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경직된 교육 vs. 생생한 지원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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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22:26




김성남 박사님이 기고한 ‘발달장애인에게 지원이란’ 글에서 현재 특수교육 및 재활복지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는 ‘지원’이 실은 교육이나 훈련 및 재활에 치중되어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즉 타 장애에 배려되는 지원이나 편의제공과 같은 사회적 배려가 발달장애인에게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이들의 다양한 능력과 잠재력을 지원하기보다는 기능을 가르치고 습득시켜야 하는 교육의 대상, 열등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수준을 면밀히 파악하여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생생한 지원을 계획하기보다는 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소극적 주체로 전락시켜 경직된 교육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아니, 발달장애 전문가들조차도 이들의 장점을 삶과 환경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지원을 창의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기보다는 우리가 미리 만들어놓은 교육의 순서와 틀을 고수해야 한다는 딱딱한 생각에 갇혀버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발달장애학생이 있습니다. 이 학생에게 동네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오는 활동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불행히도(!) 이 학생은 구어를 하지 못합니다. 먹고 싶은 메뉴를 사진으로 짚을 수는 있지만 카운터에는 그런 메뉴판이 비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지가 낮은 탓에 돈 계산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1+1=2’ 의 수식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학생이 햄버거 세트와 치킨너겟 8조각을 주문하고 합계를 구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테이크아웃은 또 어찌 해야 할까요?


기존의 교육과정, 또는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가’의 접근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이 학생에게 햄버거 주문하는 법, 돈 계산하고 거스름돈 받는 법을 가르쳐야 할테지요. 워낙 햄버거를 좋아하는 친구이니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는 일 정도는 쉽게 터득한다고 하더라도 주문하고 돈계산하는 법만 가르치자고 작정해도 교육목표를 달성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명시된 화폐단위 익히고 계산하기의 학습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배우지 못하였으니 이 기능을 습득할 수 없었을테고 이 학생은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먹을 수 없어야 할테지만, 사실 이 학생은 잘사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1) 빨리 포기했습니다.


교육기관에서 설정한 학습의 목표로 설정된 모든 내용을, 모든 발달장애학생들이 다 성취할 수도 없을뿐더러 성취할 필요도 없음을 빨리 인정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의 수셈도 어려운 이 학생에게 다섯 개 단위로 묶이고 열 개 단위로 상승하는 화폐단위를 익히기란 평생을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했지요. 그리고 사실, 물건을 구매하는 활동을 위해 돈계산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굳은 화석같은 생각인지 생각해 보세요. 물건값을 계산하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점원이고 계산기입니다. 


2) 길고 크게 봤습니다.


대신 이 학습목표가 궁극적으로 향하고 있는 사회기술이 무엇인지에 주목했습니다. 돈 내고 햄버거 사먹기. 즉, 가격을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돈과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익히면 되는 것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메뉴가 무엇인지를 전달하고, 햄버거가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어 도와드리면 되는 낯설지 않은 손님이 되는 것,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길고 크게’라는 의미는 곧 지역사회에서 환영받는 법을 익힌다는 의미였습니다. 동네가게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평생을 가도 다 배우지 못할 돈계산을 의미없이 배우기보다는, 이 학생이 지역주민들의 배려와 환경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지원의 양과 질을 고민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과제들을 모두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제들을 단순하게 “도와줘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로 퉁치는 것 역시 해결책은 아닙니다. 어떤 과제는 사람이 직접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있고, 어떤 과제는 장치의 지원만 있으면 해결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김성남 박사님의 기고글에는 아래와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하는 매우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입구의 경사로와 휄체어가 이동하고 자리잡을 정도의 공간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글을 읽을 수 없고 말로 대화를 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는 사진이 함께 표시된 메뉴판과 결제를 위한 카드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이 발달장애학생의 경우, 햄버거가게에 사진메뉴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장치의 지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와퍼세트 1개, 치킨너겟 10조각, 포장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적힌 메모지를 건네주어 주문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재를 위해서는 사람의 지원을 택했습니다. 돈계산은 할 수 없는 대신 돈과 물건을 교환할 줄은 알고 있으니 ‘넉넉한 금액’의 현찰을 (돈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준비해 주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야무지게 거스름돈을 계산하여 챙기는 것은 이 학생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점원(과 계산기)의 도움을 받아 문제없이 해결되었습니다.


이 발달장애학생의 햄버거 사오기 과제를 위해서 지원에 대한 유연한 사고 대신 딱딱한 가르치기만을 고집했더라면 아마 이 미션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기능과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일은 발달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애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구호나 문구만으로는 구현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겐 그 구호가 실제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구현되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장애는 틀리거나 그릇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선언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탄력적으로 고안된 지원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보면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 대상일 뿐이지만 생생한 지원을 받는 주체로 발달장애인을 바라봐 준다면 이들이 보여줄 무지개빛 능력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정유진 :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행동분석가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 이 글은 <함께 웃는 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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