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발달장애 지원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다.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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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13:42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지난 3월 제주의 발달장애 모자 동반자살에 이어, 6월 또 다시 광주에서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2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방지로 학교와 복지시설 등이 전면 휴업되면서 돌봄은 가정에 전적으로 맡겨졌고, 상황에 대한 인지력의 부족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은 중단된 일상에 부적응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강박적 취약성을 가진 일부 발달장애인들은 아침에 학교에 가고 오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에 가족과 식사를 하는 일상 뿐 아니라, 정확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정해진 옷과 가방을 착용하고, 특정한 장소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활동하는 순서들을 지켜야만 안정감을 느끼고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언제까지 변경되는지 알 수도 없이, 그저 막연히 바뀌어버린 일상은 그 자체가 불안과 공포로 느껴져 심각한 정서문제를 일으키고, 종일 곁에 있는 가족들은 녹초가 된다.


그나마 부모 외에 건강한 조부모나 활동지원인이 시간을 나누어줄 수 있다면, 사이사이의 쉼을 통해 다시 자녀의 행동을 중재할 에너지를 얻고, 서로 간 협의를 통해 개선방법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이렇게 협업이 가능한 가족들은 거의 드물다. 대부분 부모 중 한 명은 외벌이로 종일 바쁘고, 가족이 해체되어 혼자서 벌이와 양육을 동시에 맡거나 연로한 조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 와중에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장애자녀와 24시간을 지내게 되면,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보다 젊기도 하고, 힘든 양육 후엔 점점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기에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부모는 점점 늙고 약해지는데, 평생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덩치 큰 성인 자녀를 보노라면 절망이 엄습한다. 이것은 모든 발달장애 부모들의 공통된 두려움이다. 경제력이나 인격, 자녀에 대한 애정 정도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닥치는 엄연한 미래다.


그래서, 부모들은 연대하고 합심하여 한 목소리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외친다. 이에 관한 여러 가지 정책 제안들이 있으나, 간단히 요약하면 낮에 바깥에서 활동하고 밤에 내 집에서 자게 해달라는 것, 즉 단지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것일 뿐이다. 


낮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생교육과 여가활동을 하고, 장애의 경중이 어떠하든 간에 단순한 노동부터 재능발휘까지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직업을 가지고, 밤에는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내가 원하는 사람과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작은 집에서 지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를 지어달라거나, 집을 지어달라거나, 병원을 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특수학교나 거주시설이나 입원병동을 해체하고,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온 동네에 널린 아파트와 빌라와 주택 어디라도 이사 가서 살고, 내 집 가까운 병원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마트 문화센터에서 줌바댄스를 배우고,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가고, 불타는 금요일엔 친구와 호프에 가고, 주말에는 연인과 공원 데이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누구나 다 누리는 평범한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 뿐이다. 이 당연한 권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우리의 갇힌 상상력; 안전과 보호, 치료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발달장애인을 분리해온 비장애 사회의 습관적 시각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인권에 필요한 열쇠는 단 하나다. 의사소통 지원 인력, 이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낮시간 일상에선 활동지원인, 직장에선 근로지원인, 집에서는 자립지원인, 24시간 세 가지 인력지원만 보장되면, 부모가 없어도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시행착오의 권리와 성장을 경험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물론, 지원인력들의 장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중재기술 능력은 계속 검증 보강되어야 하며, 촘촘한 모니터 체계로 안전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인력이 교체되더라도 부적응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인정보플랫폼에 소통방식 및 행동특성, 일과패턴, 식성과 취미까지 치밀하게 기록 전달되는 AI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의사소통 지원을 위해 의료와 교육과 법률적 제도와 협업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 24만명, 이들에게 일대일 인력만 지원해주면 가족들 모두가 경제적, 심리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며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다. 이것은 소비가 아니라 환원이다. 지원인력들의 고용창출, 관련 시스템의 기술개발, 게다가 장애 당사자의 직업과 건강, 관계회복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이득까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국가책임제는 마땅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우리의 이웃, 바로 옆집에서 아들과 어머니가 소외의 바닥까지 내몰려 동반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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