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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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취업, 반드시 새겨둘 점





글 : 정병은(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환이는 5월부터 복지관의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매일 7시간(점심시간 포함)씩 ‘취준생’으로 지내고 있다. 학령기때는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하느라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복지관에 다닌다. 직업평가를 받은 후에 보호작업훈련반에 배치되어 직업전훈련과 직무훈련을 받고, 다양한 실내.외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직무훈련을 받으면서 일한 댓가로 소정의 임금도 받는데, 자신의 통장에 찍힌 액수를 확인하며... (돈이 요것 밖에 안되서 억울해요).. 돈 버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발달장애인이건 아니건 성인으로서의 자립에 취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흔히 취업했다고 하면 직장에 고용되어 돈을 버는 피고용 임금근로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취업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넓혀보면 직업을 잡아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일’(work)은 정신적 또는 육체적 노력을 요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일하는 조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고 업무가 지루할지라도, 일은 심리적 기질과 일상적인 활동의 주기를 구조화하는 요소가 된다.


일은 괴롭고 힘든 노역(勞役)이기도 하지만,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노동권은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인간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일상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수입이 없으면 걱정없이 생활하기 훨씬 어렵겠지만, 일을 하는 이유는 수입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요소들 때문이다. 즉 일을 함으로써 개인의 역량을 습득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고, 단조로운 집안 환경과 대조가 되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시간 구조를 통해 일상의 리듬과 방향 감각을 가질 수 있고, 많은 사람들과 사회적 접촉이 가능하며, 개인적 정체성을 제공함으로써 유능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직종과 직무를, 어떤 특성의 조직에서 일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의 사회변동은 기계화, 자동화의 영향으로 어제 잘 나가던 일이 내일은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선호하는 바리스타는 인공지능 로봇 바리스타의 등장으로 사라질 수 있는 직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이 몰두하는 캐릭터는 디자인 툴과 인터넷의 발달로 유망한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 및 직업 구조가 근본적인 변혁을 겪고 있는 현시대에서 전문가들은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과 잘 매치될 수 있는 직종과 직무를 발굴하고 개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비장애인 청소년과 청년은 공식화된 검사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성격/심리 유형, 적성, 진로성숙도 등을 파악하여 직업 매칭을 시도한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갭이어(Gap Year), 교환학생/어학연수 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반면 발달장애인의 흥미와 적성은 아예 무시되거나, 무엇을 잘 하고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중고등학교 시기에 본격적으로 진로를 탐색하고 직업 개념을 교육받아야 하는데, 정작 학교에서는 학습과 인지를 중시하거나 행동의 문제로 버거워한다. 가정에서는 발달장애자녀를 ‘영원한 아이’로 보고 기초적인 작업을 시도할 기회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로 인해서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부족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해 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실제로 해 보는 것은 적성과 흥미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최근 몇몇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진로 및 직업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직군과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거나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취업과 진로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선호와 의견이다. 한국사회는 자녀의 진로에 부모가 일찌감치 개입하여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만 해도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갖고 선호하는 직업을 지목한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의 다양성은 현저히 줄어들어 결국 몇 가지 한정된(뻔한!) 직업으로 제한된다. 여기에는 부모를 비롯한 친인척의 개입이 압박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이를테면 취업난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조기 퇴직자의 숫자는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신입사원을 뽑은 416개 기업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입사자 중에서 약 31%가 취업 1년 이내에 퇴사하였으며, 퇴사 사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라는 응답이 약 60%에 달하였다.


※ 신입사원 31%, 입사 1년 이내 퇴사(머니투데이 219.5.22)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52209475680683


발달장애인의 취업도 단순히 취업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취업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종과 직무에 따라 일의 조건이 다르지만, 하다 보면 회피하고 싶은 일의 속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을 견디고 돌파하려면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좋아하는 일이 결국 잘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환이는 지금 일종의 갭이어 기간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복지관 취업지원 프로그램에서는 구체적인 작업기술보다 취업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를 습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규칙적인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다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성급하게 취업을 재촉하기보다 찬찬히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면서 취업을 하는데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평균 5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 준비를 평균 11개월 하는 비장애 청년들과 비교해 보면 23살 지환이는 성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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