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성인기 전환과 가족

이경아님

0

7671

2017.10.17 06:42




저는 오늘, 2006년 추계학술대회에서 사용한 것과 동일한 인사말로 여러분께 첫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경아라고 합니다. 긴장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당시 제가 맡은 주제는 “이웃과 함께 하는 발달장애인 가정의 정상화”였습니다. 막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부모의 눈’ 이외에 ‘연구자의 눈’으로 현상을 보려고 애쓰던 때라 장애부모로서의 첫 ‘커밍아웃’이라고 할 만한 그 자리가 참 부담스러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동안 저와 제 가족이 살아온 날들을 담담히 풀어내는 일도 어려웠지만, 가족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꿈, 좋은 이웃들과 함께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는 일이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소망을 말하는 지금이, 앞으로 어느 시기에 돌아보면 어떻게 보일지 미리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루어지지 않은 쓸쓸한 꿈이 되어 있을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 염려를 애써 떨치며 “좋은 일이 분명히 생길거예요! 그렇게 믿습니다.”라고 웃어보이는 일은 용기가 참 많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덜덜 떨며 지역사회 중심의 정상화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는 중에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 조금 더 명확히 보였고, 제가 이미 얻은 것들을 확증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저는 대학 강의를 하고 장애인 부모로서의 공식 직함을 맡고 현장에서는 장애가족 상담자가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새로운 시작이 되어 준 “도전적” 아이 승기는 이제 성인입니다. 특수학급이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복지관대학에서 2년째 성인기 평생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큰 아이도 남편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삽니다. 그간의 세월이 수월하였던 건 아닙니다만 지나고 돌아보니 힘든 기억은 다 잊히고 잘 살아낸 것만 같습니다. 2006년에 소망한 일들은 그만큼, 그것 이상으로 아름답게 이루어졌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 제가 나누어야 할 말씀은 자폐성장애인의 성인기 전환과 가족의 삶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번엔 제 아이의 성인기 전환 과정에서 겪은 고민과 제가 만난 이웃들의 성인기 전환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그동안 쌓아두었던 많은  ‘불만들’과 ‘숙제’를 여러분께 나누고 싶습니다. 무거운 이야기이지만 무겁지 않게 전하는 것이 오늘의 바람입니다.


 Ⅰ. 전환계획, 실제인가요?


  전환(transition)은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옮겨간다는 의미입니다. 특수교육에서는 학령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에 주로 쓰이는 용어가 되어 있습니다. 초기의 전환은 “학교에서 직장생활로의 교량(bridges from school to working life)”으로서의 역할, 즉 고용을 강조하였지만(Will, 1984), 이후에는 고용 외에 성공적인 지역사회 적응을 위한 주거환경의 질과 사회적∙ 개인적 네트워크의 적합성 차원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Halpern, 1985). 현재 미국에서의 전환교육은 학교생활에서 사회생활로 옮아가는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해 장애아동이 미래에 성취해야하는 교육결과를 촛점으로 계획하여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2004년에 개정된 장애인 교육법(IDEIA) 에서는 16세 때부터 전환교육계획을 세워 의무적으로 교육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서비스 기관 간의 협력체제를 수립해야 하고 대학교육, 직업교육, 취업 (지원고용 포함), 평생교육, 성인서비스, 자립생활, 지역사회활동에 참여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계획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덧붙여서 전환교육을 계획할 때는 학생 개개인의 욕구나 기호, 취미를 반드시 반영해야 하며 여러 기관과 부모의 협력체계 하에 교육, 지역사회 경험, 취업계획과 졸업 후 삶의 목표 정하기 등의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는 장애인의 일상생활기능과 직업기능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국법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전환교육의 정의를 요약하면


