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조모임 [별에서 온 그녀] 대만 여행기 - 1부



백미옥 (성인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 장애인권강사)


탈 것에 대한 공포증이 심한 나를 이끌고 내 일생의 해외여행의 첫 경험에 동행했던 사람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그 많은 모임들의 회원들도 아니다. 그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들은,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의 조력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오랜 기간 함께 했던 [별에서 온 그녀]다.

그 가슴 떨리는 첫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별에서 온 그녀]를 대부분 [별에서 온 그녀들]로 오해하곤 한다. 그녀들이 자조모임의 이름을 만들 때 나도 오해하고 여러 번 확인했다. 그녀들은 매번 분명하게 말했다. [별에서 온 그녀]라고! 그 때부터 나는 내가 매우 부족한 조력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온전하고 완벽한 그녀들의 그림자가 되고자 열정적으로 그녀들의 뒤에 붙어 다녔다.


2018년 7월 어느 토요일

그녀들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 게임장을 한바탕 휩쓸고 취향에 맞춰 음식들로 배를 채우고 다음 모임을 논의하기 위해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회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우리 다음에 어디 갈까요?

숫자 4와 미키를 유난히도 애정하는 회원이 “디즈니랜드요!”를 외쳤다.

목소리 큰 막내 회원이 거칠게 외쳤다.

- 언니! 거기엘 어떻게 가요? 미국은 너무 멀어요!

- 나 갈꺼야! 일본 디즈니랜드!

- 일본에 디즈니랜드가 있어요?

긴가민가 하는 의심의 눈들이 모두 조력인에게 쏠렸다.

= 여러분, 검색해서 알아봅시다.


휴대폰 검색기능과 친숙하지 않은 두 회원은 예전 같으면 나 몰라라 하는 듯 했지만 뭐야! 뭐야!를 외치며 빠른 검색을 재촉하였다.

한참 후,

- 있어요! 하루 만에 갔다 올 수도 있대요!

- 그래요! 우리 일본 가요!

- 입장료가 있어요, 비행기 타고 가요.

- 헐~ 돈이 많이 필요해요.

- 배 타고 가도 돼! 난 비행기 탈래!

- 엄마가 주실 거예요! 난 가지 말라고 할거야!

- 언니도 가자~ 못 가는 사람 있으면 싫어!

- 디즈니랜드 가자!


급 우울해진 분위기에 조력인은 제안을 했다.

= 여행비용을 한꺼번에 다 내려면 크게 부담이 될 거예요. 나도 갑자기 큰 돈 내고 여행 가려면 많이 망설여지지요. 용돈을 매달 조금씩 함께 모아서 우리 스스로 여행경비를 만들어서 가보는 것은 어때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어때요?

- 그래요! 우리 회비를 올려요!

- 얼마나 올리면 될까?


총무를 맡은 막내는 휴대폰 계산기를 들이대고 회장 언니가 불러 주는 예상 비용들을 들으며 열심히 숫자를 눌러 댔다. 비행기 값이 얼마고, 디즈니랜드 입장료가 얼마고, 하루만 갔다 오는 거니까 숙박비는 필요 없고!


일단 부담 없이 매달 낼 수 있는 회비의 최대치를 서로 의견을 내어 모아 보니 한 달에 오 만원. 기간은 다음 해 2019년 8월에 가는 것으로 하고 다음 달부터 1년 동안, 당분간 생일 파티 안 하고 생일선물만 주는 것으로 회비 절약하고, 수세미 열심히 떠서 팔아서 회비 수입 만드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조력인에게 즉시 해야 할 임무를 주었다. 매 달 오 천원씩 내던 회비가 오 만원씩으로 갑자기 올랐으니 용돈 조달청인 어머님들께 한 사람씩 전화를 걸어 전화기를 조력인에게 넘겨 주면 대신해서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조력인은 그 자리에서 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고, 조력인이 마지막 통화를 종료하니 그녀들은 만족감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어찌나 행복해들 하는지!


