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지원


자녀의 장애를 꼭 수용해야 할까요?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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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2 19:03



자녀의 장애를 꼭 수용해야 할까요?



글 : 윤송하 (유아특수교육박사/소통과지원 연구소)


제가 처음 유아특수교사로 유치원에 근무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유치원을 거쳐 치료센터, 병원, 현장자문 등을 통해 많은 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유아의 부모님들과의 상담을 통해 제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렸던 내용이나 방향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열정이 가득했던 초임교사 시절 저는 부모님께 자녀가 지닌 장애를 수용하도록 ‘설득’을 했습니다. 그래야만 장애에 집중되는 치료와 교육의 방향이 아이의 삶에 집중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의 어머님께서 수요일에는 유치원에 못 오거나 한 시간 일찍 가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유치원이 반일제로 운영되어 3시간 30분 정도 유치원에서 지내는데 한 시간 일찍 하원가면 겨우 2시간 정도 남짓 유치원에 있다가 하원하는 셈이었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 질문을 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우리 아이가 눈맞춤이 안 되잖아요. 강남 어디 치료실 가면 눈맞춤을 훈련시키고 그래서 눈맞춤이 잘 된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치료 때문에 유치원을 일찍 하원하다니... 그것도 눈맞춤 치료라니...’라고 생각하며 너무 당혹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어머님, OO이가 눈맞춤이 되지 않는 건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에요. 어떻게 그걸 훈련해서 바꿔요. 그리고 지금 중요한건 눈맞춤이 아닌 거 같아요.” 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님의 뜻은 완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는 등원해서 자유놀이 시간이 끝나면 바로 하원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어머님을 뵙는 것도 불편해졌고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님께 화가 난 마음이 한동안 지속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와 겸손함이 부족했던 열정과 자만심이 가득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장애자녀 부모의 심리적 단계를 다음과 같은 이론을 통해서 배웁니다.



 이소현(2021). 유아특수교육. 학지사. p,497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에도 단계별로 이르게 되는 과업이 있는 것처럼 부모님들도 심리적 단계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수용’의 단계로 이르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몇몇 학자의 이론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부모님들께 궁극적인 수용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억지로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자녀들의 모습이 다 다르듯이 부모님, 그 가족의 모습도 매우 다양합니다. 보편적인 이론과 기준에 따라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다양성의 수용을 강조하는 우리에게 아이러니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용이란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것’ 이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수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수용할 수 있을까? 가족을 수용할 수 있을까? 내 자녀는? 한 사람을 수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을 넘어서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자녀 부모님에게 ‘자녀의 장애 수용’ 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자녀의 장애를 수용했을 때 어떠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덜 힘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극히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님들께서 치료에 집중하고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의 안도감, 치료를 받으니 무언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금의 삶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무조건적으로 부모님들께 자녀의 장애를 수용하도록 설득하기보다 자녀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 다름을 조금씩 인정해주며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입니다. 


우리가 한 아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양한 모습을 찾아주고 부모님께 안내해주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했을 때, 자녀의 주체적 수용이 가능해지며 불안해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장애를 지닌 내 아이’가 아닌 ‘오롯이 〇〇〇’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 “기꺼이 경험하기(willingness)”라는 말이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가치 있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하는 과정’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존중해주고 지금의 부모님들께서 일상에서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해준다면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가치 있는 삶의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오롯이 온전한 수용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장애자녀 부모님들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설득자가 아닌 안내자의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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