(1) 교육결과 중심 교육,
(2) 개인과 가족의 욕구와 기호의 반영,
(3) 기관간의 협력체계 확립
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재학 중일 때에는 장애에 관련된 모든 서비스가 학교를 통해 제공이 되지만 졸업을 하고 나면 모든 장애관련 서비스들이 각 정부부처와 지역사회 사회복지 서비스로 나누어져 제공되기 때문에 부모와 가족이 장애인을 위해 일일이 다 찾아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서비스가 어디서 제공되는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성인의 경우 서비스를 받는 것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동이 재학 중일 때 16세부터 시작하여 22세가 되어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6년 동안 성인서비스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전환교육계획의 목표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 전환, 전환계획, 전환계획교육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중학교 때부터 전환교육 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과연 ‘실제’인가요? 정말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중학교 1~2학년 때의 승기는 행동문제가 워낙 커서 학교를 오가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였습니다. 중 3학년부터 조금 가라앉기는 했습니다만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즈음까지도 친구들이 놀리거나 무시하는 왕따 문제, 다른 애들을 승기가 분풀이를 하는 행동문제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렇게 쫓고 쫓기는 악순환 끝에 승기가 과연 어떻게 될까 갑자기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많이 지쳤던 모양입니다.

“승기는 대학을 가기엔 부족합니다. 저희는 보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요즘 행동문제가 많아져서 더 걱정이 됩니다만, 일단 앞으로라도 승기가 준비할 수 있는 진로계획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방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정보를 공유해주시겠어요? 승기가 학교 졸업 후에 전공과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저는 특수교사분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도 따로 연락이 없으시더군요. 그 즈음엔 급한 마음과 화가 좀 가라앉았는지 괜히 맘 약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캐묻는 것을 포기하고 “승기는 성인이 되면 함께 지내기로 한 공동체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계획이예요.”라고 제가 준비하는 방향을 말씀드렸었죠. 그제서야 “아! 그러시군요. 좋은 방향이네요. 다행입니다^^”라는 답문자가 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계획은 승기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 어느 정도 자조기술을 익히고 독립생활이 가능할 즈음,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집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쯤 이루고 싶은 먼 미래계획일 따름이었습니다. 당장은 아득하고 뿌연 안개일 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준비해준 ‘전환교육’은 뾰족한 저에게는 그저 전시용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가끔 교육지원청의 특수교육센터나 연계된 지역의 직업훈련기관에서 빵을 만들어오거나 비누를 만들어오거나 커피를 가져오더군요. (관심 없는 승기를 대신해서 누가 그 물건들을 만들어주었는지는 가끔 궁금했습니다.) 또는 직업체험관으로 견학을 간다는 안내를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승기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성인기로의 전환-자립생활과 독립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된 것 같지도 않았구요.
저는 그 즈음부터 열람이 가능한 자료를 열심히 찾아보며 한국의 성인기 전환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직업전환에 관련된 원칙적인 내용은 1990년대부터 안내되어 왔고 1997년에는 『경도장애학생 전환교육의 실제 Ⅰ-초∙중학부』라는 자료가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단지 일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발달장애인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래의 <표 1> 자료는 2013년에 어느 지역교육청에서 만들어진 진로∙직업 운영계획입니다. 2010년 이후부터 발달장애인의 진로∙직업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는데, 여러 가지 제안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교육과정 운영 유연성을 통한 진로∙ 직업교육 활성화, 학교기업의 운영, 통합형 거점학교 운영, 전공과, 그리고 연계고용을 통한 ‘희망일자리’ 창출. 정책과제의 추진내용에는 당시에 제안되던 모든 전환 정책이 다 들어있습니다. 저는 자료검색을 통해서 진로 직업 정책들의 내용을 확인하였고,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발달장애인의 구직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제안들이 실제로 잘 실행되고 있는지 좀 의심쩍었습니다. 더구나 그 중 어느 것도 승기에게는 당장 적합한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취업의 기준에 맞추기에는 승기의 행동문제와 의사소통 어려움이 퍽 ‘중증 장애’적인 어려움이었던 것입니다. 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승기가 아직 어른이 될 어떠한 동기나 욕구도 가지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인 제가 누구와 의논하며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승기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일까요? 혼자서는 속옷 갈아입기, 머리감기조차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입니다.

(<표1>은 첨부파일에서만 보입니다)


Ⅱ. 전환, 개별화된 접근인가요?


