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과 언어


말과 글보다 의사소통이 먼저다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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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1 21:36


초등학교 2학년인 가람이(가명)는 내가 가르쳤던 9세의 자폐아다. 지적 장애도 심한 편이어서 지능검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발화나 조음도 아직 불가능했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에도 어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몸을 흔들어 대는 상동행동도 빈번하게 보이는 아이였다.


가람이는 글자를 읽거나 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그리는 것'은 가능했다. 부모님은 이름을 썼다고 하시지만 글자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쓴 것은 '쓴 것'이 아니라 '그린 것'일 뿐이다.


이런 장애 특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처음 맡아보는 젊은 특수교사들은 간혹 "할 줄 아는 게 없는" 혹은 "되는 게 거의 없는" 아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없다.


가람이는 눈맞춤은 안되었지만, 교실 안에 누군가 들어오면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줄 안다. 어른들을 정확히 그 역할대로 잘 구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엄마와 선생님과 친구들을 구별한다. 친구들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고 상호작용도 잘 안하지만, 엄마나 선생님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손을 잡아끌거나 그 물건을 가리키며 요구를 표현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텐트럼(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구르면서 과격하게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행동)을 보일 수도 있었다. 가람이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좀 더 다양한 의사소통의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몸짓이나 제스처로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는 학기초부터 이러한 원초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을 훈련시키기 위한 방법과 절차들을 계획해 한 가지씩 시도해 나갔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모와의 협력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가람이 같은 아이들에게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사소통의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표현 방법을 계속 시도하고 배우는 일이다.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간식을 먹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등등의 모든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요구와 같은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타인에게 이해가능한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아직 어린 발달장애아의 의사소통 능력의 향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엄마일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해야 한다. 말이나 글자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에 맞게 자신이 현재 사용가능한 표현수단을 사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법을 습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교수자는 부모이고 교사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매순간 자신의 아이인 그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부모이고, 매일매일 변화를 꾸준하게 살피는 것도 부모가 가장 잘 할 수 있다. 그것을 토대로 교사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면 그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가람이 엄마의 관심은 전통적인 의미의 '공부'에만 쏠려 있었다. 특히, 가람이 엄마가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로 '한글을 읽거나 쓰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글자를 읽거나 쓰는 '공부'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셨을 테지만, 지금 가람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다. 언어발달이나 의사소통 기능의 발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닌 가람이 엄마로서는 이런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가람이에게 필요한 학습의 '우선 순위'에 있어 나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엄마는 의사소통 같은 것은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은 학교가 아닌 소위 ‘언어치료’를 실시하는 기관이나 언어치료사로부터 배워야 할 기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수교사가 해야 할 일 중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할 일은 다름아닌 부모와의 상담이다. 특히, 아이에게 필요한 것, 가르쳐야 할 것에 대한 목표가 부모와 다를 경우, 특수교사는 어떻게 해서든 이 부분의 간극을 줄여야 할 터인데 부모의 요구나 방향성이 교사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일 경우 부모와 교사 양측 다 스트레스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러한 불일치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황을 답답해하면서 가람이 엄마를 설득해 나가야 했다. 하지만,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은 중증의 발달장애아의 부모에게는 ‘학습을 포기’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의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본능적인 바램이고 그것이 글자를 배워 읽고 쓸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지길 원하거나 더 나은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부모로서는 너무 당연한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집이나 학교 밖에서 엄마가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타인과의 상호작용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시기를 바란다는 정도 이상의 요구는 하지 못했다. 가람이 엄마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어쨌든, 학교 안에서 나의 의사소통 훈련은 계속 진행해 나갔다. 1학기가 끝날 즈음에 가람이는 거부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텐트럼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손으로 상대방을 밀치는 정도의 부드러운 거부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거부하는 것을 계속 강요하면 텐트럼을 종종 보이기는 하였다. 그것은 좌절이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분노를 조절하는 훈련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자신의 요구나 거부의 의사를 조금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손톱처럼 자라며 한 학기가 지났고 여름 방학이 지나갔다. 2학기가 되어서 가람이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가람이가 텐트럼을 보이는 빈도가 1학기에 비해 갑자기 급증했다. 한 달 반의 방학기간동안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간 걸까, 내가 지도했던 ‘거부의사 적절히 표현하기’ 훈련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걸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날 답답하게 했다. 그런데 2주 정도 후에 나는 가람이가 짜증을 내는 상황이 1학기 때와 달리 한 가지 더 추가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가람이에게 공책이나 스케치북 같은 것을 주고, 색연필을 들고 선을 따라 그리기나 색칠하기 같은 활동을 시킬 때는 어김없이 짜증을 폭발시켰다. 1학기 때는 그렇게 과격하게 반응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한 달 후. 2학기 부모 상담 시간에 엄마를 만나이야기를 나누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방학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여쭤보니,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매일 오전에는 조기교육실에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 이름 말고 가족들 이름까지 쓸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게 방학 때 가람이가 쓰기 공부를 한 공책과 학습지들을 보여주었다. 공책 3권 정도의 분량을 반복해서 가족이름 쓰기 연습을 한 결과물들이었다. 가람이가 공책이나 필기도구와 선 따라그리기 학습지를 거부하며 텐트럼을 보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기 가족의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다한들, 지금 가람이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얼마나 있을까? 그 이름들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서 그것을 써먹기 위해서 아니었던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아빠 이름, 혹은 엄마 이름을 써서 보여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그 이름을 쓸 수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장애가 없는 아이들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무의미한 학습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되고, 공부가 싫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시간동안 어떤 선생님이 어떻게 그 글씨쓰기를 지도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학습활동 자체에 아무런 의미를 느낄 수 없었던 가람이는 부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여름을 보냈던 것이다.


난 가람이 어머님께 말했다. "이제 가족 이름은 다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나 아빠의 전화번호를 쓸 수 있도록 공부시키세요, 그리고 나서 꼭 엄마 아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언제 누구에게 써먹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가람이가 혼자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 가람이에게 물어보면 말로는 답을 못해도 글자를 써서라도 엄마나 아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쓸 수 있게 훈련시키세요. 어쩌면 글자를 익히는 것보다 이걸 가르치는 게 훨씬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까지 가르치시지 못하면, 방학내내 가르치신 것들은 모두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꼭 거기까지 할 수 있도록 가르치세요. 저도 학교에서 함께 가르칠께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가람이와 함께 평생을 보내셔야 할 어머님께 이 이상의 말씀은 드릴 수가 없었다.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김성남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나사렛대학교 재활자립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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