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자조모임 [별에서 온 그녀] 대만 여행기 – 2부



글 : 백미옥 (성인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 장애인권강사)



(1부 읽으러가기 ▶ http://www.thespecial.kr/?r=special&m=bbs&bid=artist&uid=9954)


2019년 11월 23일 오후 4:47 자조모임 [별에서 온 그녀] 드디어 대만에 도착! 어려워~ 어려워~ 입출국 절차의 긴장감은 심장을 쫀쫀하게 만든다.


평소에 맨몸으로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힘들어했던 두 명의 그녀들은 제멋대로 돌아가는 캐리어 바퀴 때문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조력자는 이들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도 된다는 힌트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조력인은 그녀 둘이 미끄럽게 굴러가는 캐리어를 조정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또 조력인은 캐리어 짐을 먼저 보내고 안심할 수 있도록 그녀들의 캐리어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어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들은 한국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환전해 버린 탓에 비행기를 타야하는 게이트 앞에서 목이 타고 입이 궁금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조력인은 대만에서 맛난 것을 사 주기로 약속받고 조력인 카드로 음료수를 결제해주었다. 그녀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는지 음료수 하나에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얇은 외투까지도 벗어야 하는 출국심사에서는 자신의 몸에 부착된 것을 이상한 바구니에 내려놓는 것이 싫고 어려운 그녀도 있었다. 조력인이 조근 조근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며 인내를 갖고 기다려준 뒤에야 출국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기내식을 먹고 나서 입국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난감한 절차였다. 조력인도 자신의 것을 겨우 완성해 놓고 한 명 한 명의 서류를 확인해나갔다. 다음엔 스스로 잘 할 수 있을 거야!


각자의 휴대폰에 유심을 갈아 끼우고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하고 비행기가 멈추는 순간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늘 숫자 4를 고집하던 회원은 다행히도 비행기 안에서는 그 좋아하는 숫자 4의 좌석을 무사통과하였다. 대신 일행과 함께 3일을 이동 지원해 줄 관광버스에서 용케도 숫자 4번 좌석에 일찌감치 착석하고 활짝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녀들은 개구쟁이들이었다. 행복을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할 수가 있을지 장난과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미 전공과 졸업여행을 같은 곳으로 다녀왔으면서도 처음 온 것 마냥 즐기는 한 명의 그녀를 보면서 여행은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추억의 질감이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별그녀>의 여행 회비를 받아 체크하는 역할을 맡은 회장은 여행경비 일부를 학교에서 보태 주고 얼마인지 모르는 금액을 엄마가 지불했다며 시큰둥해지기도 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각자 열심히 월5만원씩 모아온 회비가 이렇게 큰일을 해 내고 말았다.


누군가는 월급에서 일부를, 누군가는 엄마나 아빠가 큰 인심 쓰며 조건 하나씩 걸며 투척해준 경비들을 모아 온 것이다. 그걸 빼 먹지 않고 기억해 내며 툭툭 시크하게 회장 손에 쥐어 준 바로 그 정성어린 손길들이다. 통장 만들어 부모님 손을 빌어 계좌이체 하게 하지 않고 굳이 매달 직접 현금으로 받아 모아 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이름 아래에 매달 체크되며 변하는 숫자를 직접 확인하면서 희망이 쌓이는 희열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숫자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다른 회원들이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 그 모습을 모두가 함께 나누고자 함이었다. 자신이 소속된 사회 안에서의 소속감과 관계형성이라는 거창한 일이 이 사소한 일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얼마나 모아지겠냐며 월 회비의 금액을 정하는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열정을 들여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던 <별그녀>들의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도 코끝이 찡~~하게 울려온다.


여정 내내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고 힘듦을 요란한 마른기침과 반복되는 토악질로 표현하던 한 그녀가 있었고, 내 눈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인형이나 액세서리 가게를 들어갈 때 마다 한 보따리씩 포장 해 나오면서 행복한 비명을 마구 질러 대던 한 그녀도 있었고, 이제 하루를 보냈는데 초저녁부터 목이 잠겨 목소리가 안 난다며 귓속말을 하기 시작한 한 그녀도 있었다. 니들은 바쁘냐? 나는 상관없다며 마이웨이를 걷는 한 그녀도 있었다.


저 멀리 서 있는 개만 봐도 질겁하며 방향을 못 잡고 내달리는 두 명의 그녀들은 졸지에 조력인 몸에 붙은 팔 하나씩을 꼬집어 움켜잡으며 매달리곤 했다. 이 나라 개들은 유난히도 더 크고 털이 많다. 조력인도 개와 고양이를 매우 무서워한다는 것을 여러 해 함께 해 온 <별그녀>들은 다 알기에 조력인에게 의지해서 무서움을 덜어 내기보다는 본인들과 같은 사정을 가진 조력인이 본인들에게 가장 진솔된 공감을 함께 한다는 위로를 얻기 위해 조력인에게 덤벼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부족한 우리끼리는 서로 기대기에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이 각양각색의 <별그녀>들에게 그녀들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사무실의 담당선생님이 이번 여행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별그녀>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장전하고 있는 그녀는 2% 부족한 조력인이 유일하게 기대는 언덕이었다.


