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치료와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음악치료와 음악교육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수업하는 모습을 창문 밖에서 살펴본다면 둘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치료수업이나 학교수업이나 똑같이 노래 부르고 신체표현하고 악기연주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치료사나 교사나 둘 다 아동에게 악보나 연주를 보여주고 제시하여 모방하게 하고 반응을 주고 받으며 반복하여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들은 매우 흡사하다.


둘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상과 목적’이 다르다. 교육이 일반적인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음악적 기능의 성취를 목적으로 한다면, 치료는 음악을 도구로 하여 장애인이나 질환자의 정서와 인지 및 신체 기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결과적으로는 교육이나 치료나 모두 음악적 향상과 함께 하나의 인격체로서 만족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접근하는 방법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치료적 방법의 예를 들어보자면, 4/4박자 리듬에 맞춰 한 박자 간격의 손뼉치기( ♩ ♩ ♩ ♩ )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장애아동이 있을 때, 치료사는

“그건 틀린 박이야. 하나 둘 셋 넷 똑같은 간격으로 계속 쳐야지.”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동이 ♩ ♩ ♪ 와 같이 불규칙하게 손뼉칠 때 치료사도 같이 불규칙한 박자를 모방하며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계속된 손뼉치기로서 치료사가 목표로 한 정박자의 규칙으로 점점 더 당겨간다. 이 때의 목적은 표면적인 음악적 완성보다는 신체기능의 조절 및 집중과 인지력의 향상이다.


아동은 일부러 틀린 게 아니다. 일정한 리듬에 대한 인지가 되지 않았거나 신체조절력의 부족으로, 단지 손뼉을 치는 행위 모방만 시도한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에 치료사가 불규칙한 박을 지적하지 않고 함께 불규칙하게 맞장구를 쳐 준 이유는 손뼉을 친 행위만으로도 칭찬받을만한 일이기에 동조한 것이고, 그 다음 단계로 일정박을 유지하도록 이끌기 위해 점점 더 정박자의 패턴으로 당겨간 것이다. 어떤 아동은 짧은 시간 내에 정박자의 규칙을 따라할 수 있고, 어떤 아동은 여러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상대방과 박자가 어긋날 때 불편함을 느끼는 음악적 본능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치료는 그 본능을 기반으로 상대방과 일치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상대방과 일치할 때의 쾌감, 그 감정을 유도하고 자각하게 하고 강화하는 것이 치료다. 그제서야 치료사는 “잘 했어!” 칭찬의 한 마디를 던지거나, 그 리듬 위에 아동이 좋아하는 노래를 곁들여 불러주거나, 또 다른 악기로 그 리듬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등 아동이 인지할 수 있는 다양한 강화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때의 강화는 또 다른 목표나 부담으로 아동에게 느껴지지 않도록, 단지 치료사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때때로 아동은 칭찬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했는데, 치료사가 무덤덤하게 반응했을 경우 금새 시무룩해지거나 집중이 흩어지기도 한다. 지나치게 상대방의 반응에 집착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관심의 욕구이므로 사람의 반응이 없어도 음악 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할 때까지 적절히 세심하게 반응하는 것은 치료사의 역량이다.


음악치료를 제대로 정확하게 가르치지도 않고 그저 즐겁게 아동의 기분에 맞춰 놀아주기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가끔 계시다. 그러나 즐거움이란 그저 마음대로 하거나 자유롭게 방치된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서 벅차지 않게 한 단계씩 발전하고 성취해낼 때에야 즐거움, 즉 희열과 만족감 그리고 더 잘 하려는 의욕을 느낀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몇 걸음을 껑충 뛰어 발전하지는 못한다. 다만 각자가 가진 능력의 양이 각각 다르기에 어떤 이는 하나만 가르쳐줘도 열을 아는 것 같고, 어떤 이는 하나를 알기 위해 열 번의 반복이나 열 가지의 세분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르치는 자는 치료사든 교사든 대상아동의 능력을 보다 근접하게 파악하고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아동이든 자신의 능력에서 최선을 다한 그 순간에 박수를 받아 마땅하고,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계속해서 지지받아야만 한다.


필자를 가르친 한 교수님께선 이런 고해를 하셨다.

“ 내가 어설프게 음악을 알 때 합창을 지휘하며 엘토파트의 아동에게 피아노 건반을 땡, 땡 세게 치며 틀린 음을 지적했었어요. 지나고 나니 그게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미안함이 밀려와요. 피아노의 음정은 평균율로 분할한 것이기에 순정율의 자연화음과 달라요. 아카펠라로 부를 때의 완벽한 화음과 피아노 건반의 음정은 일치하지가 않는 거죠.”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음악의 완성을 향한 교수법에 대해 덧붙이셨다.

“합창 중에 틀린 음정이나 발성을 내는 단원이 있을 때, 그 틀린 모양을 흉내내거나 강조하면 안돼요.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강조해서 지적받을 때 본능적으로 움츠리고 생각이 닫혀지게 돼요. 가르친다는 건 틀린 걸 지적하는 게 아니라, 맞는 걸 제시하는 거에요. 가르치는 자가 정확한 음정과 발성을 선창으로 아름답게 보여줄 때에야 학생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게 돼요.”


서두에 치료와 교육은 대상과 목적이 다르다고 언급했으나, 결국 둘 다 음악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음악적 성취의 희열이라는 같은 방향으로 길이 합쳐지게 된다. 결국 완전한 인간이나 완벽한 음악의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걸음의 속도만 다를 뿐 지향하는 바는 같은 것이 당연하리라.


음악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모든 가르치는 자와 돕는 자, 배우는 자와 즐기는 자들 가운데 아름다운 성취가 있기를 응원한다.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엄마/ 음악치료사/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장)


*이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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