결국 저는 승기의 자폐성장애로서의 특성이 독립을 먼 목표로 만들고 직업적인 면, 나아가 성인으로서의 삶에서 ‘중증장애’로 분류될 수도 있겠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제가 원하지 않던 지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강제적인?) 수용’은 제게 꽤 낯익은 것이었습니다. 32개월에 처음 접한 아이의 장애가 그러했고, 치료교육과 초등 입학과 관련한 과정이 그러했고, 학습을 점차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것, 자라며 또래들이 점점 승기에게 무관심해지거나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그러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며 겪게 된 크고 작은 행동문제들에 대해 의사소통적 측면, 아이의 도움 청함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장애특성’으로 치부해버리는 무심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 역시 제게는 퍽 낯익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모교육을 갈 때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묻곤 합니다. “지내기 어떠십니까? 점점 나아진다고 느끼시나요?” 대답은 침울하거나 씁쓸한 고개짓으로 돌아옵니다. “갈수록 힘들어요. 이젠 버틸 힘도 없고, 남은 희망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고...” 그 부모들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로 그들의 자녀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그들보다는 내 형편이 낫지 않은가!’라는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처지는 참으로 막막하고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따라갔다가 어느 막힌 골짜기에서 울고 있는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분명히 저의 반응이 대단히 감정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특수교사와 관련된 사회복지사들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고려한 개별화전환계획(ITP)을 안내해주었더라면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환, 실질적이고 개별화된 접근으로 안내되고 있습니까?
자폐성장애인들의 기능과 적응수준은 스펙트럼적이어서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들은 일반기업에서 일반이나 지원고용이 가능하겠으나 또 다른 이들은 현재의 체계 안에서는 보호적 측면을 벗어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개별화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환교육의 내용은 단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자기 결정 → 한 개임이 목표 지향적, 자기 규제적, 자율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지식, 신념의 조합(Wehmeyer 등)
② 생태적 접근 → 장애인이 장차 사회에서 살아가는 직업, 주거, 사회생활, 여가 등의 제 측면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교육과정이 개발되어야 한다.
③ 개별화된 계획 → ITP와 IEP를 별도의 것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IEP안에 ITP의 요소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야 한다.
④ 지역사회 경험 → 교실 안에서의 교정프로그램이나 교과지도 보다는 지역사회에 기초한 접근이 강조되어야 한다.
⑤ 서비스 조정 → 특히 학교와 기관(사업체)간의 연계는 지역사회 자원의 활용, 고용이나 실습을 위한 기회 제공, 시설의 활용 등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⑥ 가족 참여 → 특수학교와 가족은 모두 장애학생의 교육과 재활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이다. 이를 위해 부모교육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⑦ 학교와 사업체 협력 → 진로계획 / 직종 개발 / 직업의 적합성 비교 분석 / 지원 계획 및 직업 조정 / 배치 / 계속적인 지원 전략 / 종결


Ⅲ. 전환, 가족과 함께 논의되고 있나요?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하반기에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나이가 들어도 내 아이가 덜 자라고 미숙한 부분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근원적인 면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전환에서의 어려움은 아이가 스스로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동기도 적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부모는 조바심이 생기고, 낭패감이 들기 쉽습니다. 세상의 어떤 도움도 ‘부족한’ 도움으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때 새삼 깨달은 것은 미래를 위해 준비해가기 위해 동참했던 ‘기쁨터http://www.joyplace.org/ ’가 저희 가족에게 무엇보다도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다른 형편과 능력일지라도 모든 가족이 각자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서로 알고 지지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고립과 실망감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혼자서 막막한 미래를 고민할, 혹은 고민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상황에 부딪힌 가족들이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2017년 9월을 기준으로 발달장애인이 성인이 되어 이용할 수 있는 유형은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능수준이 낮으면 결국 갈 곳은 장애인 거주시설밖에 없는 것인가요? 인지와 기능이 좋으면 대학에 다니는 아스퍼거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순조롭게 취업을 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혼자 해갈 수 있나요? 행동조절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는 어떠합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제가 알고 있는 자폐성장애인 자녀를 둔 가족을 떠올려봅니다. 그 가족들은 모두 어느 수준이던지 당사자인 자폐성장애인들이 머물 선택지에 대해 충분히 소개받지 못하였고 안심되는 선택지를 찾았다고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과정에 필요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하고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체계가 잘 갖추어졌다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에게 안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환 자료들이 발간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증진을 위한 부모교육 매뉴얼』(2013)은 보건복지부에서 제작되었고 특수교육 대상학생을 위한 학교 진로상담(지도) 운영매뉴얼』(2016)은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나왔습니다. 『장애학생 부모양육지원 가이드북』이 작년 영유아기 출발을 시작으로 학령기, 청소년기, 그리고 내년에는 성인기까지 이어지며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제작될 예정입니다.
다양한 자료가 제작되고 있으나 현장의 체감온도, 인식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입니다. 얼마전  “혜정 씨가 전기밥솥으로 밥을 할 수 있습니까? [어른이 되면 V-log 6화]”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Nx9VhDCTU


