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행동


[행동지원 컨설팅] 어려운 행동은 퇴행일까?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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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6 17:21



어려운 행동은 퇴행일까?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 행동지원 컨설턴트)



성인이 된 발달장애자녀의 어려운 행동으로 고민하고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대중교통을 좋아했고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버스와 지하철을 혼자 이용해왔다. 발달장애 자녀가 독립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부모에게 크나큰 ‘축복’이라고 여겨진다. 단순히 이동을 위해 부모나 활동지원사가 곁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활동의 반경이 커지면서 관심사도 넓어지고 그만큼 심리적 여유도 갖게 된다.


어렸을 때에는 이런 ‘복 받은’ 상황이었던 어머니의 최근 고민은, 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워했고, 출근시간 지하철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이고(실은 누구나 그렇지만), 출퇴근을 위해 버스를 탔어도 사람들이 많아 혼잡하면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어려워하는 점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마음 다잡고 조정해나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의논하였다. 그런 대화 중에 어머님은 많이 속상해하셨고 이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셨다.


“선생님, 00이가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혼자 버스도 잘 타고 지하철도 잘 탔어요. 혼자 등하교도 잘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버스를 탈 때 저나 활동지원사가 옆에 꼭 있어야 해요. 아들과 같이 다닐 때 누군가와 시비가 붙을까봐 심장이 두근거릴 지경이예요.


예전에는 없던 공격행동을 보이다니.... 얘는 퇴행한 거 같아요.”


어렸을 때는 혼자 잘 다니던 발달장애인이 이제는 혼자 ‘놔두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행동을 보이는 점을 어머니는 퇴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어머님과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은 맞지만, 그 공감에만 머무르는 것이 내 업무는 아니다. 당연히 그 어려운 행동이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어머니, 퇴행이라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00씨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어려운 행동을 보여서 불안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00씨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시기를 바래요. 


00씨가 혼잡한 버스나 지하철을 무척 싫어한다고 하셨죠? 혼잡한 버스에서 불편함을 꾹 참는 것도 적응이지만, 불편함을 공격적인 행동으로 해소하려는 것도 적극적인 적응의 일환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00씨가 버스에서 보이는 공격적인 모습은 퇴행이 아니라 그 반대로, 아주 많이 발전하고 나름의 요령을 고안해낸 모습이지요. 00씨가 그 정도로 애쓰고 있다는 점을 우선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00씨가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설 때 굳이 버스 한 대를 보낸 후에 줄의 맨 앞자리에 서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 모습을 ‘왜 방금 온 버스를 타지 않고 굳이 새로 줄을 서려고 하는 걸까? 답답하게...’ 라고 바라보기 보다는 00씨가 터득한 삶의 지혜라고 바라봐주시면 좋겠어요.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던 똘똘했던 그 아드님은 지금도 여전히 있는 거죠.”


00씨의 공격행동보다는 00씨가 복잡한 공간에 적응해보려고 애쓰던 모습에 더 주목하자는 이야기를 어머님과 나누었다. 버스에서의 공격행동에 주목하면 중재의 방향은 ‘어떻게 하면 공격하려는 마음을 누그러뜨릴까?’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불편한 상황을 적응하려던 의도에 주목보면 중재의 방향은 ‘어떻게 하면 불편한 상황을 요령있게 피하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게 된다. 


어려운 행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중재의 방향이 달라지게 되면, 어려운 행동은 그저 하지 말아야 될 금지행동이나 부적응행동이 아니라, 실은 요령있는 적응행동으로 보이게 될 것이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꾹 참아야 하는 행동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되려 당사자에게 그 지혜를 배워야 하는 적극적인 적응의 표현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퇴행?

당연히 어려운 행동은 퇴행이 아니라 가장 세련된 형태의 적응이라고 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발달장애인의 어려운 행동을 통해 우리 모두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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