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사회성


발달장애인의 우정과 친구 맺기

정병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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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05:03

발달장애인의 우정과 친구 맺기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의 사회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당연히 가족이다. 부모와 형제자매는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최초로 맞이하는 관계이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관계이다. 특히 부모는 주된 양육자로서 발달장애아동의 사회화의 기반이자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양육자와 아동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유형을 따지고 애착을 강조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일반적으로 갖는 중요성 이외에 발달장애인에게 미치는 주요한 영향은 사회적, 정서적 발달과 행동에 관한 것이다. 사회성과 정서 발달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사교성이 뛰어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힘을 얻는 외향적인 성향도 있지만, 상대방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교성은 꽃을 피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자녀의 발달장애가 진단된 후, 어떻게 하면 자녀의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부모가 반응하고 자극을 주어야 하는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부모와의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관계는 또래관계로서, 또래와의 상호작용은 적절한 적응과 발달을 위해서 일생동안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다. 학령기의 생활은 많은 부분이 또래 아이들과의 사회적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학령기의 또래관계를 기반으로 성인기에 이르러 타인과의 2차적 관계가 다져진다. 또래와 적절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사람들이 아동을 바라보는 견해의 중심으로 이룬다. 뿐만 아니라 집단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고, 다른 또래들과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역사회의 여가/취미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학령기 또래관계는 발달장애인의 교육과정 에서 결정적인 영역을 차지한다.







학령기의 또래관계 중에서 특별히 친밀감을 느끼고 신뢰할 경우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눈다. 우정은 친구 사이에 오가는 정신적 유대감을 의미하는데, 한 사람의 영혼을 채우고 붙들어준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친구와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명언은 셀 수 없이 많다. 친구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로마 공화정의 정치인이자 문필가였던 키케로는 우정에서 인간관계의 최고 이상형을 보았다. 그래서 진정한 우정을 따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보다 친구가 더 우위를 차지한다. 부모한테는 말 못하는 고민을 친구한테는 털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의 학령기에서 또래관계는 어떠한가? 발달장애인은 몇 명의 친구가 있고, 우정을 나누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성인 발달장애인의 친구수는 평균 1.4명이고 60%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총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발달장애인은 또래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또래와 함께 학령기를 보냈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중증 발달장애인은 보호자가 함께 하고, 경증 발달장애인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만 해도 어른들의 적절한 개입이 있으면 발달장애아동도 또래 아이들과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놀이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양한 놀이를 통해서 상호작용의 시작, 반응,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단독놀이, 평행놀이, 연합놀이, 협동놀이의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후에는 교사와 부모/보호자의 강력한 중재가 없으면 또래관계의 형성과 유지는 어렵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모든 아동들이 학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학습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발달장애아동이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생일파티에 초대하거나 친한 엄마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놀린다’.

 

지환이의 경우에는 1학년,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기도 하고, 3학년, 4학년 때는 같은 반 친구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반대로 몇몇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기도 하였다. 특히 3학년 때는 담임의 강력한 중재로 또래와의 교류가 잦았다. 반아이들에게 공동체성과 친구와의 협력을 강조하였다. 체육시간에는 둥그런 원을 그려놓고 아주 단순한 신발뺏기 게임을 했기 때문에 지환이도 참여할 수 있었다. 또한 지환이가 알림장을 쓰지 못하면 아무도 집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 지환이의 알림장 작성을 도와주었다. 그러다보니 지환이도 친구를 좋아하고 몇몇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나도 지환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만사를 제치고 간식거리를 만들고, 놀이감을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서 학습 부담이 커지고, 아이들의 머리가 커지면서 발달장애인이 또래관계를 맺는 것은 점차 힘들어진다. 친구는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에 따라 서열이 생기고, 특정 아이를 싫어하거나 따돌리는 행동도 나타난다. 발달장애아동의 도우미 역할을 맡거나 친구가 되면 놀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고정욱 작가의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장애 때문에 따돌림 당하는 영택이와 그런 영택이의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석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발달장애학생은 아예 특수학교로 옮겨가거나, 일반학교에 있더라도 특수학급에서 섬처럼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다. 통합수업을 하더라도 몸만 같은 공간이 있을 뿐이지 의미있는 상호작용에 기반한 통합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현재와 같이 교육적, 사회적, 심리적 배려 없이 단순히 발달장애학생을 일반학교에 포함시키는 물리적 통합만으로는 제대로 통합을 이룰 수 없다. 발달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또래관계를 형성하고 친구가 되고 우정을 만들어 살아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난관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렇다면 발달장애학생들간의 또래관계는 어떠할까?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발달장애학생들은 또래 사이에서 친구를 맺고 우정을 느끼는가? 특수학급에 입급된 발달장애학생들은 그들끼리 친구가 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서 쉽사리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은 12년간이나 또래와 같은 공간에 있는데 왜 친구가 없을까?