사실 부모님과의 통화에서는 여행비용을 한꺼번에 보내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매 달 현금으로 꼭 보내 주셔서 직접 회비를 내는 의미를 인식도 하고 책임감도 커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더해야 했다. 굳이 계좌이체를 하겠다는 부모님께는 그럼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익힐 때 까지 계좌이체 방법을 가르치는 지원을 해 주시라 했더니 꼬박꼬박 봉투에 넣어 현금으로 손에 쥐어 보내셨다. 그 봉투 열어 현금 흔들며 모임에 오자마자 회계를 찾는 그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10월 모임에 롯데월드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 매표소까지 긴 줄을 함께 서서 할로윈데이라며 한껏 요란한 귀신 복장의 다른 이들을 감상하며 대기시간을 함께 즐겼다. 예전과 다르게 입장을 기다리면서 그녀들은 번갈아 줄에서 이탈 해 가격표를 계속 소리 내어 비교하고 있었다. 자조모임을 여러 해 함께하면서 입장료와 지출할 비용을 계산 하는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입장 후 놀이기구를 신나게 즐기며 오후로 시간을 넘기는 중 문제가 생겼다.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못하는 회원이 조력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쿠야! 아직 타야 할 놀이기구가 수두룩한데 섣불리 나서질 못하고 있다.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못하는 회원이 있는데 어떻게 디즈니랜드에 함께 가느냐에 대한 문제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녀들 대부분이 각종 기관이나 단체를 통해 무료로 다녀봤거나 보호자를 따라 아무 계산 없이 다녀왔던 터라 입장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디즈니랜드를 가겠다고 열심히 회비를 모으며 준비하다 보니 자비에 대한 개념이 스스로 확실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때론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회비를 내다보니 살살 경비부담에 대해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놀이기구는 하나도 못 타는데 돈이 아까워요!

- 디즈니랜드는 여기보다 넓어요?

- 난 할인카드 없는데 복지카드로 할인 해주죠?

- 거기서도 복지카드로 빨리 탈 수 있나요?

- 밥값도 따로 내야 하나요?

- 여기서도 사고 싶은 이쁜 것들 많은데 거기도 그럴 거야! 그건 각자 써야지?

경험에 의해 스스로 인식되는 상식들! 강압적으로 입력된 허망한 지식이 아니어서 바람직하고 참 좋은 것이다. 롯데월드 방문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롯데월드 방문 이후 그녀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단체톡방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올라갔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녀들은 대안을 가지고 모였다. 2박3일로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다른 관광지로 협의를 보았다. 그리고 또 열심히 정보를 모았고 정리했다. 모임날 구청에 우루루 몰려가서 여권도 함께 만들고! 너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 파티는 코바늘이나 대바늘로 형식에 매이지 않고 각자의 능력대로 틈틈이 만들어 놓은 수세미와 자신들의 애장품을 초대 손님들에게 소박하게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물품을 판매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정말 소박한 수입이었지만 그렇게 노력해서 회비를 더 보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매우 만족해했다. 그녀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여행에 대한 행복한 꿈의 구름을 타고 지내던 중 그만 NO! JAPAN! 사태가 발생했다. 관광객 깃발을 들고 졸졸 따라 다니는 게 싫다고 해서 열심히 일본 여행지를 스스로들 완성해 놓고

항공권 끊으려는 찰나에 졸지에 NO! JAPAN! 에 합류하다 보니 그녀들은 멘붕에 빠졌다. 엎친데 덮쳤다고 여행비용에 보탤 수세미를 팔 수 있는 기관의 바자회 행사가 돼지열병으로 취소되어 열심히 떠 놓은 수세미 판로도 막혀 버렸다.


의. 욕. 상. 실. 그래도 낙하하는 정신 힘겹게 끌어 올리고 대만으로 행로 수정했으나 다시 여행지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에 붙였다. 다시 내용 없는 톡만 수 없이 오고 가다가 결국 여행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전문가의 지원을 받는 것, 이 또한 능력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녀들의 요구대로 매끼니 식사 종류는 물론 간식 메뉴까지 세부적인 일정 모두를 여행사에서 다양하게 선별해 주고 그녀들은 보내온 정보지들을 보며 확인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의견 존중하며 여행사와 협의하며 드디어 2박3일 대만여행 일정을 확정했다. 길고 긴 여행을 이미 정신적으로 한 건 한 듯했다.


깃발 들고 이름표 붙이고 자원봉사자들 줄줄이 달지 않고 소박하게 회원 7명과 조력인 2명이 살살 움직이는 우리만의 조용한 여행이 될 것이다. 참 많이 애썼다. 스스로 해외여행을 발설하고 지난해 7월부터 자신의 용돈으로 부담되지 않게 매달 5만원씩 차곡차곡 모아 계획들을 실행하는 과정들! 감사하게도 기관에서의 바자회가 약식으로 열렸고 그 판에 동참한 그녀들은 수세미를 판매할 수 있었다. 정말 눈물겨운 히스토리이다. 이렇게 삶의 경험을 축척하는 인생들 속에 조력인도 보너스 인생을 더불어 누렸다.


(다음주 2부에 계속됩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