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학교에서 겪은 전쟁

정유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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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2018.10.13 15:48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서 특히 통합교육을 선택하여 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들을 위해 내 경험을 나누고 싶다. 오늘은 학교에서의 민감한(?)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참고로 우리 광희는 23세의 청년이다. 유치과정부터 통합을 했고, 자연스레 초등, 중고등 과정을 통합을 선택하였다. 그렇다고 광희가 부모들이 소위 말하는 상태가 좋은 아이는 아니었다.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이었기 때문에 완전통합을 하였다.


초등 3학년 신학기 때의 일이다. 새 담임 선생님은 휴직을 하였다가 복직하면서 우리학교로 발령을 받은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3월에 이틀을 학교에 보냈는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면담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걱정을 가득 안고 교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마주 앉아 걱정스럽고 죄송한 목소리로 “선생님, 광희 때문에 힘드셨죠?” 라고 물었다. 


무표정하던 선생님은 "아니 이런 애를 학교에 보내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어서 다시 물었다. 

"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설에 보내야죠."  헐, 시설을 말하는 선생님이 시설을 아는지 궁금해서 되물었다.

"선생님, 시설이 뭔데요?" 

“얘네들이 생활하는 곳 말입니다. 그리고 얘네들이 모이는 학교에 보내야죠.”


모르고 한 말이 아니었다. 시설을 정확히 알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뚜껑이 열렸다. 

나는  조용히 선생님 눈을 정확히 보며 통합교육을 시키기 위해 내가 쏟아부은 그간의 노력을 브리핑했다. 밝은학교에서 몇년 했고 어디 누구 선생님께 몇년을 했고 언어 프로그램 등등 모두 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 아이가 지금 아무것도 안하고 휘젓고 돌아다니는 이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아주 정확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선생님, 나도 내 아이가 장애아이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자폐성장애아 입니다. 내가 엄만데.... 이 애가 그래도 어울려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 자식이니 제가 살아 있는 동안 평생 책임집니다. 제 운명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광희 담임 1년, 운명이다 생각하시고 받아 들이셨음 좋겠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선생님은 내 눈에 레이져 때문인지, 당돌한 내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 선생님, 박광희도 의무교육 대상자이니, 1년 학교생활은 선생님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날 내마음은 헌법을 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아이도 이 나라 국민임을 당당히 말해주고 싶었다.


두번째는 중학교때 시험 때문에 있었던 일이었다. 

새로 신설된 학교에 장애학생 3명이 모여 특수학급을 만들어서 입학을 하였다. 나는 초등과정에 완전 통합을 했었기 때문에, 완전 통합을 하다가 안되면 특수학급으로 오겠다는 의견을 입학서류에 밝혔다가 아주 이상한 엄마로 낙인이 찍혔다.

입학을 하고 새학기에 영어듣기평가 시험 당일에 영어부장 선생님이  연락이 왔다. 

"어머니~ 오늘 듣기평가 시험인거 아시죠?  저희가 협의를 했는데요,  광희를 특수반에 내려가서 시험을 치르게 하기로 협의해서 결정했어요. 알려드리려고 연락했어요." 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요? 그걸 누가 결정하셨어요?"라고 내가 되묻자 부장 선생님이 놀랐다. 


나는 다시 물었다. "교감선생이 결정하셨어요? 교장선생님이 결정하셨어요?"

특수학급, 담임, 부장교사가 결정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광희와 시험치르는 연습을 며칠동안 해서 학교에 보냈는데 이제와 협의를 운운하고 있어서 아는 척을 했다.

"선생님, 저하고는 안하셨잖아요. 협의!" 

협의를 해서 광희와 내가 결정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드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들이 민원을 넣어요. 그러면 이것 어떻게 하시려고요?”

"민원 누가 넣었나요?" 

“...........................”


광희를 설득해서 내려가 보겠다고 하면 그리 하시라 했지만 광희는 원반에서 시험을 보았다.

그 이후의 모든 시험을 원반에서 보았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협의도 잘 이루어졌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기회조차 뺏어버리는 실수를 우리 부모가, 우리 선생님들이 하고 있다. 가끔 답답한 현실에 한 숨을 쉰다.


초등 시절, 광희와 인연을 맺은 선생님들은 사실 많이 힘드셨다. 이렇게 1년씩의 책임이 쌓여 오늘날 23세의 청년 박광희가 되었다. 어차피 사람은 대부분 미성숙한 존재이니,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결정을 믿어주고 기회의 장을 열어주자. 장애인이든 누구나  자기 속도를 알아가며 인정해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최미란 / 장애청년엄마 /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사회성교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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