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여가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뿌리내리기




글 : 백미옥 /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인


요즘 내가 조력자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중 특별한 형태로 구성된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이 있어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자조모임의 지원은 장애인부모연대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자조모임은 가장 바람직한 구성이며 자연스럽게 확대되어야 하는 당연한 지역 내 자조모임인 것이다.


이 모임의 좋은 사례가 널리 널리 지역별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램으로 지역명을 밝히는 바이다. 마포구에서는 장애통합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한 민*관 협치 사업으로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2팀 구성했다. 한 팀은 마포구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 한 팀은 마포구 서강동에 거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모임이다.


마포구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의 장애인부모연대 마포지부에서 위탁운영하고 서강동 주민자치회에서 보조조력인을 서강동의 봉사 인력으로 지원한다. 참으로 복잡한 구조이지만 지역 내에 거주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존재감을 알리고 발달장애인의 인식을 바로 잡고 자연스럽게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당연한 모임으로 소개되고 있다.


서강동 주민자치회에서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매회 열심히 인력지원을 하고 있다. 올 해 잘 홍보되어야 주민자치회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다음 해에도 구에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지원해야 한다고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으니 지역에서의 예산 확보는커녕 자조모임에 대한 존재감마저 드러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이 모임의 존재를 알아주기만 한 것도 감사해야하는 지경이라 씁쓸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종종 모임 중에 연출되기도 한다.


지역을 자랑할 새로운 사업의 홍보로 이용되는 느낌이 들거나 이런저런 요구들이 제세될 때마다 자조모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나는 자치회 위원으로 초대된 운영회의, 운영위원들이 모인 단체톡방에서 계속 부르짖고 있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발달장애인의 권리입니다.”


회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모든 활동의 주체는 회원들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장해야 할만큼 이 구성이 매우 불편하지만 앞으로 제대로 전개되어 대한민국 모든 지역에서 구성될 모임들의 모델이 되기 위해 꾹 참고 웬만한 요구는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활동 중 어색하게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하는 것, 중간중간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영수증과 그 영수증의 물품을 일일이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 익숙하지 않은 활동이라 어색하고 불편하다. 사실 몇 번 이것을 챙기지 못해 담당자에게 민폐를 끼치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나의 임무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로서 바른 모델이 되기 위해 지원 조력인들을 의식하며 모임의 회원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동네 지리를 잘 아는 이 지원 조력인들은 갈림길을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회원들에게 선택을 묻고 그 답을 기다려 주는 나의 모습을 매우 답답해 했고, 발달장애인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내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때 “거기는 이 길로 가는 게 빨라, 거기는 이 길로 가야 해!”하며 회원들의 답을 방해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정보 삼아 다시 회원들에게 그에 대한 설명을 첨가하고 동의를 구하곤 했다.


한 명 한 명 회원마다 말의 뜻을 이해하는데 다름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나의 행동을 통해 알아주기를 바라며 그분들과 회원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중개해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각자 선호하는 차량칸이 있을지 몰라 어느 칸에서 타는 게 편하고 안전할지를 물을 때, 곳곳마다 멈춰서서 화장실에 함께 갈 사람을 외칠 때, 계단으로 갈지 에스컬레이터를 탈지를 물을 때,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을지 안 찍을지를 물을 때까지 나는 꼼꼼하게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활동의 초반에 지원 조력인들은 매번 의아해 하더니 점차 익숙해지는지 최근 모임 때는 함께 멈춰 서서 기다려 주는 여유를 갖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는 열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발달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면전에서 불편을 주는 표정 짓기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다.


지역의 유지나 지역활동이 활발한 터줏대감 동네 아줌마들과 동행하니 회원들의 당당함이 더 커지는 듯하니 참으로 보기 좋은 면도 있다. 그간 알지 못했던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더 많이 익숙해지는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 같아 매우 보기가 좋다. “누구씨!” 라고 부르는 나와 달리 “누구야! 누구야!” 하는 부름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니 회원들의 대답하는 목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어쩔 수 없이 부르는 “선생님!” 보다 “계란집 아줌마!, 몇 동 아줌마!, 라고 부르는 회원들의 목소리에는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힘이 실려 있었다. “너 걔 아니?, 너랑 친구 아니니?” 등 이웃집 또래들에 대해 공유하면서 오고 가는 대화나 “음료수는 그 집이 더 싸, 요 앞에 돈가스집 새로 생겼어. 나중에 엄마랑 와서 먹어 봐.” 라는 정보들을 경청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신선하다.


매번 모임 때마다 지원 조력인들이 바뀌는 것 역시 많은 지역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되고 지역주민들은 한 동네에 사는 발달장애인을 알 수 있게 되어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원인력이 자주 바뀌면 회원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도 했지만 괜한 기후였다. 회원들을 보니 오히려 이번에 짝이 될 이웃집 아줌마는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듯 기대에 차서 함께 활동할 아줌마를 스스럼없이 선택하고 있다.


‘당사자들에게 조력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라는 이론으로만 알던 자조모임 조력자의 자격에 해당하는 실제 모습인 것이다.


지역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자조모임이지만 방향성을 잃지 않고 현장에서 바른 모델을 제시하면서 조용히 실천하면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지역의 모든 주민들이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으로 든든한 옹호인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이웃이 발달장애인의 옹호인 되는 그 날까지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계속 만들어지고 이웃과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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