조력인과 완벽한 그녀와 <별그녀>7명. 이번 여행의 행운의 숫자는 9로 정했다. 밤10시가 다 되도록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던 <별그녀>들은 스린 야시장에서 망고빙수를 첫날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기고 정해진 숙소에서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행 둘째날 <별에서 온 그녀>들은 오늘 내내 하늘 가까이서 햇살을 가르고 구름을 만지는 특별한 경험을 반복했다. 101빌딩의 91층에서 흘러가는 구름에 뺨을 맞으며 서서 까만 밤하늘의 별 노릇을 하고 내려왔다. 홍등에 소망하는 것을 붓으로 가득 써서 철도 위에 올라서서 힘껏 불은 품은 빨간 등을 훨훨 날리며 간절히 빌어도 보았다. <별그녀>들이 오래 함께 가자는 소망도 다른 팀 등에 들어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몇 몇의 그녀들은 마음껏 고양이들과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었다. 사람 외에 살아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를 무서워라 하는 두 명의 그녀들은 조력인과 마을 입구에서 꼬리를 바짝 올려 세우고 텃새부리며 앙탈을 떠는 또 다른 냥이들과 온 몸을 떨며 "보지말자. 보지말자." 주문을 중얼거리며 그들과 대치하며 다른 그녀들이 빨리 하산해 주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자유여행을 준비하다 결국 여행사와 협의해서 가고 싶은 곳들과 먹는 것과 자는 것까지 여행 일정 내용들을 수십 번 문자 등을 통해 오고 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이번 여행을 만들어 냈는데 가고 싶었던 곳이 너무나도 많았나보다. 참으로도 벅찬 여행이 되어 버렸다.


가는 곳마다 난간 없는 돌계단이 왜 그리도 많은지 발목에 힘이 없어 늘 평지서도 후둘 후둘 걸음 느린 몇 몇의 그녀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일로 기록되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그녀들이 걸음을 주춤하며 멈출 때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함께 서서 대기하게 되니 정체로 인한 눈총을 감수하는 것 또한 조력인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계단이 나빴네. 계단은 누구나 다 힘들어! 그쵸?"를 종종 외쳐 절대 그녀 탓이 아님을 대변해 주어야했다.


여러 돌발 상황들을 예측한 조력인은 이번 여행에서 눈에 확 드는 밝은 빨간색 모자티를 연속해서 입고 다녔다. 앞장서 가는 그녀들에게 우리가 잘 따라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신호하기 위해서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조력인의 옷을 그녀들은 쉽게 알아보았다.


안전 바가 없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들은 엄청난 피로를 더해주었다. 다행히도 가는 곳곳마다 차량 이동시간에 간격이 있어 이동 중 쉬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었다. 차량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격한 흔들림이 있었는데 참으로 곤하게 잘도 잤다. 여행 첫째 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모두 잘 인내해 주어서 참으로 감사했다.


첫 날 밤을 함께 잤던 한 팀에 살짝 균열이 간 것이 느껴졌다. 큰 언니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눈에 걸리는 막내가 매사 큰소리 내며 참견하다가 다른 언니들에게까지 오지랖을 펴다가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음이 불편하니 서로 한 공간에서 스스로들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진 찍을 때만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분을 과시했다.


전날과 다르게 팀을 만들어 한방을 쓸 사람을 새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 전날 함께 잠을 잤던 3명의 그녀들에게서 심각한 균열이 생긴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그녀들을 분리하기로 했고 서로 불평 없이 새 팀을 만들게 되었다. 방의 짊을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모두 새로 정한 짝들과 각자의 고단한 몸을 달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조력인과 새 짝이 된 그녀는 씻지도 않고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다. 가장 잠이 없기로 소문난 그녀인데 말이다. 그렇게 균열은 현명하게 봉합되었다.


2019년 11월 26일 드디어 귀국!

그녀들의 방들을 순회하며 짐들은 잘 쌌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좀 일찍 가졌다.

= @@씨 가방에는 선물들까지 다 잘 들어갔겠죠?

= 어디 가방을 얼마나 멋지게 잘 쌌는지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도 좀 보고 따라하게.

- 에이, 왜 그러세요? 하나도 안 빼고 있어요.


잘난 척 뽐내며 가방들을 오픈해 주니 확인이 수월했다. 복잡하게 엉킨 부분들 말고는 대부분 잘 챙겨 넣었다. 인천 도착하면 입게 될 외투만 압축해서 말아주며 가방 입구에 넣도록 알려주니 감탄하며 냉큼 받아 넣고 짐 싸기를 마무리했다.


조식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에 몸을 실었다. 먼저 용산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교회에 다녀." 입으로 말 하면서 몸은 벌써 각종 신들 앞에 공손히 서서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었다.

- 나 취직해야 해요.

- 나 월급 많이 받고 싶어요.

- 남자친구 생겨서 결혼할거예요.

- 가족 건강하게 같이 살게 해주세요.


중정기념관에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한가롭게 인생샷들을 추가했다. 맛있게 기내식을 마치고 한글로 된 여행자 휴대품 신고서를 기록하고 언제 도착 할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눈앞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폰의 유심칩도 요령껏 갈아 끼우고 평안하게 기다림을 가졌다. 출국할 때의 서툴고 당황스러웠던 첫 경험들이 입국하면서 자신감과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이 거창하고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어야한다.

곳곳에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익혀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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