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날적이


[민준이네 해피라이프] 나의 특별한 형제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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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10:05



<나의 특별한 형제>



글: 김언정(발달장애청년 민준엄마)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면 영화 한 편 보겠다고 하면서 준하가  전부터 말하던 영화가 있었다.

"나의 특별한 형제"

몸을 쓸 수 없지만 지능은 정상인 형과 신체는 건강하지만 지적장애인 동생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여성단체에서 10년 정도 봉사자로, 실무자로 일하며 온갖 종류의 가정폭력과 성폭력 사건들을 상담했던 나는 그 이후로 가정폭력, 성폭력을 비롯해서 아동학대 등의 소재나 사건을 다룬 책, 영화, 심층보도물은 거의 다 피한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하고 놀라는 사건들을 너무 봐서 나는 하나도 놀랍지 않을뿐더러 사건 내용을 다 보여주고 나서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항상 빤하기 때문이다.


장애와 관련된 것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희박한 비율로 존재하는 훌륭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모습을 봐도 참 씁쓸하고,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그 또한 마음이 아파서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 같았다. 그런데 준하가 이 영화에 대해 막 설명하다가 "엄마도 같이 보실래요?"하고 물어보는데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가 좀 미안했다. 그래서 사실 별 기대 없이 알았다고 하고는 억지로 마음을 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참 잘 만든 영화라는 거였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애아이를 둔 부모의 눈으로 봤을 때도 현실과 좀 달라서 '저건 아닌데..' 싶은 장면이 거의 없었는데, 아마도 각본과 연출을 함께 맡은 육상효 감독의 장애인을 이해하는 시각이 훌륭해서 그렇지 않은가 싶었다.


또한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다. 특히 지적장애인 동구 역의 이광수 배우는 기존의 예능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했으며, 연기자로서의 그의 능력에 아낌없이 엄지 척을 날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잔잔하게 웃기다가 확실하게 감동과 눈물을 주는 영화로 모든 분들께 강추하고 싶다. 학교나 가정에서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여도 정말 좋을 거 같다.


이 영화에서 신하균 배우가 연기한 신체장애인 세하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또 누리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스스로 혼자 자세를 바꾸지 못하는 세하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하룻밤에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가 돌아 눕혀 주어야 한다. 새벽 3시, 야심한 시각에 자명종 소리와 함께 일어난 동구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세하를 돌아 눕히는 장면은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에서 우리 가족 세 명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민준이의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참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세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그래서 동생인 동구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얼핏 보면 동구가 많은 부분 세하를 위해 희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팔다리는 멀쩡해도 지적장애인 동구는 글을 읽을 줄 모르고 판단력도 없다. 혼자 다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제해결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두 형제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떨어져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훨씬 행복해 보였다.


우리 가정에서 민준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 세 사람이 민준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민준이가 우리를 돕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는다. 남편과 나와 준하는 민준이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민준이의 순수와 정직함을 보며 반성하게 되며, 느긋해질 수 있는 우리들의 시간과 마음을 좀 더 조이며 의미 있는 시간들을 더 만들려고 애쓰게 되었다.


한때는 남편도 나도 준하도 민준이 때문에 잃은 것들, 할 수 없는 것들에 더 시선이 많이 가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 앞에서 불평불만이 높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민준이가 우리 가족의 멤버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게 되고, 그것들이 결국엔 우리 각자를 성장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민준이 '때문'이 아니라 민준이 '덕분'이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나의 특별한 형제' 영화를 보고 나서 준하한테 이렇게 좋은 영화를 소개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근데 넌 이 영화를 어떻게 알았어?"

"유튜브에서 라면 먹방 관련 베스트 장면을 소개한 게 있었는데 거기에 이 영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라면 먹방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알게 되었다니 먹을 거 좋아하는 준하답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장애인을 다룬 건데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네. 나는 우리 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는데요."

"우와~ 너한테는 장애 있는 형아가 그리 부정적인 감정은 아닌가 보다. 집에서 매일 보는 형아가 싫었으면 이런 내용의 영화는 안 보고 싶었을 거 같아"

내 말에 준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참 감사하다. 준하는 다 까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준하가 민준이를 얼마나 싫어하고 미워했는지를... 다시 태어나면 형아 없이 태어나고 싶다고도 했었고, 민준이랑 손 잡는 것도 싫어서 "형아, 여기 내 소매 잡아"하고 말했던 아이였다.


민준이는 유치원 때만 해도 떼가 무척 심했다. 말로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심하게 고집을 부리며 발작을 하듯이 울기 시작하면 30분이 짧은 편이었다. 민준이가 이렇게 심하게 울 때 나는 준하를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민준이와 씨름을 하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면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리도 못 내고 흐느끼고 있는 준하를 발견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준하를 안아주며 "준하야, 미안해. 엄마가 네 생각을 못했어. 다음부터 안 그럴게" 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자 준하는 언제부턴가는 미안하다는 내 말끝에 "엄마, 오늘 하늘이 참 파래" 하는 식으로 딴 소리를 하곤 했다. 미안하다는 말, 다음부터 안 그런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던 준하는 5살 가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안방에서 나오는데 나한테 달려와 안겼던 평소와 달리 거실 한 복판에 가서 굳은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주방에서 일하던 나는 좀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갸웃하면서 "준하야, 잘 잤어?" 했는데 아이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미동 하나 없이 짜증스럽게 "엄마, 말 시키지 마세요"하고 대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이게 소아 우울증 증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나는 민준이의 장애를 처음 알게 되었던 때보다 훨씬 더 절망했고, 좌절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준하가 아주 어릴 때 소아 우울증 증세를 보여준 것이 참으로 고맙다. 장애 아이 부모들은 비장애 형제는 그냥 둬도 알아서 잘 크려니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엄마들은 치료실 다니고, 살림하고, 남들이 안 하는 이런저런 고민하다 보면 비장애 형제까지 살뜰히 챙길 여유가 없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지기도 한다.


내 안에도 분명히 그런 마음들이 있었다. 준하는 유난히 밝고, 말도 잘 하고, 똘똘한 아이였다. 그래서 '얘는 내가 신경 안 써도 그냥 그렇게 잘 자라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그러나 저절로 잘 자라는 아이는 없다는 걸, 아무리 좋은 재능과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때서야 깊이 마음으로 깨달았다.


이때부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민준이에게만 과도하게 쏟아부었던 나의 마음과 에너지를 준하에게도 나누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너무나 다른 두 아이를 각각 밝고 건강하게 잘 키울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며 기도했다. 준하가 언제쯤 이제는 엄마도 이해하고, 형도 밉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며 준하 나이 서른쯤이면 가능할까 혼자 생각하곤 했었는데 참 감사하게도 내 생각보다 그 시기는 아주 빨리 찾아왔다.


물론 준하는 아직도 민준이가 자기 물건 만졌다고 화내고, 아침에 일찍 깨서 큰 소리를 내는 민준이 때문에 아침잠을 설치는 게 영 불만이며, 낯선 공간에 민준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때로는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에게는 스스럼없이 민준이에 대해 말하고, 형아 덕분에 자신이 어떤 유익을 누리는지를 이야기하며 '우리 집 보물'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준하의 마음 안에 깊었던 상처가 잘 싸매어지고,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형제로 민준이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특별한 형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뜻이 있음을 준하가 이제는 알고 있어서 참 감사하다. 기도하고 애쓴 것은 나와 남편이지만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기도보다 더 크게 일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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