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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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이 예술을 한다는 것




가을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행사들이 개최되기 시작하더니 연말이 다가오면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전시회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면서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발달장애인예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오케스트라, 앙상블 등의 클래식 공연예술, 그리고 시각예술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과 성과를 보여서 매우 뿌듯하다. 황무지 같은 발달장애예술의 세계에서 첫발걸음을 내딛고, 길을 내고 닦고 넓혀온 여러 사람들의 피.땀.눈물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가장 많이 애썼고 가장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대중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2000년대 이후 일상적 삶으로의 문화가 강조되는 방식으로 문화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화 민주주의’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전문예술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창작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지식 습득, 또는 예술가의 창작물을 감상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직접 참여해서 표현하고 창작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이 확대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문화예술이 갖는 경험재(experience goods)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즉 문화예술에 대한 취향, 선호, 효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성된다. 문화예술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의 성장기에 어떤 다양한 경험을 하는가에 달려있으므로 아동기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학습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실제로 아동기에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경험이 부족하면 중·장년층이 되어서도 문화예술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감정, 생각, 경험의 표현인 예술의 창작과 감상에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일체의 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발달장애인 대상의 문화예술교육 역시 발달장애인이 문화예술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향유와 창작에 참여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활동이다.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도 자신의 욕구, 감정, 생각을 표현하고, 재능을 발전시켜 실현해 나가고, 작품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힘은 일상의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느낌이나 생각을 예술적 문법, 다양한 재료 등을 통해서 구현하는데 있다. 또한 문화예술을 통해서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게 한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문화예술이야말로 한 인간으로서 즐겁고 자연스럽게 자존감이나 정체성을 회복하는 방법이 된다.


과거에 비해서 발달장애인이 문화예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지만,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2017년의「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영화를 제외한 모든 영역의 문화행사에 참여한 적이 없는 경우가 97% 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상․관람(6.4%), 승부놀이(4.2%), 창작적 취미/예술(3.5%), 학습․자기계발(6.2%), 여행(6.8%), 해외여행(5.5%) 등 활동이 저조하며, 발달장애인의 문화예술 참여 수준은 더욱 열악하다. 2011년, 2014년, 2017년의 조사결과를 비교해 보더라도 문화예술 실태는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편 장애아동 대상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재활을 위한 예술치료와 혼재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의 「발달재활서비스」로 제공되는 음악치료와 미술치료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언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므로 장애로 인한 기능과 상태에 제한받지 않고,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환경에서 거부감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활을 위한 예술치료는 오히려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배제시킬 수 있다는 한계점을 드러낸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장애인의 사회적 기능이 향상되고, 심리적.정서적 안정과 적응을 도와주지만, 문화예술의 고유한, 본래적 속성인 창의성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다. 예술치료에서 예술은 치료를 위한 매개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문화예술의 주체로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감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치료, 재활이라는 관점에서 수동적인 자리에 머물러 버릴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감상과 창작을 위해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문화예술 향유, 재능 개발, 소비, 생산 등과 같이 문화예술 행위가 갖는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 간혹 뛰어난 예술가들이 창작의 ‘고통’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은 억압되었던 창조성이 발휘되고 내면의 정신세계가 작품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약점에 집중하기 보다는 잔존 능력이나 잠재 능력을 이끌어내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강점의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혹자는 말하기를 “(발달)장애인에게 밥(치료, 직업)을 줘야지 무슨 예술이야?”, “(발달)장애인에게 예술은 사치!”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고 활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또한 인간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밥은 안부를 묻는 인사말(“식사하셨어요”)이고, 관심의 표현(“밥은 먹었냐”)이며, 위로 또는 축하/격려(“언제 밥 한번 먹자”)이기도 하다. 발달장애인도 동등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생활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에게 창작활동으로서 예술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삶과 일상에서 예술이 부여하는 작용 때문이다. 즉 “예술은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는 힘이 있다. 예술에서의 승화란 보잘 것 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화된 심리적 변형과정을 가리킨다...예술과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술이 우리를 더 나은 삶, 더 나은 자아로 이끌어 준다는 확신 때문이다. 예술이 그러한 힘이 있다면 심리적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도구이고, 자기 표현이 힘든 발달장애인에게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1).


발달장애인에게 예술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발달장애의 특성이 ‘다름’을 넘어선 ‘새로움’, ‘독특함’의 시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행하는 활동이 통념적으로는 예술 같아 보이지 않더라도 발달장애인은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를 갖는다.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흥미와 관심에 몰두하여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충분히 즐긴다. 중증 발달장애인 중에는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조차 쉽지 않더라도 선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에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비장애인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중요한 활동이어서 흥미를 느끼며 즐긴다. 그래서 각자 다른, 독특한 결과들이 나오는데, 발달장애인이 가진 예술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2)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선호가 높다.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가장 선호하는 영역이며, 참여 경험도 가장 많은 편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몇 시간씩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 아주 행복해 한다는 증언은 차고 넘친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이 지금보다 더욱 활발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창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1) 장차현실 2018.4.8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0556744951

2) 김인규, 2017.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복지를 생각하며: 관리에서 삶으로” arte[365] 2017.11.13자 http://www.arte365.kr/?p=62413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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