를 당했습니다. 시설에서 거주하던 장애인이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로 나오면 시설에서 받던 모든 서비스가 사라지고, 활동지원서비스 하나만 받게 됩니다. 다행히 직업을 가지거나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면 낮시간은 그나마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활동지원서비스는 하루에 서너시간 밖에 되지 않기에, 저녁과 주말엔 방치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나마 독거하던 발달장애인의 응급상황을 빨리 발견하고 병원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동행한 활동지원인을 보호자로 인정해주지 않아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발달장애인 지원법에서는 ‘후견인이나 후견인이 아닌 사람 중에서 사실상의 부양 의무자로서 발달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을 보호자로 칭하고 있는데, 활동지원인을 실질적인 보호자로 할 것인지 여부가 공론화되지 않았기에, 병원 응급 치료를 놓치고 사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노숙인과 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연고 독거인이나 노숙인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2021년에 약 3천명이었습니다. 이 중에 발달장애인이 몇 명인지는 조사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 사례입니다. 어릴 때 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하고, 시설에서 성장한 지적장애인이 표준사업장에 취업해서 돈을 알뜰하게 모았습니다. 천만원 정도 모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친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아들은 그리워했던 엄마를 온전히 믿고 가진 돈 전부를 빌려줬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돈도 갚지 않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럴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성인 장애인이 자기 의지로 돈을 빌려줬으니, 그냥 “당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라고 내버려두는 게 인권일까요? 실제 성인 후견제도나 신탁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사례 조사를 해보면 외부인들보다 가족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 동료들이 사기범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 번째 사례입니다. 일상적인 언어 표현도 되고 신변 처리도 되는 여성 장애인이 시설에서 퇴소해 독거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리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성적으로 유린 당하는 상황들이 발생했고요. 성병과 유산 등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인데, 자기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됩니다.
2. 어떻게 안전체계를 갖출 것인가
위의 세 가지 사례로 문제만 먼저 던져 보았습니다. 해결하기가 참 난감한 상황들이지요. 이제 몇 가지 대안을 제안해보겠습니다. 제가 거주시설에서 치료사로 일하면서 시설의 안전 체계에 안심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헬렌켈러의 집’이나 ‘월평빌라’ 등의 시설은 소그룹 형태로 촘촘한 지원을 하고 있지요. 시설은 구조상 당사자의 선택권이 결여된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에 탈시설 전환이 바람직합니다만, 몇십 년 전 거주시설 초기에는 길에서 노숙하는 발달장애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자는 마음으로 시작되었고,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된 강점들도 있습니다.
그 강점들을 살펴보면, 거주공간이 빌라형태로 101호, 102호로 구성되었을 때 만약에 101호에 긴급한 공백이 생기면 옆집과 상호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력팀으로서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생활지도사, 그리고 회계와 행정, 서비스 사무팀이 공존합니다.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의료, 교육, 치료, 여가 등을 일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는 외부 인권지킴이가 예고 없이 수시로 나오고, 행정 감사 및 직원들 보수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나 기부자 등과 일대일 후원 매칭이 되어서 일반학원을 다니거나 여행을 가는 등의 여가지원이 가능하고, 퇴소했을 때 개별 적립금을 마련해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세부적인 지원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초등학생 남자아동이 여자옷을 입고 싶어 할 때, 대부분 가정에서는 부모의 일방적인 관습대로 금지하기 쉬운데 종사자들은 회의를 합니다. 인권적 측면에서 아동의 행동이 성정체성의 문제일 때는 지원할 방법을 의논하고, 단지 취향의 문제일 때는 허용하도록 방향이 나오지요. 취향이라고 해서 물론 아무 옷이나 입게 할 수는 없지요. 여름에 겨울옷을 입거나 겉옷 위에 속옷을 입을 때는 교육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요.
성인이 되었을 때 모든 이용자와 종사자들은 서로 높임말을 합니다. 많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부모보다 치료사나 복지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존중받는 기분 때문일 겁니다. 호프에 가서 맥주를 같이 마시거나 카페, 영화관에 가서 데이트하는 것, 그리고 성적인 프라이버시를 위한 개별공간 등을 지원합니다. 실연을 당하거나 성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상담지원도 합니다.
3. 탈시설 그 이상의 자립지원으로
위와 같이 몇십 년간 거주시설에서 축적해온 안전체계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시설의 근본적인 한계는 무엇인가 이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 사적인 공간의 부재입니다. 1인 1실은 거의 없고 그나마 시설형편이 나은 곳이라도 2인 1실로 내가 원하는 동거인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동네로 이사갈 수 없고, 취침 시간, 기상 시간도 단체 생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간혹 외식으로 선택권을 가지기도 하지만, 대개 급식표로 정해진 식사를 해야 하지요.
둘째, 안정적 애착 형성의 어려움입니다. 종사자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또 생활지도사 한 명이 다수의 장애인을 돌봐야하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외로움이나 정서적인 결핍이 발생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발달장애인의 행동이 표면상으로는 공격, 이탈 등으로 나타나지만 기저에 이런 정서적 관계의 결여가 깔려서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셋째, 환경적인 한계입니다. 청각과민 장애인과 소리 지르는 장애인이 한 방에 같이 살아야 되는 것, 물건을 던지는 장애인과 피하지 못하고 늘 맞는 장애인이 같이 살아야 되는 것, 항상 밖에 나가고 싶은 장애인과 혼자 있고 싶은 장애인이 동거해야 되는 상황 등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4. 강점 살리고 한계 없애기
이와 같이 기존 거주시설의 강점은 살리고 한계를 없애자는 게 제 결론입니다. 팀 협업 즉, 사무팀과 공적인 콘트롤 기관 등이 상호 모니터되고 긴급지원되는 팀 협업의 강점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리고 한계를 없애는 방안으로서 우선 당사자 소유의 주거를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거인을 선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 결정권 및 책임을 교육하고 강화하여, 지역사회에 연결해 주는 부분까지 서비스 개발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엔에서 권고한 ‘탈시설 실현 계획 요소’ 중 일부를 아래에 전합니다.
‘책임기관 및 인력팀 그리고 서비스 개발에 있어서 목표를 수립하고 조치하고 조정하는 활동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비용이나 가용 자원, 예산이나 후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지속적인 모니터와 평가 체계가 있어야지만 탈시설 자립 지원이 가능하고 모든 행동적인 지원들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