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비장애형제자매를 헤아리며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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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6 20:25




글쓴이: 김석주(자폐청년의 부모/ 음악치료사/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교육위원)



어릴 때 읽은 동화 아라비안나이트에 앙상하게 말라 거동할 수 없는 노인을 업고 가던 소년의 모험 이야기가 있었다. 노인은 소년의 몸을 양다리로 칭칭 감고 깊은 산 속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점점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가뿐하게 업었으나 소년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바위를 등에 진 듯 지쳐가던 장면이었다. 앞뒤 맥락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노인을 내릴 수도 없고, 길을 멈출 수도 없던 소년의 공포가 강하게 느껴졌었다.


비장애형제자매가 짊어진 무게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부모들은 어른이 되어서 그 짐을 지기 시작하지만,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의 슬픔과 걱정과 혼란을 온몸으로 등에 지고 자란다. 앙앙 울어도 제 때에 달려와주지 않는 엄마, 어린 자신보다 더 많이 울고 더 떼쓰고 더 돌봐야하는 형, 누나, 오빠를 보며 자연스레 온 집안의 무게를 짊어진다. 


넘어져도 혼자 툴툴 털고 일어나야 하고, 배고파도 장애형제에게 먼저 주어야 하고, 장난감을 뺏겨도 그저 양보해야하는 일상 속에서 비장애형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조용히, 착한 아이로 지내는 것이다. 부모의 초점이 장애형제에게 쏠려있고, 자신은 시작부터 본래 그러한 양 조연으로서 익숙하게 자란다.


착할 수밖에 없던 유아기를 지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속내를 말하지 않는다. 

간혹 친구에게 장애형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가, 

“건강한 니가 양보해야지. 당연한 거 아니냐.”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장애형제에 대한 수치심, 미움과 원망 그리고 죄책감, 혼란스런 감정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덮고 삭히며 자란다. 


학교나 이웃, 사회에서의 동정 또한 장애에 대한 비하를 내포하는 시선이고, 직접적으로 조롱하는 이들까지 경험하며, 형제자매들은 부모와 같은 투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의 바람에 맞춰 특수교육이나 사회복지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아직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이에는 가정환경에 부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장애형제를 돕는 것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왔고, 이론을 배우기 전부터 실전에서 익힌 소통과 돌봄의 기술이 직업으로써 능숙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 외에 다른 것을 선택할 기회나 경험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라면, 어느 순간, 다르게 타고난 재능이나 욕구를 선택하지 못한 것에 억울함과 정체성 혼란을 다시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파트너 선택의 기저에 장애형제를 염두에 두게 된다. 여러 해를 사귀고 연인간의 사랑은 확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상대편 부모의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선뜻 흔쾌히 찬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형제의 장애가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나의 사랑과 미래까지 거부당해야 하는가?”


스무 해, 서른 해, 모든 시간과 선택들을 양보해왔고, 부모와 장애형제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생을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가족들에게서 거부당할 때, 그 절망은 어떻게 회복하며, 그 아픔은 누구에게 치료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늙고 병들어가는 부모를 보며, 이들은 바윗돌같은 무게에 짓눌린다. 도전적행동이 극심한 장애형제는 낮에도 밤에도 갈 데가 없고 부모는 병들어 누워있을 때, 형제자매들은 결혼은커녕 직장까지 놓아버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온다.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나날들이 이어진다. 


외로움에 갇혀 아우성조차 낼 수 없는, 이들의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할까?


무어라도 말할 수 있기를, 외면당하지 않고, 훈계 당하지 않고, 겉으로 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 짐 지워진 어깨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누구라도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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