언니 한 사람이 거주시설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던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지역에서 살아가는 내용입니다. 6화에서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한 인정 조사과정의 인터뷰 질문이 그대로 담겨 일방적 질문들의 불합리함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혜정씨의 언니는 반문합니다. “과연 이러한 질문들이 혜정이가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받아야 할 도움들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갈등이 왜 새롭고 강렬하게 부각되는 것일까요? 가족은 늘 의문을 가지고 개선을 요구하던 지점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형식적인 요식행위로만 얼버무려지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풀리지 않은 숙제’로 치부되었던 것 같습니다.


원칙적인 내용은 누구나 동의합니다. 보호에 머무는 개인이 없도록, 사회에 보다 적응할 수 있는 평생교육, 문화여가 지원이 참여적인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의 강점, 고유한 가능성을 반영하여 그가 원하고 만족할 수 있는 유형으로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모두가 다 애쓰고, 모두가 다 낭패감과 실패감을 얻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가족과 당사자가 함께 참여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불편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요구가 다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과연 당사자와 가족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가고자한 방향을 지향하기 위해서 어떤 출발점이 가능할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좋은 것’을 제공해주는 것은 우리에게는 절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대화’를 통하여 순조롭고 가능한 대안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제시했던 개별화지원 계획의 원칙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승기가 고등학교까지 무얼 배우고 있었는지 이전에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승기에게 가장 적절할만한 복지관대학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잡고 나서 한해 한해 지날수록 지금까지 누적된 교육의 힘과 체계적 시스템의 힘을 깨닫고 있습니다.


(1) 교육결과 중심 교육-지금의 전환기 교육은 승기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과 연계되었고, 그가 배우고 있음에 대해 사전-사후 평가가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 개인과 가족의 욕구와 기호의 반영-입학의 과정에서 부모면담과 개인관찰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당사자가 하고 싶은 일, 선호하는 일, 부모와 가족이 관심을 두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진로와 직업이 안내되고 있습니다.

(3) 기관간의 협력체계 확립-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선택지를 일방적으로 강요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후에 진로와 주거 모델에 대해 알맞은 연착륙이 이루어지도록 승기의 성인기에 관련된 기관들이 연계하여 정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 의젓해지고 어른스러워지고 있는 승기. 앞으로 어떤 성장이 이루어질지 참 많이 기대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가족들과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취업을 하였고 어떤 친구는 대학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이는 평생교육을 하는 복지관대학을 다니고 누구는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에 다닙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경우도 있고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봅니다.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각자 포부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의 존엄을 지켜주고 성인으로서의 삶을 존중해줄 때, 모두는 이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고 저희가 기대했던 모습보다 더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가더군요. 제가 만난 친구들과 그 가족의 용기가 저의 삶도 많이 지켜주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라고 성인이 되는 친구들에게선 공통된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보낼 때, 그 두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온전하게 아쉬워하고 아파하며 주변에게 함께 나누고 지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친구들을 자라도록 하였던 것은 자신이 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과정 중에도 바로 서 보려고 노력하던 스스로의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 해준 가족과 이웃의 함께 서기였습니다. 성인기로의 전환을 잘 견뎌갈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지지해주셨으면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그래,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 나와 당신의 흔들림은 지극히 당연한 '어른 되기'의 여정이기에"(p. 57.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 저 )


(2017년 추계자폐학회 발표자료입니다)

이경아(부모/특수교육박사/청소년상담사)




twitter facebook googl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