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스스로 파출소에 간 발달장애청년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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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41




글 : 정병은(사회학 박사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운영위원)


얼마 전 지환이와 외출을 나갔다가 생긴 일을 전해볼까 한다. 평소 간간히 들르던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에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지환이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지환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하필이면 배터리가 다 돼서 핸드폰 전원도 꺼지고 예비 배터리도 없어서 지환이한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햄버거를 먹었으니 다이어트를 위해 집까지 걸어가자는 엄마말을 듣지 않고 혼자 버스를 탔겠거니 싶어서 별 걱정없이 나도 혼자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지환이한테 동행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단단히 가르쳐야지 하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집안에는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하였다. 얼른 핸드폰을 충전하고 전원을 켰더니, 지환이가 파출소에 있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웬 파출소? 하며 지환이한테 전화했더니 중년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파출소로 오셔서 아드님을 데려가셔야겠습니다.” 한다. 집까지 혼자 찾아올 수 있는 멀쩡한 애를 데리러 오라는 말이 탐탁치 않아 “지환이는 혼자서도 집에 찾아올 수 있으니 버스 타고 오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나니 여러 사람들한테서 “지환이 어떻게 된 거에요?”라는 안부를 묻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니, 지환이가 엄마와 통화가 안 되니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지환이가 파출소로 간 경위 등이 궁금해서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 지환이 엄마와 통화가 되었는데 버스 타고 집에 오라고 하던데요. 그 엄마 되게 쿨하던데요. 지금 순찰차에 태워서 집에 데려다주러 갔어요. 엄마가 아주 쿨해요.” 이 대목에서 차마 내가 엄마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집에 들어온 지환이를 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햄버거를 먹고 화장실을 들렀다가 엄마가 화장실에서 늦게 나오니까 그새를 참지 못하고 서점에 가버리는 바람에 나와 동선이 엇갈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엄마 핸드폰이 꺼져있으니 근처에 있던 파출소에 걸어 들어가 “엄마가 화장실에 없어요. 우리 엄마 찾아주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아저씨는 지환이를 돕기 위해 폰에 있는 연락처 몇 곳으로 전화를 걸어본 것이다. 때마침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정작 엄마라는 사람은 걱정이 한가득이거나 헐레벌떡 오기는커녕, 혼자 집에 올 수 있으니 버스를 태워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는 천하태평에 지나치게 쿨하고 엄마를 잃어버린 아들은 순찰차를 타고 집까지 와서 마냥 즐거워했으니 그 경찰은 분명 우리 가족을 둘도 없는 괴짜가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냥 신나하는 지환이에게 경찰아저씨가 무섭지 않았냐고 했더니 “경찰형이 나를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연락하래. 그 경찰형 착해.” 지금까지 지환이에게 가르쳐온 경찰의 이미지는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벌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환이가 잘못된 행동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너 그렇게 하면 경찰한테 잡혀간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지환이의 문제행동을 수정하기 위해서 특수교사가 경찰서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환이한테 경찰은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경찰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래서 파출소로 스스로 들어가 도움을 청하고 순찰차를 타고 안전하고 편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평소 엄마가 말했듯이 경찰을 무서운 사람이고, 나쁜 짓을 했을 때 잡아가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파출소에 들어가서 도와달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환이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에 감탄하면서 정말 잘 했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다고 칭찬을 퍼부었다. 


한편으론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잘못 심어준 나의 교육방식을 반성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의 경찰은 많이 달라졌으며, 나의 경찰 이미지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경찰 같다고 평한다. 내 머릿속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자 중년 남성의 이미지인데, 순찰차에 동승한 경찰은 아마도 20대였을 것이니, 지환이한테는 형이 맞다. ‘경찰형’이라는 용어가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지만, 누가 괴롭히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다니 지환이에게는 정말로 듬직한 형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보호하고 봉사해야할 국민의 한 사람인 발달장애 청년이 파출소에 걸어 들어와 도움을 청하니 순찰차로 집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내가 낸 세금이 작게나마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내가 졸지에 ‘쿨한 엄마’가 되어버린 것은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데리러 오라는데, 혼자 집에 올 수 있으니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면 된다는 엄마를 냉정하고 무심하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5살 지환이를 동네에서 잠깐 잃어버렸을 때 차분하게 묻고 다닌 나에게 엄마 맞냐고 묻던 동네문구점 주인이 떠올랐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라면 당연히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찾아 뛰어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편견이 묻어있는 시선이었다. 


장애가 있으면 성인이어도 엄마가 따라 다녀야 하는 걸까, 장애가 있으면 혼자 다니게 하면 안 되는 걸까, 장애가 있으면 파출소로 데리러 가지 않고 그냥 버스 타고 오라고 하면 이상한 걸까. 


나는 지환이가 혼자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노력해 왔다. 앞으로도 동네에서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먼 거리도 가고, 혼자 지방에도 가고, 혼자 해외에도 가게 할 것이다. 부모 사후에도 자녀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독하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지환이를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하고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게 했다. 지환이는 벌써 23살이 되었고 나는 점점 늙어가는데, 독립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서 더욱 조바심이 난다. 발달장애인을 혼자 돌아다니게 한다고 비판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이번 일을 통해서 발달장애인이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되었다. 엄마의 핸드폰이 꺼진 상황에서 혼자 있게 된 지환이가 당황하지 않고 잘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친근한 목소리로 통화하면서 지환이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다독거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런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다면 지환이는 불안해서 상황에 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관계를 맺는데 서툴고 사회성이 부족한 발달장애인에게 친절의 관계망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강조하고 싶다. 발달장애인이 자립/독립을 한다고 해서 혼자서 살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모 사후를 위해 취업, 소득보장, 재산신탁, 주거지원, 후견인 등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관계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집과 소득이 있어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부모 사후 준비 목록에 주거, 고용, 소득뿐만 아니라 관계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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