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작업


발달장애인의 워라밸





인간에게 노동과 일은 굴레이기도 하고 공동체의 삶을 일구는 소명이기도 하다. 단지 일과 노동만 반복할 뿐이라면 이는 뛰어난 기술을 갖게 하더라도 일과 노동만이 목적이 되고 사람과 존재는 소외된다. 대신 일과 노동이 개인 존재와 사회에 의미가 있다면 일과 노동으로 인해 존재는 살아난다. 이렇게 일과 노동에는 목적과 의미를 양면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복잡함이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직업을 가질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일과 노동을 줄이거나 피하고자 하고, 일을 쉬거나 일에서 자유로울 때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는 그대로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도, 노인에게도 인정해야 하는 권리이자 마음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느 날, 장애가 없는 청소년들이 전환(이행: transition)을 위해 비영리 조직의 인적 물적 지원을 받아 창업을 하여 직업활동을 하는 경험을 발표하는 곳을 가보게 되었다. 직업활동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성장하게 한 듯 보였다. 사례 발표 후, 그 장소에서 한 청소년이 직업활동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것을 들었다. “저, 이제 매일 씻어요.”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어느 대학에서 장애인 고용기금을 지원받아 장애청년들을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대학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직업활동을 통해 기본적인 일상생활(ADL)이 더 향상되고, 지역에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시도를 더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교사와 치료사들은 사람의 생활, 특히 자립생활이라는 과정은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생활 활동의 발달과 성취는 단계적이기보다는 역동적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혹자들은 ADL과 IADL 준비가 되어야 직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직업활동을 통해서 생활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아보인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일자리를 의미하는 잡(Job)이라는 말은 원래 쌓아놓은 장작이나 석탄더미를 가리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잡은 하나 하나를 옮기거나 날라서 쌓는 일, 일의 협소한 개념이며 일자리나 일을 하는 행위의 가짓수, 단절된 일부를 의미한다. 이 잡들이 모여서 덩어리와 더미를 이루니, 한 사람이 생에 처음 일을 할 때는 하나의 단절된 행위를 반복하고, 하나의 일자리를 채우는 것부터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쌓이고 시간으로 흘러가면서 쌓이면 경력, 즉 ’길’의 의미를 지니는 커리어(Career)가 된다. 일(Work)의 의미는 무언가가 되게하는 활동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저는 일을 하고 있어요.”라는 의미는 참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는 직업활동 소감에 대해 “저, 이제 매일 씻어요.”라고 답한 청소년의 말이 “저, 일하는 사람이예요.”로 받아들여졌다.


일이 하나의 기술적인 의미를 지닐 때는 노동이 되고 잡이 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의미를 포함하거나 확대되면 사회 안에서 타인과 만나는 나를 돌보는 자조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는 단지 자기를 돌보는 의미만이 아니라 자기의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상대적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는 일을 통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다. 주고 받고 주고 받는 과정은, 처음부터 동등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초보는 도움을 더 많이 받고 타인에게 조금 영향을 주면서 점차 자기의 일이 받는 보상과 동일해지다가 더 많은 일을 하며 보상이 더 늘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보상은 없지만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일은 생애와 노화를 통해 보상을 받지만 도움을 더 많이 받는 시기로 흘러간다.


발달장애인도 다르지 않다.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잡을 찾아내는 노력과, 그 잡이 쌓여서 경력이 되고 사회 안에서 기여하며 주고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 발달영역의 장애가 있어도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대부분은 사회의 도움을 받으면서 기여하는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오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 발달장애인이건 아니건 사람들의 일과 직업에 참여하는 활동 성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우 일을 더 지속하거나 직업활동 참여 수준이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첫째는 수면활동이 안정된 경우이다. 어떠한 직무나 경력이라 하더라도 잠의 양과 질이 불안정하면 기본적인 신체와 뇌건강에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업무의 오차나 감정 기복으로 드러나게 된다. 꼭 직업과 일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잠은 모든 활동에 우선한다. 수면활동은 인간이 눈을 뜨고 하는 모든 활동을 위해서 오로지 뇌만 따로 준비하고 정리하는 뇌의 활동이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


둘째는 여가활동이 잘 확립된 경우이다. 일은 사회적으로 의무나 계약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오롯이 계약에서 해방되어 자기를 위해 여가활동을 해야 한다. 여가는 활동이다. 활동은 경험을 해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젓가락을 사용해야 젓가락질을 하게 되는 것처럼. 때문에 여가를 누리기 위해서는 여가활동을 탐색하고 시도하고 지속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직업활동과 다른 생활의 에너지가 조화로운 경우이다. 두번째 여가활동과도 맥이 통하는 측면이 있는데, 신체활동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은 집에서의 일과는 몸을 적게 쓰도록 자동화된 기계를 충분히 이용하고 정신활동을 한다던가, 바깥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인은 여가나 직업 외의 활동은 실내에서 하는 경우 몸과 정신의 활동이 조화로울 수 있다. 어떤 파일럿 직업인은 비행활동을 마치면 농사를 짓고 흙을 만지니까 일을 더 잘 할 수 있더라고 했다. 어떤 자폐인은 자기 혼자 있는 공간에서 혼잣말을 실컷하고 직업공간에서는 상호적인 말만 하도록 참고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넷째는 직업활동을 통한 성장을 확인하는 경우이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라도 해보지 않은 일을 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구라도 꾸준하게 오래 반복한 일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잘한다. 계속 해서 잘 하게 되는 일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경력있는 과장 부장이 인턴에게 자기 수준의 업무 기대한다면, 인턴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전해도 자신의 발전을 확인하지 못하고 좌절만 하게 될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업무를 반복 경험하면서 더 잘하게 되는 성장과 발달을 본인만이 아니라 동료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성장에 대한 자기확인과 함께 확인은 사실은 발달장애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직업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은 속성상 좋아서 하는 활동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면서 주고받는 계약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활동이 일이되면 계약에 매여서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잡에서 커리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경험과 숙련을 통한 기술적인 이해가 향상되고, 성장하는 자기돌봄과 보상을 통한 성취가 일을 좋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가 없다. 반대로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되지도 않고 싫어하는 일만 마냥 지속되지 않는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기 전에 의자를 정리하는 규칙이 일과화된 자폐성향이 있는 사람은, 그 규칙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일과 리듬이 생겨서 매일 꾸준히 그 일을 하게 된다. 이는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대신, 의자가 바뀌거나 정리하는 시간이나 위치가 바뀌면 일과가 깨어진다. 변화는 또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다가오지 않고 걸리지도 않은 자기 질병이나 가족의 죽음이 두려움이겠지만,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는 어제 했던 일을 오늘 하지 못하면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치솟는다. 그러나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차마 미리 대비하지 못한 변화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기다리고 격려하면서 또 기다리고 다음날의 일과가 반복되면 다시 잡에서부터 커리어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렇게 기대하면서 또 반복하며 성장하는 하루와 순간이 지나간다.


좋은 일만 있지 않다. 그렇다고 힘든 순간에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일과 노동을 하는 것이 삶에 필요할 때가 있다.


지석연 (발달장애지원 전문가포럼 / 작업치료사 / SISO 감각통합상담연구소)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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