 

첫 번째는 타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발달장애의 특성상 친구가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 중에는 사람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한 외국의 발달장애인은 적어도 1~2명의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발달장애로 인해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발달장애인의 독특한 취향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진다.

 

두 번째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특성 때문에 학업 위주로 돌아가다보니 부모들은 자녀에게 도움을 되거나 상처주지 않는 친구를 사귀기를 바란다. 치열한 학업 경쟁에서 뒤쳐진 학생들은 교실에서 소외되고 학교에서 배제된다. 발달장애학생은 교사와 또래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받게 된다. 부족함, 모자람, 약함은 포용되지 않고 거칠게 격리되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힌다. '어른이 되면'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생각많은 둘째언니 장혜영 감독은 이러한 배제와 격리를 프랙탈(fractal)이라고 표현하였다.

 

※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제 891회,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없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T3IluuOr0G0

 

세 번째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형성되는 위계가 친구맺기에 방해될 수 있다. 지환이의 도우미를 자청한 또래는 지환이가 자기 말을 안듣는다고 자주 어필했는데, 평등한 친구관계라기보다 상하관계의 느낌을 받았다. 지환이를 무조건 도와주고 챙겨주고 양보해 주었는데, 지환이가 지환이의 방식대로 행동하자 팔뚝을 꼬집었던 여학생이 기억난다. 그 여학생은 일종의 도덕적 우위에 서서 지환이가 당연히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가 장애우라는 용어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장애인을 사회적 주체,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는, ‘지나친 배려’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래관계에서 발달장애인도 일방적인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친구로 대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네 번째는 발달장애인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이해력 부족 등으로 혼자서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부모들이 대신해서 일을 처리해주기 때문이다. 즉, 부모들이 거의 24시간을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상황이다. 발달장애인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복지관이나 치료실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이지만, 많은 경우 1대 1 치료라서 또래를 만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그룹치료이나 활동에서 또래와 함께 하더라도 만약 갈등이 생기면 교사나 치료사, 부모 등이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발달장애인들은 또래 관계를 통해서 또래 문화를 배울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학령기 졸업과 성인기로의 전환을 앞둔 요즘에 와서 돌이켜보니 또래관계 속에서 친구와 우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더욱 노력했어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느낄 수 있듯이, 가족 이외에 성인기에 알고 지내는 친구야말로 한 개인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발달장애인도 친구가 없으면 ‘노는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게 된다. 친구가 없으니 집밖에 나가서 놀 수 없고, 집안에서 컴퓨터 게임만 할 수 밖에 없다.

 

하버드대학교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팀은 1930년대 말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268명의 삶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법칙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온 과정을 『행복의 조건: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에 제시하였다. 이들은 약 70년간의 추적연구과정에서 고통에 대처하는 성숙한 자세와 인간관계, 교육, 안정적인 결혼생활, 금연, 적당한 음주,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의 7개 요인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7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 무렵까지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로 밝혀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친구의 숫자가 행복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또래와 친구는 중요한 존재이다. 학령기에는 또래관계를 통해 사회성이 발달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능력이 향상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지환이의 한달간 발화는 1년짜리 복지관 언어치료의 발화보다 활발하였다. 또래와의 실전 속에서 자신이 느낀 필요에 의해서 표현하고 의사소통했기 때문이다. 성인기에 친구는 부모의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된다. ‘절친’, ‘베프‘도 좋고 ’그냥 친구‘도 좋다. 쉽지 않겠지만 발달장애아동/청소년/성인을 위해 친구를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은 당신부터 말이다.


정병은 / 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청년 엄마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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