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지원과 AAC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험한 AAC 사례





미국에서 경험한 AAC 사례를 공유했던 페이스북 글입니다.어투가 다소 부적절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국에서 경험한 AAC 사례


아이팟 터치가 처음 출시된 해는 2007년,

재현이를 비롯한 우리 가족이 한창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보자고 지지고 볶을 때였다.


나 혼자 아이 둘을 미국에서 돌보며 특수교육 대학원을 다니던 때이기도 했고, 재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특수교사, 언어치료사, 보조교사를 비롯한 많은 스탭들과 재현이의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위해 열심히 서로를 격려하던 때였다.


미국에 가자마자 PECS를 소개받아 사용하기 시작했고 재현이는 자발적으로 “I See ( )” 문장을 그림카드로 만들며 의사소통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제별로 폴더가 나뉜 PECS 그림카드는 그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렇게 목소리를 대신하는 재현이만의 언어를 새로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잠깐 주춤하는 순간이 찾아왔는데 재현이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기술이 늘어감에 따라 빠르고 손쉽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PECS는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번거로웠고 느렸다. 그만큼 재현이의 의사소통 의지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그 아이는 말하고 싶어 했고 자신을 봐주길 원했고 발표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 욕심과 속도를 PECS로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순간이... 돌이켜 생각하면 재현이를 위해 그동안 내렸던 결정 중 가장 중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화를, 좀 더 정확히는 미국수화를 가르치기로 결정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줄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자면 보편적 기호와 상징을 사용하는 PECS가 더 나았을테지만, 엄마로서 난 그 아이의 의사소통 의지에 제동을 거는 방법을 고집하고 싶지 않았다. 단 몇 명이라도 재현이의 수화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이 떠오르는 속도 그대로 수화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재현이는 학교 언어치료 선생님에게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내 예상은 맞았다. 혹시 수화의 동작이 어려워서 못배우면 어떡하지?, 그 많은 수화를 어떻게 다 배우지? 라는 걱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사소통수단 대신 수화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주저앉히진 못했다. PECS를 통해 배운 어휘력이 고스란히 수화로 옮겨갔고 미국수화도 모자라 핑거스펠링까지 빠르게 배워갔다. 그 아이는, 수다쟁이였다.


그러나 애초에 알고 시작했던 그 문제점, 모든 사람들이 재현이의 수화를 이해해주지는 못할 거라는 한계가 찾아왔다. 각오했던 일이었고 그 이상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지금도 후회는 없다. (개별학교 안에서만이라도 공통으로 사용하는 수화나 수신호, 약속된 동작이 있다면 재현이의 경우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발달장애 수다쟁이들을 찾아낼 수 있을텐데... 늘 안타깝다.)


PECS나 수화가 각각 장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학교 교사들과의 협력회의에서 나누었다. 그 때 내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면 우리가 문자로 서로의 소식이나 생각을 주고받는 것처럼 우리 재현이같은 아이들도 타이핑을 하지 않아도 자기의 생각을 손쉽게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길 거예요. 그냥 막 건드리고 누르고 대충 고르기만 해도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 PECS처럼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수화처럼 몇 명만 알아듣는 게 아닌. 분명히 그런 물건이 나올 거예요.”


아이팟 터치가 아직 출시되기 전의 대화였고, 정확히 1년도 되지 않아서 바로 그 물건이 세상에 나왔다.


아이팟 터치가 출시된 후 첫 번째 협력회의에서 나와 교사들 모두 소녀처럼 꺄르르~ 거리며 이 물건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고, 이 물건의 구입은 부모가, 활용에 대한 교육은 학교에서 책임질 것을 IEP 에 명시하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시도된 것이, 텍스트를 소리로 전환해주는 앱을 이용한 과제발표였다. 수업시간에 찾은 자료 중에 간단한 문장을 뽑아내서 재현이가 하나하나 눌러 입력하고 앱을 작동시켜 재현이의 목소리를 대신하도록 했다. 당연히 그 날의 주인공이었다.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목소리 Voice를 준다는 것은 입으로 나오는 음성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나와 재현이는 몸소 겪어왔다. 나에게 보완대체의사소통이란 것은 말 그대로 보완하고 대체하는 수준의 점잖은 개념이 아니었다. 그건 ‘어떤 식으로든 장애아동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하는’ 절박함이었고 기존의 틀을 깨야 하는 용기였다.


그랬다, 과거엔.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렇게 비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 때의 그 물건이 훨씬 많이 진화했고 다양해졌고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안 쓰면 게으름 또는 무지를 탓할 수밖에.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